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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라는 수행을 견디고 있는 이들에게

‘철학’은 무엇일까요? 저는 ‘철학’을 이렇게 정의하고 싶습니다. 아직 오직 않은 시대를 더듬어 보려는 노력. 여기에 철학이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철학은 우리 시대 너머에 있기 때문이죠. 우리 시대에 있는 것들(돈, 권력, 명예)이야 명료하게 보이지만, 우리 시대 넘어 있는 것들(혼자이면서 함께하는 법, 권력 없는 권력, 불명예스러운 명예)은 어둠 속에서 길을 더듬어 가듯이 모호하고 불투명하고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니 ‘철학’을 공부할 때 두 가지 측면에서 조금은 여유를 두어야 합니다. 첫째, 앎을 이해할 수 없어도 기다려볼 것. ‘철학’은 어렵죠. 그 앎 자체를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그것은 희미하게 불투명하게 모호하게 보이는 우리의 미래의 일이니까요. 그러니 조바심 내지 말고 앎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여유를 가져야 해요. 그 여유를 갖고 차이나는 반복을 하며, 그 반복을 통한 차이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둘째, 앎이 삶이 되지 않아도 스스로 다그치지 말 것. ‘철학’은 어렵죠. 그건 그 철학적 앎을 이해했을 때 더욱 그럴 거예요. 모르면 차라리 마음이 편하지만, 알게 되면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한 자신을 자꾸만 다그치게 되기 때문이에요. 그 ‘더 큰 어려움’은 불쾌함과 불편함의 다른 이름이겠죠. 그러니 앎이 삶이 되지 못했다고, 그 앎으로 삶을 살아내고 있지 못하다고 스스로를 과도하게 다그쳐서는 안 돼요. 그것 역시 당연한 일이에요. ‘철학’은 우리의 미래의 일이니까요. 앎과 삶의 불일치가 야기하는 불쾌함과 불편함을 견디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앎이 삶이 되어가고 있는 과정(차이나는 반복)이니까요.     


‘철학’은 수행이에요. 모호하고 불투명한 그래서 난해한 앎을 더듬어 이해해보려 발버둥치는 수행. 그렇게 알게 된 앎을 삶으로 ‘배치(연결)’시켜보려는 수행. 그 ‘배치(연결)’가 잘 되지 않아 피할 수 없는 불쾌함과 불편함을 견디는 수행. 하지만 잊지 마세요. '철학'이라는 수행은 고되지만 기쁜 삶으로 가는 수행이라는 사실을요. 그 수행을 이어가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두 가지 여유가 필요할 거예요. 


 앎을 이해할 수 없어도 기다릴 수 있는 여유. 앎이 삶이 되지 않아도 스스로 다그치지 않을 여유. 그 여유라는 공간을 꼭 만들어야 해요. ‘철학’은 그 공간 속에서 우리네 삶에 ‘배치(연결)’될 테니까요. 어디인가에서 ‘철학’이라는 수행을 하느라 힘든 분들이 있다면 이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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