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심타파

'감정표현장애'라는 소심함

소심함 테스트


우리가 소심한지 아닌지 간단하게 테스트해볼 수 있다.


“이 옷이 마음에 드는 것 같아요.”


이 문장이 자연스러운가? 어색한가? 만약 자연스럽게 들린다면 소심한 사람일 개연성이 있다. 사실 이 문장은 어색한 표현이다. “~인 것 같아요”는 추정의 표현이다. 이런 추정의 표현은 옳고 그름이 명확하지 않은 사안에 대해 말할 때 사용한다. 예컨대, “그 사람은 착한 것 같지 않아요.”라는 표현은 자연스럽다. 그 사람이 착한지 아닌지에 대해 명확하게 판단내릴 수 없을 때 추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옷이 마음에 드는 것 같아요.”는 어색하지 않은가? 이 옷이 마음에 든다는 건 자신이 느낀 감정 아닌가? 그 감정을 추정으로 표현(~인 것 같아요)하는 것은 어색하다. “이 옷이 마음에 들어요.” 이것이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소심한 이들은 이런 자연스러운 표현을 잘 사용하지 못한다. “이건 좋은 것 같아요.” “그건 싫은 것 같아요.” 소심한 이들에게는 이런 식의 표현이 익숙하다. 소심한 이들은 자신의 감정에 대해 추정하듯이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소심함이 무엇인지에 대해 하나 정의를 더할 수 있다. 자신의 감정을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 이것 역시 소심함이다. 이것이 소심함이라면 별 거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이건 좋은 것 같아요.(싫은 것 같아요)”와 “이건 좋아요.(싫어요)”라는 표현 차이가 뭐 그리 대단한 일일까 싶다. 하지만 이건 별 게 아닌 게 아니다. 이런 소심함은 우리네 삶을 큰 해악을 끼치기 때문이다.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소심함


“그건 오늘까지 해주셔야 해요.”

“아, 네, 그럴 게요.”


‘미진’은 당황스럽다. 동료가 자신의 업무를 부탁하면서 묘한 명령조로 이야기하는 게 아닌가. 당황스러움은 이내 불쾌감이 되었다. 하지만 미진은 동료 앞에서 당황스러움도 불쾌감도 표현하지 못했다. 소심함이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소심함이다. 소심한 이들은 타자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다. “좋은 게 좋은 거지, 괜한 분란을 만들어 뭐해”라고 합리화를 하며 자신의 감정을 억누른다. 이런 삶의 관성이 쌓여서 타자와 매개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옷이 마음에 드는 것 같아요")에 이르게 된다.


“이건 좋은 것 같아요.(싫은 것 같아요)” 이처럼 자신의 감정을 추정으로 표현하는 것은 소심함에 대한 심각한 시그널이다. 이는 꽤 긴 시간 동안 타자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억눌러왔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이런 소심함은 필연적으로 우리네 삶을 슬픔과 불행으로 내몬다. ‘미진’은 동료의 무례한 행동 때문에 발생한 당황과 불쾌함의 감정을 참았다. 참았으니 그 감정들은 사라졌을까? 아니다. 쌓인 감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 감정은 늘 우리 마음 어딘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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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인 감정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이 ‘미진’이 늘 짜증에 차 있는 이유다. ‘미진’은 무엇 때문에 짜증나는지도 모른 채 늘 모든 것이 짜증스럽다. 이유 모를 짜증 때문에 또 다시 짜증스럽다. ‘미진’의 온 몸에 찐득하게 들러붙은 그 짜증의 정체는 무엇일까? 타자와의 관계에서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당황‧불쾌감‧분노‧억울함)이 뒤엉켜 뒤틀어진 감정이다. 자신의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누구나 짜증, 우울과 같은 이런 부정적 감정의 늪에 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소심함의 해악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표현되지 않은 부정적인 감정은 가장 약한 고리에서 터져 나오게 된다. 이것이 소심함의 더 심각한 해악이다. 부끄러운 고백 하나. 아이가 갓 돌을 넘겼을 때였다. “아이 씨발 좀 자라고!” 밤에 한 시간 마다 잠을 깨고 우는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나는 왜 그랬을까? 아이가 밤에 잠을 자지 않아서? 피곤한데 잠을 잘 수 없어서? 아니다. 그건 직장 상사와 동료들의 무례한 행동에 대해 아무 말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쌓였던 감정이 연약하게 짝이 없는 아이에게 터졌던 게다. 내 인생에서 가장 부끄러웠던 기억은 나의 소심함에서 비롯되었던 셈이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소심함은 이렇게 한 사람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미진' 역시 마찬가지다. ‘미진’은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해주었던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받았다. 소심한 '미진'은 쌓였던 부정적 감정을 늘 남자친구에게 토해냈었기 때문이었다. '미진'은 남자친구를 만날 때마다 이유 없이 짜증을 내었고, 만날 때마다 '죽고 싶다'며 우울한 이야기를 했다. 남자친구는 그 짜증과 우울을 받아내다 지쳐버렸던 것이다. ‘미진’은 이제 진짜 혼자가 되어버렸다. 미진이 혼자가 되어 버린 것은 그녀의 소심함 때문인 셈이다.


소심함을 극복하는 만큼 기쁜 삶이 펼쳐진다.


나는 그 부끄러운 기억을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소중한 이에게 다시는 상처주고 싶지 않았다. 방법은 하나 밖에 없었다. 소심함에서 벗어나기.


“황 대리, 업무가 왜 이리 더딘 거야?”

“부장님이 결제를 늦게 하셔서 그런 겁니다.”


부장의 근거 없는 비난에 적절하게 감정을 표현했다. 부장에게 미운 털이 박혔지만 괜찮았다. 아니 좋았다. 그날 밤, 우는 아이를 따뜻하게 안아주며 재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삶은 야박하다. ‘부장’ 아니면 ‘아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부장에게 쌓인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하면 아이에게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다. 감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미진'도 마찬가지 일 테다. ‘직장’ 아니면 ‘연인’이다. 직장에서 쌓인 부정적 감정을 직장에서 표현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다시 연인에게 짜증과 우울을 쏟아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표현되지 않은 감정을 결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소심함은 무엇인가? 자신의 감정에 정직하지 않으며 그것을 표현하지 않는 마음이다.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고 억누르려고 하는 마음만큼이 우리의 소심함의 정도이다. 이 소심함을 극복하지 못하면 기쁜 삶은 애초에 요원하다. 동료의 싸가지 없는 부탁에 “아, 네 그럴 게요”라고 말하는 이는 기쁜 삶에 이를 수 없다. “이건 좋은 것 같아요.(싫은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이는 기쁜 삶에 이를 수 없다.


소심함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자신의 감정에 정직해지고 그것을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업무를 부탁하면서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죠.”라고 말해야 한다. “이게 좋아요(싫어요)”라고 말해야 한다. 쉽지 않겠지만,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정직하고 명확하게 표현해야 한다. 그렇게 우리 마음속 소심함을 극복할 수 있을 때, 조금 더 기쁜 삶에 이를 수 있다. 소심함을 극복하는 만큼 기쁜 삶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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