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심타파

호전적인 이들은 소심하지 않을까?

호전好戰적인 이들은 소심하지 않을까?


‘진성’은 야근을 마치고 퇴근 중이다. 늦은 밤 도로는 한산하다. 그때 뒤에서 굉음을 내며 차 한 대가 질주해 온다. 그 차의 운전자는 ‘진성’의 차를 추월하는 찰나에 ‘진성’을 비웃듯이 빤히 쳐다보며 쏜살 같이 지나갔다. ‘진성’은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이 화가 났다. 온 힘을 다해 엑셀을 밟아 그 차를 쫓았다. 서 너 개의 빨간불을 무시하며 달렸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계기판을 보았다. 140KM로 달리고 있었다.


‘선희’는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온 후 좋아하는 식당에 밥을 먹으러 왔다. 음식이 평소보다 늦게 나왔다. ‘선희’는 짜증이 조금씩 쌓여가고 있었다. 뒤늦게 나온 파스타를 먹으려는 순간, 머리카락이 한 올 나왔다. ‘선희’는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이 화가 났다. 갑자기 종업원에게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한 참을 짜증을 쏟아 낸 후 주변을 보았다. 한 참을 소리를 질렀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주변을 보았다. 주변사람들이 경멸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진성’과 ‘선희’는 소심한 사람일까? ‘진성’과 ‘선희’는 성숙한 사람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소심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소심한 이들은 언제나 할 말 못하고 눈치 보며 주눅 들어 있는 사람들 아닌가. 그러니 목숨을 걸고 심야의 추격전을 펼치거나 사람들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를 지르는 이를 소심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소심함에 대한 편견이 하나 있다. 호전好戰적인 이들은 소심하지 않다는 것이다. 집안 정리정돈이 안 되었다고 과도하게 화를 내는 부모, 옆 차의 끼어들기에 욕설을 하며 화를 내는 운전자. 음식이 늦게 나온다며 종업원에게 소리를 지르며 짜증을 내는 이. 이런 호전적인 이들은 흔하다. 이들은 소심하지 않은 걸까? 아니다. 호전적인 이들 중 심각하게 소심한 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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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데 목숨을 거는 이유


호전好戰적이라는 것은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는다는 의미다. 어떤 상황과 사람에 대해 맞서 싸우는데 결코 물러섬이 없는 이를 소심하다고 말할 수 없다. 단기필마로 적진 한 가운데로 뛰어 들어가는 전사戰士를 생각해보라. 그는 누구보다 호전적이다. 그 전사를 보며 우리는 당당함과 강건함이 어떤 것인지 확인할 뿐, 어떠한 소심함도 느낄 수 없다. 분명 ‘진성’과 ‘선희’는 호전적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당당하거나 강건하지 않다. 지극히 소심하다.


전사의 호전성은 당당함과 강건함인데, 왜 ‘진성’과 ‘선희’의 호전성은 왜 소심함일까? 싸움의 종류의 차이다. 전사의 싸움은 중요한 싸움이고, ‘진성’과 ‘선희’의 싸움은 사소한 싸움이다. 호전적이라고 다 당당하고 강건한 것이 아니다. 지극히 소심한 이들은 사소한 데 목숨을 거는 경향이 있다. 사소한 데 목숨을 거는 것이 왜 소심함일까? 이는 그들이 왜 사소한 데 목숨을 거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면 된다.


‘진성’은 왜 목숨을 건 심야의 추격전을 했던 걸까? 적진에 홀로 뛰어는 전사의 심정으로 그랬던 걸까? 아니다. 하고 싶지 않던 야근을 했기 때문이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 팀장이 업무를 시켰다. 진성은 자신이 존중받고 있지 못하다고 느꼈다. 바로 그때 젊은 놈 하나 쌩하니 비웃듯 추월을 한 것이다. “이제 네 까짓 것도 나를 무시해!” 그 분노 때문에 ‘진성’은 한 밤에 목숨을 건 추격전을 펼쳤던 게다.


‘선희’는 왜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미친 듯이 화를 내었던 것일까? 나라를 구하는 심정으로 그랬던 걸까? 아니다.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떠난 일주일의 여행에서 ‘선희’는 자신의 마음대로 한 것이 없었다.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쉬는 것도 다 친구들의 기호와 취향에 맞췄다. 자신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었던 일주일에 짜증 누적되어 있었다. 바로 그때 파스타에서 머리카락이 나온 것이었다. “내 돈 내고 사먹는 파스타도 내 마음 대로 안 돼!” 그 분노 때문에 사람들의 경멸의 눈빛을 받는 진상 고객이 되었던 게다.


그렇다. 사소한 데 목숨을 거는 이유는 소심하기 때문이다. “이 업무는 급한 것 같지 않으니 내일 아침에 하겠습니다.” ‘진성’이 팀장에게 이렇게 말했다면 어땠을까? “오늘은 피곤하니까 난 호텔에서 쉴게” ‘선희’가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심야의 추격전을 할 일도, 진상 고객이 되는 일도 없을 테다. 사소한 데 목숨을 거는 이유는 소심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싸움을 하지 못하는 이들은 언제나 사소한 싸움에 목숨을 걸게 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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