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
‘나는 나를 본적이 없다’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 그것은 우리가 타인의 시선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이다. 인간은 타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고 이 사실은 우리의 삶을 필연적으로 불행하게 만든다. 타인의 칭찬과 비난에 목을 매느라 삶을 제대로 살 수 없게 되니까 말이다. 이런 사실은 소심함과 상관이 없다. 이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처한 실존적 조건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 「세미나 11」 자크 라캉
정신분석학자이자 철학자인 자크 라캉의 유명한 말이다. 이는 내가 바라는(욕망)하는 것은 ‘나’가 바라는 것이 아니라 사실 ‘타인’이 바라는(욕망)하는 것이란 의미다. 이는 전혀 어려운 말이 아니다. ‘샤넬’과 ‘벤츠’를 욕망하는 이가 있다고 해보자. 이는 정말 그 자신이 바라는 것일까? 아니다. 그 욕망은 중심에는 언제나 타자가 도사리고 있다.
쉽게 말해, ‘나’가 ‘샤넬’과 ‘벤츠’를 욕망하는 이유는, ‘타자’가 그것을 욕망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욕망은 그 ‘타자’의 욕망을 내면화한 욕망일 뿐이다. 명문대를 욕망하는 아이의 욕망은 정말 그 아이의 것인가? 그것이 아이의 욕망이라면, 부모의 욕망을 내면화한 아이의 욕망일 뿐이다.
지옥은 타인이다.
타자의 욕망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있을 수 없다. ‘나의 욕망은 내 욕망이야!’라는 믿음은 자신의 욕망이 어디서 기원했는지에 대한 성찰 부족의 결과일 뿐이다. 우리는 어느 정도 타자의 욕망을 내면화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소심함이 아니지만 소심함이 자랄 수 있는 토대이기는 하다. 타자의 욕망을 무분별하게 내면화하면 소심하게 된다. 이에 대해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철학자 사르트르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지옥, 그것은 타인들이다.L‘enfer, c’est les autres. 「출구 없는 방」 장 폴 사르트르
사르트르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타인은 지옥만큼이나 유해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런 것도 같다. 우리 주위에 흔한 타인들을 생각해보라. 우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 우리의 삶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예단하며 평가하려 들지 않았는가. 내가 사랑하는 이를 만나러 할 때, “걔는 너무 가난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타인은 얼마나 흔한가. 내가 원하는 직업을 찾아가려 할 때 “그거 하면 굶어죽기 십상이야”라고 말하는 타인은 얼마나 흔한가.
그러니 사르트르의 말은 ‘타인=지옥’이라는 단순한 도식으로 이해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이는 이해보다 오해에 가깝다. 사르트르의 진의는 무엇이었을까? 사르트르는 자신의 희곡 『출구 없는 방』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진의를 설명한 바 있다. “우리는 타인들이 우리를 판대하는 기준으로 우리를 자신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 세상에는 수많은 이들이 지옥에서 살고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타인들의 판단과 평가에 지나치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소심함, 타인이라는 지옥에 사는 마음
라캉과 사르트르의 통찰을 통해 우리는 소심함이 무엇인지에 이야기할 수 있다. 라캉의 말처럼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존재’다. 이것은 인간의 처한 실존적 조건이다. 유한한 인간은 결국 타인과 어울리며 살 수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는 일정 정도 타인의 욕망을 욕망할 수밖에 없다. 타인의 욕망을 전혀 욕망하지 않는 사람도 없다. 즉 인간이라면 일정 정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 수밖에 없다. 그러니 여기에서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어서는 안 된다. 자칫 세상 모든 사람이 소심한 사람으로 규정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할 수밖에 없다”는 이 실존적 조건을 넘어서려 애를 쓰지 않으면 문제가 된다. 즉 불특정다수의 욕망을 무분별하게 내면화할 때 문제가 된다. 타자의 욕망을 무분별하게 내면화한 결과는 무엇인가? 바로 사르트의 말처럼 ‘타인이 곧 지옥’이 되는 상태다. 이제 우리는 소심함에 대한 또 하나의 정의를 더할 수 있다. 사르트르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소심함은 “타인들의 판단과 평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마음 상태다. 즉, 타인이라는 지옥에 사는 마음, 이것이 바로 소심함이다.
소심한 이들의 전형적인 특징이 있다. 항상 타인의 시선에 과도하게 신경 쓰고 또 그 시선에 주눅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타인의 시선을 적절하게 통제하지 못하고 그것에 눌려 있다면 그것은 분명 소심함이다. 그리고 그런 소심함은 우리의 삶을 좀 먹을 수밖에 없다. 소심한 이들에게 크고 작은 불행들이 있지만, 그 중핵에는 타인의 시선에 대한 과도한 의식이 있다. 타인의 시선에 갇혀서 과도하게 타인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만이 필연적으로 타인이라는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너 살찐 것 같아?” 이 말에 소심하지 않은 사람은 그저 ‘그런가?’하고 무심히 지나간다. 하지만 소심한 사람은 ‘대체 어디가 살찐 거지? 어제 먹은 치킨 때문인가? 이상하게 보이면 어쩌지?’라며 하루 종일 그 생각 때문에 괴로울 수밖에 없다. 소심한 이들의 불행은 그렇게 찾아온다. 소심함의 기원은 타인이다. 소심함의 근원적 문제는 바로 이 타인의 시선에서 비롯된다. 우리의 소심함은 결국 타인이라는 시선에 갇힘 때문에 발생한 마음이다. 그러니 그 소심함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언제나 타인이라는 지옥에서 갇혀서 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