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리, 이것 좀 해주지?”
“지금 좀 바빠서요...”
“아이, 왜 그래, 이 대리 사람 좋은 거 다 아는데..”
“아, 네, 주세요. 언제까지 해드리면 돼요?”
“가능한 빨리 해주면 좋지, 부탁해”
이 대리는 좋은 사람이다. 동료가 부탁하면 거절하는 법이 없다. 자신이 바빠서 야근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동료의 부탁을 거절하는 법이 없다. 그러니 직장 내에서 이 대리에 대한 평판은 언제나 칭찬일색일 수밖에. 어떤가? 이런 사람. 옆에 이런 동료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다. 힘들 때 의지할 수 있고, 일이 많을 때 언제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듬직한 동료니까 말이다. 이런 사람 한 명 정도만 고단한 직장생활 견딜만할 것 같다.
그런데 우리는 알고 있을까? 정작 이 대리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싫어한다는 걸. 이 대리는 동료들이 자신을 인간적이고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추겨 세울 때마다 불편하다고 말했다. “저도 일 빨리 끝내고 집에 가고 싶은데, 사람들이 업무 부탁을 하면 거절하지 못하는 제 모습이 짜증이 나요” 이 대리는 소심하다. 이 대리를 통해 어떤 사람이 소심한 사람인가에 대해 답할 수 있다.
‘자신보다 남에게 더 좋은 사람’ 이런 사람이 바로 소심한 사람이다. 간혹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찬을 받는 이를 만나게 된다. 인정받고 칭찬 받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더욱 좋은 일이다. 그런 이타적인 사람이 많아지면 우리 사회는 훨씬 더 건강하고 좋은 사회가 될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진정으로 좋은 일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의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자신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이것이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조건이다. 진정으로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면, 가장 먼저 항상 자신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신에게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하고 타인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이는 필연적으로 자기 파괴적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것이 소심한 이들이 불행해지는 이유다. 자신보다 항상 타인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는 사람이 어찌 기쁘고 유쾌한 삶을 수 있을까?
자신에게 좋은 사람이기를 미루어 둔 채 타인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는 이는 자기파괴적일 수밖에 없다. 인정‧칭찬의 헛헛함, 과도한 업무,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미워하는 이가 어찌 자기 파괴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죽어가고 있는데 타인을 도와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처럼,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가장 먼저, 자신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난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