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5. 링에만 올라가면 왜 헥헥걸릴까?

상대가 누구든 링 위가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링에만 올라가면 왜 헥헥 거릴까?


복싱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나름 체력 관리를 했다. 그래서 줄넘기, 쉐도우, 샌드백치기 등 혼자서 훈련을 할 때는 대체로 체력적인 문제는 없었다. 문제는 링 위였다. 링 위에서 상대와 마주서서 하는 훈련을 할 때면 어김없이 급격하게 체력이 바닥났다. 약한 강도로 타격하는 메써드 스파링을 할 때조차도 3분 2라운드만 하면 100미터 전력질주를 하기라도 한 것처럼 헥헥 거렸다. 이유는 단순했다. 긴장 때문이었다.


 혼자서 훈련할 때는 딱히 긴장할 필요가 없다. 거울을 보고 운동을 하든, 샌드백을 치든 마음 편하게 운동할 수 있다. 하지만 링 위에서 상대와 치고받아야 할 때면 상황이 달라졌다. 잔뜩 긴장을 해서 온몸에 힘이 들어가서 체력이 급속도로 빠졌다. 복싱을 하면 할수록 이 문제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프로 시합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정말 별 짓을 다했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나름의 해답에 도달했다. 그것은 그냥 계속해보는 것이었다. 긴장하면 긴장하는 대로 헥헥거리면 헥헥거리는 대로 그냥 상대에 맞서서 메써드든 스파링이든 계속 해보자고 생각했다. 일부러 회원들이 많은 시간에 체육관을 찾았고 가능한 많이 링 위에서 상대와 맞서는 훈련을 하려고 했다. 그 덕분에 다행히 링 위의 체력은 점점 나아져갔다. 메써드 스파링으로 3분 2라운드를 겨우 소화했던 내가 어느 순간, 일반회원들과 3분 10라운드까지 거뜬히 소화해낼 수 있게 되었다.


대학 선수부와 스파링

나름 복싱에, 아니 정확히는 상대와 마주서서 치고받는 것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링 위에서 과도하게 체력이 소모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믿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얼굴은 앳되어보였지만 딱 봐도 운동선수처럼 보이는 아이가 체육관으로 들어섰다. 그는 관장이 중학교 때 지도했던 아이였고, 현재는 대학 복싱부 선수다. 관장은 내게 그 대학생과 메써드 스파링을 한 번 해보라고 권했다. 이기고 지고를 떠나 일단 이제 링 위에서 체력적으로는 문제없었다고 확신했기에 흔쾌히 응했다. 


 나와 그 대학생은 링 위에 올랐다. 체중도 많이 내가 많이 나가겠다, 이제 링 위에서 긴장하지도 않겠다, 내심 한 번 해볼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리드미컬하고 빠른 움직임에 시작하자마자 당황했다. 그 순간, 메써드 스파링이라 강하지는 않았지만 정확하게 원투 펀치가 내 얼굴에 꽂혔다. 게다가 뒤 이어진 내 공격은 여유 있게 다 피해내는 것 아닌가. ‘대학 선수부는 확실히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력 차가 확실히 난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예전처럼 체력이 급속도로 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링 위에서 과도하게 긴장하는 문제를 여전히 극복하지 못했던 게다. 처음에 링 위에서 긴장했던 이유는 상대와 치고받아야 하는 상황 자체였다면, 이번에는 확실한 실력 차가 주는 긴장이었다.



상대가 누구든 링 위가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에는 극복하는 데 별 어려움은 없었다. 답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계속 해나가야만 했다. 대학 선수부 친구나 혹은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있을 때면 무작정 메써드 스파링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 과정을 통해 ‘아, 잘하는 친구들은 이렇게 움직이는구나!’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느 순간, 실력 차가 나는 선수와 마주서도 과도하게 긴장해서 체력이 급격하게 바닥나는 일은 없어졌다. 그건 상대보다 내가 복싱을 더 잘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 뒤로도 강도 높은 스파링을 할 때면 이런 증상이 종종 나타나기도 했다. 과도하게 긴장해서 체력이 급격히 빠지는 증상 말이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때그때 피하지 않고 계속해나가다 보면 익숙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링 위에서 긴장할 때는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직면할 때다. 태어나서 한 번도 누군가와 치고받아 본적 없는 사람은 스파링 자체가 처음 겪어보는 상황일 테고, 그 스파링에 익숙해진다고 해도 월등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스파링은 또 처음 겪어 보는 상황이다.


 복싱 잘하게 된다는 것은 아마 그런 처음 겪어 보는 상황에 익숙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복싱을 시작하면서 처음 겪는 상황에 익숙해지면 최소한 링 위에서 체력적인 문제로 헐떡거릴 일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나 역시 그랬다. 처음 겪는, 그래서 긴장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점점 익숙해져가면서 복싱 실력도 조금씩 나아졌다. 일반 회원들 중 실력이 좀처럼 늘지 않는다고 투정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그 이유도 마찬가지다. 메써드든, 스파링이든 처음 겪는 상황에 익숙해질 만큼 계속해나가지 않기 때문인 게다.


매거진의 이전글 4.아는 것에 갇힌 사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