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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힘

말하는 것은 영혼을 휘발시키는 일이다. 많이 떠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텅 빈 마음은 증발해버린 영혼의 자리다. 영혼이 휘발되어 텅 빈 마음을 안다. 많이 떠들어서 내 안에 응축된 삶이 풀려버리는 느낌. 달려 나갈 준비로 팽팽해진 허벅지 근육이 맥없이 풀려버리는 느낌. 끝까지 당기지 않은 활시위를 놓아버린 느낌. 비루하고 남루한 인간이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


 말은 말을 낳는다. 말이 말을 낳을 때 비루하고 남루한 인간이 된 것 같다. 어찌 안 그렇겠는가? 말이 말을 낳을 때 하지 않아야 할, 하지 않는 것이 더 좋았을 이야기들을 떠들게 되니까 말이다. 나의 허벅지 근육은 채 달려 나가기도 전 풀려버린다. 끝까지 당기지 않은 활시위를 놓아버린다. 응축된 내 삶은 맥없이 풀려 버린다. 그렇게 비루하고 남루해진 나를 보며 부끄러움에 시달린다.       


 

침묵할 때다. 많이 떠들어 비루하고 남루해진 내가 부끄러울 때. 닥치고 있어야 할 때다. 침묵의 의미를 안다. 침묵의 의미는 말하지 않는데 있지 않다. 여백으로 완성되는 그림처럼, 침묵의 의미는 침묵으로 말하는 데 있다. 여백이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림이 아니라 무의미일 뿐이다. 침묵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삶이 아니라 죽음無다. 말하지 않기 위한 침묵은 텅 빔이고 무이며 죽음이다. 말하기 위한 침묵만이 채움이고, 유이며, 삶이다.


 침묵의 힘을 안다. 침묵은 삶의 응축시키는 일이다. 왜 응축시키는가? 말하기 위해서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무언가를 제대로’ 말해주기 위해서다. ‘무언가를 제대로’ 말하기 위해서는 허벅지 근육이 팽팽해져야 하며, 활이 휠 만큼 활시위를 당겨야 한다. 그런 힘이 있어야 한다. 팽팽해진 허벅지의 힘, 팽팽해진 활시위의 힘. 그 힘으로 뛰어가야 할 곳은 사랑하는 이들이 있는 곳이다. 그 힘으로 쏘아야 할 과녁은 사랑하는 이들의 고통이 있는 곳이다.


 허벅지가 팽팽해지지 않았다면 달려 나가서는 안 된다. 활시위가 팽팽해지지 않았다면 화살을 쏘면 안 된다. 그런 힘이 없다면 침묵해야 한다. 침묵이 없다면, ‘무언가를 제대로’ 말할 수 없다. 응축되지 않은 삶이 떠드는 말은 부끄러울 뿐이다. 거울 앞에서 부끄러워하며 다시 깨닫는다. 말과 침묵 사이의 균형을 잡는 일. 그것이 철학을 하며 글을 쓰는 사람이 가져야 할 역량임을. 그것이 누군가를 가르치며 살아가야 하는 선생이 숨 쉴 수 있는 방법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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