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심타파

소심의 두 가지 얼굴, 자기비하와 교만함

겸손과 소심함이 헷갈리는 이유


소심함과 자주 혼란을 겪는 마음이 있다. 겸손함이다. 세상 사람들은 소심함과 겸손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소심한 사람을 겸손하다고 여기기도 하고, 겸손한 이를 소심하다고 여기기도 한다. 소심함과 겸손함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민선아, 어떻게 그림을 이렇게 잘 그려?”
“아니야. 할 줄 아는 게 그림 밖에 없어”


“박 과장이 보고서는 참 잘 써."
“별말씀을요. 다른 사람들도 다 그 정도는 하는데요. 뭘.”


‘민선’과 ‘박 과장’은 소심한 것일까? 겸손한 것일까? 이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소심과 겸손이 어떤 마음인지를 정의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소심은 타인의 시선에 매인 마음이다. 겸손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마음이다. 이 정의에도 불구하고 ‘박 과장’과 ‘민선’이 소심한지 겸손한지에 대해 분명하게 구별하기 어렵다. ‘민선’과 ‘박 과장’은 타인의 시선에 매인 것인지, 자신을 내세우려 하지 않는 것인지 분명하게 구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소심과 겸손이란 두 마음 상태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이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소심함은 왜 겸손함과 헷갈리게 되었을까? 타인의 시선에 매인 마음(소심함)은 종종 ‘자기비하’와 ‘교만함’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누구나 타인의 인정과 칭찬을 받게 될 때가 있다. 이때 소심한 이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자기를 비하하거나 교만해진다. ‘민선’과 ‘박 과장’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안타까운 소심함, ‘자기비하’


‘민선’은 소심하다. ‘민선’은 타인의 칭찬과 인정 앞에서 늘 자신을 비하한다. 어린 시절부터 민선은 그림을 잘 그렸고, 그림을 잘 그려 받은 크고 작은 상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그런 분명한 성취들에도 불구하고 민선은 종종 자기비하에 빠진다. 왜 그럴까? 타인의 시선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밝음’(장점‧역량‧자부심…)과 ‘어둠’(단점‧무능‧콤플렉스…)이 모두 있다. 하지만 소심한 이들은 타인에 시선에 매여 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어둠’만을 주목할 것이라 믿는다.


‘민선’ 역시 마찬가지다. 민선에게도 ‘밝음’과 ‘어둠’이 동시에 존재한다. ‘민선’은 섬세한 마음을 갖고 있고, 그 마음을 색채와 그림으로 잘 표현할 수 있는 ‘밝음’이 있다. 하지만 동시에 가까운 길도 잘 찾지 못하고, 숫자와 언어에 취약해 학교 공부를 잘 따라가지 못하는 ‘어둠’도 있다. 그 밝음과 어둠의 공존에도 불구하고 ‘민선’은 자신의 ‘밝음’이 부각될 때 자신의 ‘어둠’만을 바라본다. 민선은 타인의 시선에 매여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심한 이들은 너무 쉽게 자기비하에 빠지곤 한다.


기만적인 소심함, ‘교만’


‘박 과장’ 역시 소심하다. 박 과장은 타인의 칭찬과 인정 앞에서 손사래를 치며 그 인정과 칭찬을 거부하려는 제스처를 취한다. 이는 겸손(자신을 내세우려 하지 않는 마음)일까?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이는 교만함이다. 소심한 이들은 종종 교만해진다. 교만함이 무엇인가? 잘 난 체 하며 뽐내고 싶은 마음이다. 소심한 이들이 쉽게 교만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소심함은 타인의 시선에 매인 마음 아닌가? 그런 마음을 가진 이들은 잘 난체 하고 뽐내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야 타인의 칭찬과 인정을 더 자주 더 오래 받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심한 이들은 소심하기에 그들의 교만함은 종종 기묘하게 뒤틀어지곤 한다. 소심한 이들은 소심하기에 노골적으로 잘 난 체하고 뽐낼 수가 없다. 그래서 소심한 이들은 칭찬과 인정을 과도하게 부정하고 거부함으로써 그 칭찬과 인정을 더 자주 더 오래 받으려고 한다. 너무 쉽게 타인의 칭찬과 인정을 인정해버리는 그 칭찬과 인정이 거기서 끝나버리게 될 것을 직감하기 때문이다. 또한 타인의 칭찬과 인정을 부정하고 거부하면 계속에 상대가 그 칭찬과 인정을 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박 과장’이 그렇다. ‘보고서를 잘 썼다’는 칭찬과 인정에 ‘박 과장’은 손사래를 친다. 그 칭찬과 인정을 과도하게 부정하고 거부한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다들 그 정도는 한다.”고 말하며, 동료들은 보고서를 어떻게 썼는지 보고 싶다며 은근한 소동을 벌인다. 박 과장은 소심함에서 교만해진 전형적인 사례다. 그는 타인의 인정과 칭찬을 과도하게 부정하고 거부함으로써 잘 난 체하며 뽐내고 싶다. 그는 늘 타인의 시선에 매여 사는 소심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심한 이들은 쉽게 교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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