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심타파

섬세함과 소심함은 어떻게 다를까?

섬세함과 소심함

“생각해봤는데, 어제 내가 너한테 한 이야기 중에서 잘 못 말한 게 있는 것 같아”
“어제? 소심하게 뭐 그런 걸 신경 쓰고 있냐?”


‘명석’은 어제 술자리에서 ‘경안’에게 직장생활 하소연을 했다. ‘명석’은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 ‘경안’이 막 직장생활을 시작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경안’은 그런 ‘명석’에게 소심하다고 핀잔을 주었다. ‘명석’은 작고 사소한 일에도 좌불안석이 되는 소심한 사람인 걸까? 그리고 작고 사소한 일은 괘념치 않는 담대한 사람일까?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 아니다.


‘명석’은 사람들의 마음을 섬세하게 느끼는 사람일 수도 있고, ‘경안’는 사람들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무심하고 둔감한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세상 사람들은 섬세함과 소심함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섬세한 이들에게 소심하다고 말하기도 하고, 소심한 이들에게 섬세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섬세함과 소심함은 어떻게 다를까? 먼저 왜 이 두 가지 마음이 왜 헷갈리는지부터 알아보자.


섬세함과 소심함은 공통분모가 있다. 그 공통분모는 ‘감정변화의 민감한 포착’과 ‘타인의 마음을 읽으려는 노력’이다. 섬세한 이들과 소심한 이들 모두 감정변화의 차이를 민감하게 포착해낸다. 또한 섬세한 이들과 소심한 이들 모두 타인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한다. 이 두 가지 공통분모 때문에 섬세함과 소심함 사이에서 혼란을 겪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섬세함과 소심함을 구분할 수 있을까? 바로 이 두 가지 공통분모를 통해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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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함과 소심함은 어떻게 다를까?

1. 누구의 감정 변화에 집중하는가?


먼저 ‘감정변화의 민감한 포착’부터 이야기해보자. 섬세한 이들도 소심한 이들도 모두 감정변화를 민감하게 포착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누구의 감정변화를 민감하게 포착하는가?” 이 질문으로 섬세함과 소심함이 명료하게 구분된다. 섬세한 이들은 ‘나’의 감정 변화 차이를 민감하게 포착한다. 반면 소심한 이들은 ‘타인’의 감정의 변화 차이를 민감하게 포착한다.


예를 들어보자. ‘민정’과 ‘은혜’가 비 오는 거리에 서 있다. ‘민정’은 내리는 비를 보며 조금씩 변화되는 자신의 기분을 민감하게 포착한다. “그날도 이렇게 비가 내렸었는데.” 반면 ‘은혜’는 내리는 비를 보고 있는 ‘민정’의 감정 변화를 민감하게 포착한다. “민정이는 지금 우울해졌구나.” ‘민정’은 섬세하고, ‘은혜’는 소심하다. ‘민정’은 자신의 감정 변화에 집중했고, ‘은혜’는 타인(민정)의 감정 변화에 집중했으니까 말이다.


섬세한 이들이 주변 대상의 미세한 차이를 잘 포착하는 것도 그래서다. ‘민정’은 어제의 꽃과 오늘의 꽃의 미세한 차이를 포착해낸다. 또 거의 똑같은 두 노래(혹은 그림)의 미세한 차이 역시 잘 포착해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바로 자신의 감정변화를 민감하게 포착할 수있기 때문이다. 어제 꽃‧노래를 접했을 때의 ‘나’의 감정과 오늘 꽃‧노래를 접했을 때의 ‘나’의 감정은 미세하게 다르다. 바로 그 ‘나’의 감정 변화의 차이를 민감하게 포착할 수 있기 때문에 주변 대상들의 미세한 차이 역시 민감하게 포착할 수 있다.


소심한 이들이 주변 대상의 미세한 차이를 잘 포착하지 못한다. 소심한 ‘은혜’는 때로 무심하고 둔감하다. 이는 당연한 귀결이다. ‘은혜’는 타인의 감정변화에 집중하느라, 정작 자신의 감정변화를 잘 살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은혜’가 어떻게 어제의 꽃과 오늘의 꽃의 차이를, 어제의 햇살과 오늘의 햇살 차이를 구분할 수 있을까. 온통 사장과 상사의 눈치만 보느라 정작 아내와 아이의 감정변화를 포착하지 못하는 소심한 직장인처럼, 소심함은 때로 무심함과 둔감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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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왜 타인의 마음을 읽는가?


여기서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섬세한 이들은 ‘나’의 감정에만 집중할 뿐, ‘타인’의 감정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일까?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섬세함이 아니라 무심함이나 둔감함일 테다. 타인의 감정은 느끼고 싶지도 않고 느낄 수도 없는 무심함과 둔감함. 그것은 섬세함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마음이다. 소심한 이들이 타인의 감정에 집중하는 것처럼, 섬세한 이들 역시 타인의 감정에 마음을 쓴다.


섬세함과 소심함의 공통분모에는 ‘타인의 마음을 읽으려는 노력’이 있다. 둘 모두 타인의 마음을 읽으려고 애를 쓴다. 그렇다면 섬세함과 소심함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왜 타인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하는가?” 이 질문을 통해 구분이 모호한 섬세함과 소심함이라는 두 마음 사이에 결을 낼 수 있다. ‘타인이 상처받을까봐’ 타인의 마음을 읽으려는 노력은 섬세함이다. 반면 ‘자신이 상처받을까봐’ 타인의 마음을 읽으려는 노력은 소심함이다.


다시 ‘민정’과 ‘은혜’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민정’은 ‘은혜’와 이야기를 나눌 때 ‘은혜’의 마음을 읽으려고 애를 쓴다. 혹여 자신이 무심코 내 뱉은 작은 말이 ‘은혜’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은혜’ 역시 마찬가지다. ‘은혜’도 ‘민정’과 만날 때면 ‘은혜’의 마음을 읽으려고 애를 쓰고 매사에 조심스럽다. ‘은혜’는 왜 그랬을까? 민정에게 의도치 않은 상처를 줄까봐? 아니다. ‘민정’에게 버림받을 까봐서다. 그것이 두려워 ‘은혜’는 ‘민정’의 마음을 읽으려고 그리도 애를 쓰는 것이다.


‘민정’은 섬세하고, ‘은혜’는 소심하다. 민정은 타인이 상처받을까봐 타인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했고, 은혜는 자신이 상처받을까봐 타인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타인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모두 소심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때로 섬세함이다. 권위적인 사장과 대화를 하면서 사장의 마음을 읽으려고 애를 쓰는 월급쟁이의 마음과 천진난만한 아이와 대화를 하면서 그 아이의 마음을 읽으려고 애를 쓰는 엄마의 마음이 어찌 같은 마음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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