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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가장 힘든 일

글쓰기 수업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당신은 지금 가장 어려운 것을 해내신 겁니다.” 어느 복싱 체육관을 문을 열고 들어간 벽면에 붙어있었던 문구였습니다. 웃음이 났습니다. 지나 간 제 삶이 주마등처럼 스쳤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격투기 도장 앞에서 몇 번을 서성거렸는지 모릅니다. 대포 터지는 소리, 윽박지르는 욕설들, 비명 소리. 그것이 무서워 체육관 앞에서 몇 번을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친 척하며 두 눈을 질끈 감고 체육관 문을 열었습니다.         


 도장 문을 열게 되어 알게 되었습니다. 대포 터지는 소리는 힘껏 샌드백을 때리는 소리였으며, 윽박지르는 욕설은 응원과 격려의 이야기였으며, 비명 소리는 절대지지 않겠다는 다짐의 목소리였음을 말입니다. 저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도장으로 향할 때면 느꼈던 작은 떨림은, 나이가 들어 낯선 곳으로 떠나기 위해 공항으로 향할 때의 그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여행을 떠났던 것이죠.      


 여행은, 적어도 진짜 여행은 두려운 일입니다.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도장의 삶을 여행하며 무엇이 가장 어려웠을까요? 손이 다 까질 때까지 샌드백을 때려야 하는 것? 숨이 턱까지 찰 때까지 땀을 흘려야 하는 것? 입술이 터지고 코피가 날 때까지 싸워야 하는 것?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어려운 일을 해내면 자연스럽게 또는 웃으며 배워나갈 수 있는 일입니다. 가장 어려운 일은 바로 체육관을 문을 여는 일입니다.      


 모든 여행은 그렇습니다. 떠나지 말아야 수백 수천 가지 이유가 우리를 떠나지 못하게 잡아 붙들죠. 여행은 두려운 일이니까요. 그래서 여행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공항 문을 여는 일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여행을 떠날 때 가장 힘든 일입니다. 이 말은, '여행의 첫발을 내딛으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 의미만을 담고 있는 게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습니다. 왜 도장 문을 여는 것이 그리도 두려웠을까요? 왜 공항 문을 여는 것이 그리도 두려웠을까요? 어떤 이는 아무 두려움이 없이 도장과 공항 문을 열지 않던가요? 하지만 저는 왜 그리 긴 시간 동안 도장과 공항 문 앞에서 두려워했던 걸까요? 그것이 제가 진짜로 원했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체육관 문 앞에서 그리도 긴장되고 떨렸던 이유를 이제는 압니다. 그것은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라 그 두려움에 설렘과 기대까지 중첩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진실로 원하는 일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도장과 공항 문을 열기가 그토록 어려웠던 이유이고, 동시에 우리가 두려워하는 일을 해보아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그곳에 바로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삶으로 가는 실마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지금 가장 어려운 것을 해내신 겁니다.” 어느 체육관의 문구는 그 내용과 장소가 바뀌어야 합니다. 저는 ‘도장’ 문 앞에 이렇게 적어 놓고 싶습니다. “당신은 가장 하고 싶은 일 앞에서 서 계신 겁니다.” 이제 우리 두려움의 안의 설렘을 보며,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을 시작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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