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마음은 부처가 아니다.

남전(南泉) 화상이 말했다. “마음은 부처가 아니고心不是佛, 앎은 도가 아니다智不是道” 『무문관 제 34칙』


온 마음을 다했던 수업이 끝났다. 직업을 잘못 선택한 것일까? 말과 글로 떠드는 것을 직업으로 하고 있다. 이는 내가 좋아서 선택한 일이지만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다. 무엇이 안 좋은가? 말과 글로 한 참을 떠들고 나면, 자신마저 속을 때가 있다. “나는 깨달았구나!” 왜 안 그럴까? 특히나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들어주는 이들 앞에서 세상만사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떠들고 나면 그런 자기기만이 생기지 않기 어렵다.      


 수업이 끝나면 한 참 동안 공허하다. 그 공허는 내 속에 가득 차 있던 말이 빠져나가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런 것이야 또 보고 읽고 느끼고 사유하며 채워 넣으면 될 일이다. 진정으로 나를 괴롭히는 공허는, 내가 떠들었던 말들이 과거의 내 삶 안에 있었을 뿐, 지금 내 삶 안에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허감이다. 많이 떠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텅 비어서 내일은 글 한 줄도, 말 한마디도 떠들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에 시달렸다.      


 나는 깨달았는가? 그렇다. 나의 앎과, 나의 마음은 그렇다. 진지하게 공부하려 했고, 진지하게 사랑하려했다. 그 사이에 나의 앎과 마음은 깨달음에 이른 적이 있다. “이것이 지혜로운 마음이구나!” 많이 떠든 죄로 공허함에 짓눌려 묻는다. 그것은 진정한 깨달음인가? 아니다. 마음과 앎의 깨달음은 얼마나 공허하고 허망하던가.      


 ‘집착을 놓을 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것을 깨달은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하지만 나는 타자들이 우글거리는 세계 속에서 매순간 정말 그렇게 살아내고 있는가? ‘사랑은 사랑의 확장이다.’ ‘사랑은 내가 아니라 너를 아끼는 일이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다’ 이것을 깨달은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하지만 나는 타자들이 우글거리는 세계 속에서 매순간 정말 그렇게 사랑하고 있는가? 나는 때로 집착했고, 나는 때로 사랑의 확장을 멈췄으며, 나는 때로 나를 아끼려 했으며, 나는 때로 사랑을 소유하려 했다.      


 많이 떠들고 돌아온 밤, 남전의 사자후가 어깨를 내려친다. “마음은 부처가 아니고, 앎은 도가 아니다!” 내가 어떤 마음을 갖고 있던 그것은 ‘부처’가 아니다. 내가 무엇을 알고 있건 그것은 ‘도(진리)’가 아니다. 마음으로 ‘부처’가 될 수는 없는 법이다. 앎(지혜)으로 ‘도’를 깨우칠 수는 없는 법이다. 진정한 깨달음은 마음에 있다거나, 앎(지혜)에 있지 않다. 진정한 깨달음은, 타자들이 우글대는 세계 속에서 매순간 확증되는 것이다.     


 깨달음에 대해 많이 떠든 자가 숨 쉴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자신의 깨달음을 타자들이 우글거리는 세계 속에서 매순간 확인하고 증명하는 것. 이것은 고통스러운 일이 될 테다. 마음과 앎의 깨달음은 즐거움이다. 깨달았다는 착각만큼이나 즐거운 일이 없으니까. 하지만 온 몸으로 해야 하는 깨달음의 확증은 고통스럽다. 집착을 놓는 일, 사랑을 확장하는 일, 내가 아니라 너를 아끼는 일, 사랑을 소유하지 않는 일. 이 모든 확증의 과정은 고통스럽기 이를 데가 없다. 그 뿐인가? 때로 깨달음의 확증은 실패할 때 자신은 아직 진정으로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을 아프게 받아들여한다. 이 고통 역시 전자의 고통만큼이나 고통스럽다. 


 그렇다. 많이 떠든 자가 숨 쉴 곳은 고통 속이다. 타자들이 우글거리는 세계 속의 고통. 말과 글을 쉴 새 없이 뱉어내는 자에게 주어진 삶은 두 가지다. 고통 속에서 숨을 쉴 것인지, 고통 없이 질식할 것인지. 깨달음이 저주라는 것을 깨달은 이들만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미소짓고 깨달음에 이를 수는 없다. 깨달음에 이른 후에도 미소짓을 수 없다. 깨달음의 미소는 깨달음의 찰나에만 있다. 염화미소拈華微笑!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희망 없이 사랑하는" 법을 또 다시 배워가고 있다. 내가 사랑했던 이들의 눈망울을 기억하고 있다. 기왕 나선 길 아닌가. 멈추지 않고 나의 길을 가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얼음 아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