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로소이다.

오조(五祖)가 말했다. “비유하자면, 소가 창문을 통과할 때 머리와 뿔, 네 다리는 모두 통과했는데 어째서 꼬리는 통과하지 못하는가?”五祖曰, 譬如水牯牛過窗櫺, 頭角四蹄都過了, 因甚麼尾巴過不得. 『무문관 제 38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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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개사육장에 산다. 좁디좁은 철장에서 산다. 가끔 주인은 우리에게 찬 물을 뿌리기도 하고, 갑자기 우리를 때리가도 하고, 몇몇 친구들을 밖으로 꺼내 어디론가 데려가기도 한다. 우리는 왜 사는지 모른다. 밥을 기다리며 사는 것 같기도 하고, 오늘은 주인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 그저 죽는 날만 기다리며 사는 것 같기도 하다. 친구들은 모두 축져진 귀와 꼬리로 웅크리며 무기력하다. 친구들의 그런 모습이 이해도 되었다가, 또 화도 났다가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내 옆 철장에는 유독 눈망울이 큰 친구가 있다. 우리는 종종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그 친구의 눈망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축져진 귀와 꼬리로 무기력하게 웅크리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땅을 파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몸이 딱 끼일 만큼의 공간만 나올 뿐 더 이상 땅은 파지지 않았다. 이 사육장을 빠져 나갈 방법을 깨달았다. 어깨를 빼면 된다. 어깨를 힘껏 철장에 박았다. “깨갱!” 어깨도 빠졌고, 나도 철장에서 빠져나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드넓은 초원에서 한 번도 달려보지 못한 속도로 신나게 달렸다. 신났다. 그곳을 누비다 유쾌한 견생을 살고 있는 씩씩한 들개들도 만났다. 그때 알았다. “나는 달리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이구나!” 한 참을 달리다, 목이 말라 시냇물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목을 축이고 나서 물 위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젠장. 쫑긋하게 서 있는 귀와 꼬리만 보였어야 했는데, 그 모습은 이내 사라지고, 물이 보였다. 나를 비춰주던 눈망울이 보였다. 그 친구가 자꾸만 자꾸만 생각났다.


불길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다시 사육장으로 향했다. 주인의 눈을 피해 조심스레 눈망울이 큰 친구에게 다가가 말했다. “땅을 파. 그리고 어깨를 빼” 친구는 말했다. “어깨를 빼라고? 너무 아플 것 같은데? 뺐는데도 안 빠져 나가지면 어떻게 해?” 답답한 마음에 소리를 쳤다. “그럼 계속 거기 있을 거야? 빠져나와 진다니까!” 목에 서늘한 기운이 든다. 오싹하다. 주인이 올가미로 내 목을 잡아챘다. “깨개갱!” 온 몸을 뒤틀며 저항해보았지만 올가미가 더 세게 내 목을 조일 뿐이다. 다시 철장 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이제 나는 절망할 필요는 없다, 어깨를 빼는 고통만 감당할 수 있다면, 언제든 철장 밖으로 나갈 수 있으니까. 주인이 잠든 밤, 나는 다시 땅을 파고 어깨를 뺐다. 그리고 친구에게 다시 말했다. “같이 가자!” 큰 눈망울만큼 겁이 많은 친구는 계속 주저하고 있었다. 나는 정말 친구를 뒤로 하고 떠나고 싶었다. 드넓은 초원과 시냇물 그리고 그 곳을 누비는 들개 친구들. 나는 친구를 외면하고 그곳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 친구를 두고는 초원을 달리는 삶이 그다지 유쾌할 것 같지 않아서.


철창에 갇힌 친구를 철장 밖에서 물끄러미 쳐다본다. 더 이상 채근하지 않는다. 채근할수록 그 친구는 더 무기력해지고 있음을 느껴서다. 그저 몸은 철장 밖에 두고, 꼬리만 그 친구의 철장 안에 남겨둔다. 꼬리는 철장안과 밖 그 사이에 있다. 그렇게 날이 밝았다. 잠에서 깬 주인은 그 황당한 모습을 보며 비웃으며 말한다. “멍청한 개새끼. 철장 밖으로 나왔으면 빨리 도망갔어야지” 내 목에는 다시 올가미가 죄여졌고, 다시 철장 안에 갇혔다. 다시 갇힌 나는, 슬픔도 기쁨도 아닌 잔잔한 마음으로 혼자 읊조린다. “나는 개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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