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심타파

A형은 소심함과 아무 상관이 없다.

A형은 소심함과 아무 상관이 없다.

“걔는 왜 그리 소심하냐?”
“A형이잖아.”


A형만큼 억울한 사람이 또 있을까? 많은 이들이 ‘A형은 소심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혈액형이 A형이란 죄로, A형은 종종 소심한 사람으로 치부되곤 한다.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비단 A형만 그런 것은 아니다. 혈액형을 기준으로 한 사람의 기질과 성향을 판단하는 일은 흔하다. “그 사람 왠지 괴팍하더라니 AB형이었구나.” “B형은 절대 사귀면 안 돼” “걔는 친구가 많은 거 보니 O형이네” 이런 식의 이야기가 낯설게 들리지 않는다.


결론부터 말하자.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A형과 소심함은 아무 상관이 없다. 혈액형과 한 사람의 성격‧기질‧성향 사이에 특정한 상관관계는 전혀 없다. 이는 특별한 논증이 필요하지 않다.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면 된다. A형 중에 대범한 사람도 많고, AB형 중에 모나지 않은 성격을 가진 이도 많고, O형 중 내성적인 사람도 많다. 이런 단순한 경험론적 관측으로 흔히 말하는 혈액형 별 성격구분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혈액형별 성격구분이라는 허황된 편견은 어떻게 지금처럼 널리 퍼지게 된 것일까?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의식 과잉의 동물이다. 쉽게 말해, ‘나’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이다. 어떤 이가 질병에 걸렸다고 해보자. 그때 어떤 이는 어떤 생각을 할까? ‘나’는 왜 병에 걸렸을까? 왜 하필 ‘나’일까? ‘나’는 너무 아프다. ‘나’는 불쌍하다. 이처럼 온 통 ‘나’에 관한 생각을 하게 된다. 바로 이 자의식 과잉 상태가 혈액형별 성격구분이라는 허황된 편견의 토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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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별 성격구분은 왜 생겼을까?


자의식 과잉 상태인 이들의 특징이 있다. ‘보편성의 개별적 인식’이다. 이는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사실이 자신의 개별적 상황이라고 착각하는 인식상태를 의미한다. 난해한 이야기가 아니다. “너 이기적이지만 사실은 다른 사람 때문에 마음이 아프지?” 한 친구가 말했다. 이때 자의식 과잉인 이들은 “어머, 그걸 어떻게 알았어?”라며 숨겨온 자신의 마음을 들킨 것 마냥 화들짝 놀란다.


이것이 바로 ‘보편성의 개별적 인식’이다. '사이코패스'(예외적인 정서장애 상태)가 아닌 다음에야 누구도 완전히 이기적일 수는 없다. 누구나 이기적인 면도 있고 이타적인 면도 있다. 누구나 자신의 것을 먼저 챙기고 싶지만, 그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것 같아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하지만 자의식 과잉인 이들은 그런 인간의 보편성을 파악하지 못한다. 누구나(타인) 이기적인 면과 이타적인 면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온통 ‘나’에 관한 생각뿐인 사람은 ‘타인’에 관해 생각할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O형은 화끈해.” “AB형은 괴팍해” 이는 진실인가? 아니다. 자의식 과잉 상태인 O형과 AB형들에게만 진실이다. 한 사람에게는 다양한 성격, 기질, 성향이 있다. 모든 이들에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화끈하거나 괴팍한 면이 있다. 그것은 누구나 갖고 있는 보편적인 면이다. 하지만 자의식 과잉인 이들은 온통 ‘나’의 생각뿐이기에 그것이 오직 나에게만 적용되는 개별적인 사안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그 착각(보편성의 개별적 인식)은 손쉽게 믿음(혈액형별 성격구분은 진실이다)이 된다.


그 믿음이 형성되면, 그 믿음을 기준으로 외부세계(타인)을 선별적으로 판단하고 자의적으로 해석하게 된다. 우유부단한 O형을 볼 때 드물게 드러나는 화끈한 면이 부각되고, 화끈함과 상관없는 행동도 화끈함으로 해석하게 된다. 평범한 AB형을 볼 때 괴팍한 면이 부각되고, 괴팍함과 상관없는 행동도 괴팍함으로 해석하게 된다. 혈액형별 성격구분이라는 편견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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