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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시간은 달리 간다.

철학흥신소라는 헤테로토피아

헤테로토피아.
‘다른, 낯선’이란 의미의 헤테로heteros와 ‘장소’라는 뜻의 토포스topos가 합쳐진 단어로 ‘일상의 공간과 ‘다른 공간’이란 뜻이다. 장소이면서 동시에 모든 장소들의 바깥에 있는 곳을 의미하는 푸코의 미완의 개념.     


문득 ‘우리’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당황스러울 때가 있어요.


‘우리’는 왜 이렇게 빨리 정신적 키가 훌쩍 자랐을까요?

‘우리’는 왜 이렇게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었을까요?

'우리'는 왜 가끔 현실 속에서 낯섦과 현기증을 느낄까요?     


‘우리’의 시간이 달리 갔기 때문이에요.

시간은 결코 어디서나 같게 흐르지 않아요.

현실은 현실의 시간이 있고, ‘우리’는 ‘우리’의 시간이 있어요.      


현실의 시간은, 하루가 모여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 모여 한 달이 되죠.

이것이 우리 밖에 있는 현실의 시간이겠죠.      


‘우리’의 시간은 그와 달리 흘러요.  

‘우리’가 함께 할 때, 하루가 몇 번 접혀서 하루가 일주일의 시간처럼 느껴요.

하루를 함께하면 일주일을 함께 한 것이고, 한 달을 함께 하면 7달을 함께 한 것이고, 1년을 함께하면 우리는 7년을 함께 한 거예요.      


‘우리’는 빨리 성숙해졌던 게 아니에요. 긴 시간을 고민했던 거예요.

‘우리’는 빨리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된 게 아니에요. 긴 시간 함께 했던 거예요.

‘우리’가 현실 밖에 낯섦과 현기증을 느꼈던 당연한 거예요. ‘우리’는 시간을 넘나들었으니까요.

  

‘우리’의 삶이 끝날 때까지 ‘우리’의 시간 속에 있고 싶어요.

‘우리’ 밖에서는 결코 지날 수 없었던 긴 시간을 살고 싶어요.

그렇게 충분히 오래 살아서 삶의 끝에 왔을 때, 평온한 미소로 말하고 싶어요.

“여한餘恨 없이 살고 간다.”


올해 여러분들 덕분에 7년을 살았고, 내년도 여러분들과 함께 7년을 살고 싶어요.

일곱 번의 하루를, 일곱 번의 한 해를 선물해주어서 고맙습니다.

그 고마움 잊지 않고, ‘철학흥신소’라는 ‘헤테로토피아’에서 ‘우리’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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