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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因果'를 넘어 '연기緣起'로

세상 사람들은 어떤 세계에서 사는가? 인과因果의 세계다. 아침(원인)이 되면 해(결과)가 뜨고, 공부(원인)를 하면 성적이 오르고(결과), 일(원인)을 하면 돈(결과)이 생기는 세계에서 산다. 우리는 모든 것을 인과, 즉 원인과 결과로 해석한다. 이런 인과의 세계가 허구라는 사실을 발견한 이들은 ‘회의주의자’다. 모든 것을 의심했던 회의주의자들은 원인(아침)-결과(일출)라는 인과관계는 아직 반례가 발견되지 않은 자주 반복된 우연일 뿐이고, 또한 자주 반복된 우연을 필연으로 보는 습관이라고 본다. 철학적으로 이러한 관점을 ‘회의주의’라고 한다.      


 인과因果관계의 허구성을 발견한 회의주의자들이 혼란에 잠식당하거나 비관주의나 염세주의에 손쉽게 빠져 들곤 한다. (세상에 믿을 수 있는 건 없어!) 당연하지 않은가. 아침이 되어도 해가 뜨지 않을 수 있다고, 파란불이어도 차가 들이닥칠지 모른다고, 일을 해도 돈을 벌 수 없을지 모른다고 진짜로 의심하는 이들의 삶을 생각해보라. 그들은 혼란 속에 살거나 비관‧염세적으로 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회의주의자들은 삶의 진실을 본 것일까? 아니다. 그들은 삶의 진실을 보지 못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절반의 진실을 본 것이다.      


 회의주의자들의 진단처럼, 인과관계는 삶의 진실이 아니다. 특정한 원인이 특정한 결과를 담보하지 않는다. 봄(원인)이 와도 꽃(결과)이 피지 않을 수 있다. 열심히 일(원인)해도 돈(결과)을 못 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네 삶은 일대 혼란으로 들어서던지 아니면 비관주의와 염세주의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일까? 아니다. 인과因果의 세계가 허구라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혼란스러운 세계, 비관‧염세적 세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회의주의자들은 무엇을 놓친 것일까?      



 삶은 인과관계로 구성되지 않는다. ‘연기緣起’적으로 구성된다. ‘연기’란 무엇인가? 이는 불교의 주요 개념 중 하나로, 말 그대로 ‘인연緣이 일어난다起’는 의미다. 그렇다면 인연因緣은 무엇일까? 인因은 직접적 원인causes을 의미하고, 연緣은 간접적 조건conditions을 의미한다. 즉, 연기는 직접적 원인과 간접적인 조건들이 상호작용하여 일어나는 것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연기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는 pratitya-samutpada이다. 이것은 원인과 조건이 상호의존해서pratitya 일어난 것samutpada이라는 의미다.)

      

 이제 우리는 왜 인과관계가 삶의 진실이 아닌지 규명할 수 있다. 거기에는 ‘조건’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세계는 ‘원인-결과’의 구성되어 있지 않다. ‘원인-조건-결과’로 구성되어 있다. 봄이 와도 피지 않는 꽃이 있다. 왜인가? 따뜻한 날씨라는 ‘원인’은 갖춰졌지만, 비옥한 토양과 적당한 수분이라는 ‘조건’이 만들어지지 않은 까닭이다. 왜 열심히 일했는데 돈을 벌지 못했을까? 노동이라는 ‘원인’은 갖춰졌지만, 탐욕적이고 부조리한 자본주의적 구조라는 ‘조건’을 변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과관계는 유아론적 도식이다. 원인이 있다고 결과가 도출되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복잡한 조건들을 제거하고 세상을 자기편한데로 해석하려는 유아론에 다름 아니다.       


 삶의 진실은 연기에 있다. 원인과 조건의 상호작용! 세상 모든 존재들은 ‘연기’적으로 생성되고 또 소멸된다. 그래서 삶은 서둘러서도 안 되고, 포기해서도 안 된다. ‘조건’이 무엇인가? 그것은 수 없이 많은 원인들의 배치이며 조합이다. 중첩된 원인들이 조합되는 배치가 바로 원인이다. (아장스망arrangement!) 우리가 하는 노력들은 원인이 아니다. 수없이 많은 원인들로 구성된 조건 속의 하나의 항(원인)을 추가하는 것이다. (다중체multiplicity!) 인과관계의 ‘결과’는 연기의 ‘연(조건)’이다. 하나의 원인을 더 했을 때 미묘하게 변화된 조건, 그것이 바로 결과다. 


 삶이 ‘인연’으로 구성된다면, 삶은 원인과 원인들의 조합의 상호작용으로 구성된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 하나의 원인으로 모든 것을 이루려는 조바심도 어리석고, 몇 개의 원인이 있었지만 결과를 도출하지 못해 포기하는 비관주의 또한 어리석다. 조바심과 포기 사이의 묵묵함은 연기를 깨달은 자들의 지혜로움이다. 결과를 기대하지 말라! 찰나의 조건이 바로 결과일 뿐이다. 그저 묵묵히 원인을 쌓고, 쌓고, 쌓아서 원인들의 조합(조건)을 생성해나가라! 삶은 그렇게 구성된다. 삶은 공空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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