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부단함, 결정‧선택장애 같은 소심함은 우리 삶의 전반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그런 문제들은 어김없이 ‘나’와 타인의 삶을 모두 불행하게 만든다.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는 소심한 이들이 있다. 이들은 대체로 부모가 대신 그 결정을 해주게 마련이다. 이는 부모와 자식 둘 모두에게 매우 불행한 일이다.
부모의 선택으로 결정된 삶을 사는 자식의 삶은 필연적으로 불행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길은 정말 자신이 원하는 길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고 후회하게 되니까 말이다. 또 그 때문에 은근슬쩍 부모를 원망하게 되니까 말이다. 부모 역시 마찬가지다. 자식의 삶을 대신 결정해준 부모라고 마음이 편할까? 여전히 미숙한 자식을 보며 ‘언제까지나 부모 노릇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 삶 역시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이다.
직장생활도 마찬가지다. 직장을 그만두고 싶지만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딱히 그 직장을 다니겠다는 결정을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만두겠다는 결정을 한 것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로 직장생활을 이어가는 소심한 이들은 흔하다. 그네들의 하루하루는 괴롭지 그지없다. 이런 우유부단함 역시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불행으로 몰아넣는다.
우선은 끌려 다니듯 이어지는 직장생활이 괴로운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그보다 더 괴로운 것은 아무런 선택도 결정하지 못한 채 우물쭈물 거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계속 마주해야 하는 일이다. 그뿐 일까? 그런 소심한 이들은 직장의 답답함과 괴로움 때문에 종종 가까운 이들에게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곤 한다. 가장 안전한 곳(가족‧연인‧친구…)에서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배설하는 것은 소심한 이들의 가장 오래된 습관이니까 말이다.
우유부단함,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되는 고질적인 선택‧결정 장애는 소심함이다. 이런 소심함은 극복의 대상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의 삶 역시 불행하게 만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네 삶을 돌아볼 일이다. ‘혹시 나는 우유부단하지 않은가? 크고 작은 문제들 앞에서 어떠한 결정도 하지 못한 채 주저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만약 그렇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자신의 우유부단함과 선택‧결정 장애를 인정하고 받아들여 한다. ‘나는 소심하구나.’ 이것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소심타파의 시작이다. 소심타파의 첫 단추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