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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성숙은 불안정에 익숙해지는 것

성숙한 인간이 되고 싶다.

성숙해진다는 것의 의미

복싱을 하면서 삶에 관해 배운 게 있다. 그건 ‘성숙해진다’는 건 ‘불안정에 익숙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거다. 신입사원 시절, 새로운 업무를 받을 때면 적잖이 당황하고 또 걱정했다. 그래서 불안했다. 그때 옆에 있던 선배는 어찌 그리 업무를 능숙하게 처리하는지 부러웠다. 심지어 어떤 업무가 주어지더라도 당황이나 걱정은 고사하고 몇 번 본 영화를 보는 것처럼 지겨워했다. 그 모습에 그 선배가 존경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새로운 업무 앞에 벌벌 떠는 직장인이 아니라 그 선배처럼 되고 싶었다.


 좌충우돌했던 신입사원을 지나 7년차가 직장인이 되었을 때, 나는 더 이상 업무 앞에 당황하고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니 불안하지도 않았다. 7년이라는 시간동안 업무에 관한 수많은 경험과 노하우가 쌓였기 때문이었다. 익숙해졌던 게다. 그렇다. 성숙한, 적어도 업무에 관해서만큼은 성숙한 직장인이 되었던 셈이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한 후배가 나처럼 업무를 능숙하게 처리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그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딱히 유쾌하지 않았다. 이제 직장에서 일어나는 일이 지겨울 정도로 익숙해졌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사표를 던졌다. 그 뒤에 이어진 일들은 직장에서 새로운 업무를 하면서 느꼈던 불안정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경제적 곤경, 소속감의 부재, 반 백수를 쳐다보는 세상 사람들의 기묘한 시선까지, 사표 이후의 불안정은 상상 이상이었다. ‘다시 직장으로 돌아갈까?’라는 생각을 수백 번도 더했던 것 같다. 그때 복싱이 참 많은 도움이 되었다. 메써드 스파링을 2 라운드 채 하지 못했던 내가 지금은 10라운드도 곧 잘하게 되지 않았나. 그냥 참고 계속 해나가다 보니 익숙해진 덕분이었다.         


 처음 겪는 스파링이 육체적 에너지(체력)를 빨리 방전시킨다면, 삶에서 처음 겪는 상황에서 오는 두려움과 혼란스러움은 정신적 에너지(정신력)을 빨리 방전시킨다. 하지만 괜찮다. 처음 겪는 것이 무엇이든 계속 해나가다 보면 익숙해지기 마련이니까. 처음 겪는 일을 당할 때, 두려움, 혼란스러움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들을 피하지 않고 익숙할 때까지 끌어않고 있을 때 한 인간은 성숙해진다. 그렇게 조금씩 복싱에 성숙해졌듯이 삶에서도 그렇게 성숙해지고 싶다.

     


 나는 직장도 없고,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 하루하루가 매번 처음 겪는 일들의 연속이다. 그때마다 나는 두렵고 혼란스럽다. 체력도 정신력도 급격하게 빠져나가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을 잘 견뎌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계속해나가다 보면 결국 익숙해질 것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그 과정을 통해 한층 더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겪는 일이 주는 두려움과 혼란스러움을 피해 다니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그 두려움과 혼란스러움을 기꺼이 끌어안아 그것에 익숙해지는 삶을 살고 싶다. 그렇게 매일 조금이라도 더 성숙한 인간이 되고 싶다.  그래서 나는 프로복서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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