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은 파악하기 어려운 마음이다.
그렇다면 겸손은 무엇일까? 우리는 겸손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소심한 자기비하나, 소심한 교만함을 겸손이라 오해하는 것도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뭔가’가 있기는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 수 없을 때, 그 ‘뭔가’와 유사해 보이는 것들을 그 ‘뭔가’로 오해 버리기 때문이다. 겸손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겸손은 ‘자신을 내세우려 하지 않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겸손은 어딘가에 항상 존재하지만 좀처럼 파악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제나 드러난 대상만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람은 늘 존재하지만 그것의 존재를 늘 파악할 수는 없다. 펄럭이는 깃발로 드러나야지만 바람을 파악할 수 있다. 겸손도 그렇다. 겸손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려는 마음’이기에 파악하기 어렵다. 그것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으니까.
이것이 우리가 교만함이 어떤 것인지는 분명히 알지만, 겸손함이 어떤 것인지는 분명히 알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교만함은 잘 난 체하고 뽐내려는 마음이기 때문에 그것은 어디서든 선명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겸손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려는 마음이기 때문에 좀처럼 들러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겸손을 드러낼 깃발은 무엇일까? 바로 타인의 인정과 칭찬이다. 타인의 칭찬과 인정을 통해서 겸손이 드러난다.
‘겸손’은 “고맙습니다.”
“이 대리가 일처리 하나는 깔끔하지.”
“고맙습니다.”
‘이 대리’는 겸손하다. 겸손함은 어렵지 않다. “고맙습니다.” 이 간결한 말이 겸손함을 드러낸다. 겸손한 이들도 타인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을 때가 있다. 하지만 이들은 칭찬과 인정 앞에서 ‘자기비하’를 하지도 않고 뒤틀어진 ‘교만함’을 보이지도 않는다. 겸손한 이들은 누군가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으면 ‘고맙다’고 담담하고 간결하게 말한다. 이 담담하고 간결한 ‘고맙다’는 말에는 몇 가지 마음이 중첩되어 있다. 그 중첩된 마음을 하나씩 살펴보면 겸손함이 어떤 것인지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다.
그 중첩된 마음 중 하나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볼 수 있는 마음’이다. 겸손한 이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볼 수 있다. 자신의 ‘밝음’과 ‘어둠’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갖고 있다. ‘이 대리’는 자신이 업무 처리를 잘하지만, 사람을 대하는 부분이 미흡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이 대리’는 ‘고맙다’고 말한 것이다. 자신의 ‘어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밝음’을 봐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어찌 고맙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것이 겸손한 이들이 칭찬과 인정 앞에서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하는 이유다.
그 중첩된 마음에는, ‘칭찬과 인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 마음’도 있다. 겸손한 이들은 타인의 칭찬과 인정 앞에서 담담하고 간결하게 ‘고맙다’고 말한다. ‘이 대리’는 왜 짧고 간결하게 ‘고맙다’고 했을까? 더 이상의 칭찬과 인정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 대리’가 짧고 간결하게 ‘고맙다’고 말한 이유다. 겸손한 이들 역시 칭찬과 인정을 받으면 기분이 좋다. 하지만 그것에 목을 매지 않는다. 겸손한 이들은 이미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밝음과 어둠의 공존)을 긍정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래서 타인의 칭찬과 인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거만함이란 무엇인가?
‘이 대리’는 자신의 업무처리가 꽤 훌륭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것을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에 타인의 필요 이상의 칭찬과 인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신의 역량에 대한 확신이 없는 이들만 타인의 칭찬과 인정에 목을 맨다. 여기서 어떤 이는 이런 ‘이 대리’의 모습에서 자뻑에 빠진 거만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역량에 대한 확신을 너무 쉽게 거만함으로 치부하곤 하니까 말이다.
자신이 가진 역량에 대한 확신(“나는 이것을 잘해”)은 모두 거만함일까? 아니다. ‘이 대리’는 자신의 역량에 대해 확신하지만 결코 거만하지 않다. 거만함은 무엇일까? 자신의 어둠을 외면한 채 밝음에 집착하는 마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자신의 어둠마저 껴안은 밝음은 겸손함이지 결코 거만함이 아니다. ‘이 대리’는 겸손하다. ‘이 대리’는 자신의 어둠을 직시하고 있고, 그런 어둠을 껴안은 채로 밝음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겸손함은 당당함이다.
겸손함은 ‘자신을 내세우려 하지 않는 마음’이다. 이제 그 마음에 대해 조금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겸손함은 소심함이 아니다. 당당함이다. 자신의 ‘밝음’뿐만 아니라 ‘어둠’마저 긍정하는 당당함.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긍정하고 있기 때문에 타인의 칭찬과 인정에 크게 개의치 않는 당당함. 이런 당당함을 가진 이들은 굳이 자신을 내세우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여기기 때문도 아니고 그러고 싶지 않아서도 아니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타인의 칭찬과 인정 앞에서 자신을 비하려는 이도, 타인의 칭찬과 인정을 구걸하느라 뒤틀어진 교만함을 드러내는 이도, 자신의 어둠을 외면한 채 밝음에 집착하는 거만한 이도 모두 소심한 이들일 뿐이다. 타인의 시선에 매인 소심한 이들. ‘자기비하’는 타인의 시선을 피해 도망친 소심함이고, ‘교만함’은 타인의 시선을 구걸하는 소심함이고, ‘거만함’은 타인의 시선에 의해 자신의 어둠이 들통 날까 불안해하는 소심함이다.
소심한 이들은 모두 겸손하지 않다. 아니 겸손할 수 없다. 겸손은 당당한 이들의 역량이니까. 겸손한 이들은 당당하기에 타인의 시선(칭찬과 인정) 피해 숨을 필요도 없다.(자기비하) 또한 겸손한 이들은 당당하기에 타인의 시선(칭찬과 인정)을 끝도 없이 구걸할 필요도 없다.(교만함) 겸손한 이들은 있는 당당하기에 타인의 시선(비판과 비난)이 두려워 자신의 어둠을 외면한 채 밝음에 집착할 필요 없다.(거만함) 겸손한 이들은 당당하기에 이미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우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