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나는 개로소이다.

오조(五祖)가 말했다. “비유하자면, 소가 창문을 통과할 때 머리와 뿔, 네 다리는 모두 통과했는데 어째서 꼬리는 통과하지 못하는가?”五祖曰, 譬如水牯牛過窗櫺, 頭角四蹄都過了, 因甚麼尾巴過不得. 『무문관 제 38칙』

                                                     

       

우리는 개사육장에 산다. 좁디좁은 철장에서 산다. 가끔 주인은 우리에게 찬 물을 뿌리기도 하고, 갑자기 우리를 때리가도 하고, 몇몇 친구들을 밖으로 꺼내 어디론가 데려가기도 한다. 우리는 왜 사는지 모른다. 밥을 기다리며 사는 것 같기도 하고, 오늘은 주인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 그저 죽는 날만 기다리며 사는 것 같기도 하다. 친구들은 모두 축져진 귀와 꼬리로 웅크리며 무기력하다. 친구들의 그런 모습이 이해도 되었다가, 또 화도 났다가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내 옆 철장에는 유독 눈망울이 큰 친구가 있다. 우리는 종종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그 친구의 눈망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축져진 귀와 꼬리로 무기력하게 웅크리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땅을 파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몸이 딱 끼일 만큼의 공간만 나올 뿐 더 이상 땅은 파지지 않았다. 이 사육장을 빠져 나갈 방법을 깨달았다. 어깨를 빼면 된다. 어깨를 힘껏 철장에 박았다. “깨갱!” 어깨도 빠졌고, 나도 철장에서 빠져나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드넓은 초원에서 한 번도 달려보지 못한 속도로 신나게 달렸다. 신났다. 그곳을 누비다 유쾌한 견생을 살고 있는 씩씩한 들개들도 만났다. 그때 알았다. “나는 달리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이구나!”  한 참을 달리다, 목이 말라 시냇물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목을 축이고 나서 물 위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젠장. 쫑긋하게 서 있는 귀와 꼬리만 보였어야 했는데, 그 모습은 이내 사라지고, 물이 보였다. 나를 비춰주던 눈망울이 보였다. 그 친구가 자꾸만 자꾸만 생각났다.  

    

 불길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다시 사육장으로 향했다. 주인의 눈을 피해 조심스레 눈망울이 큰 친구에게 다가가 말했다. “땅을 파. 그리고 어깨를 빼” 친구는 말했다. “어깨를 빼라고? 너무 아플 것 같은데? 뺐는데도 안 빠져 나가지면 어떻게 해?” 답답한 마음에 소리를 쳤다. “그럼 계속 거기 있을 거야? 빠져나와 진다니까!” 목에 서늘한 기운이 든다. 오싹하다. 주인이 올가미로 내 목을 잡아챘다. “깨개갱!” 온 몸을 뒤틀며 저항해보았지만 올가미가 더 세게 내 목을 조일 뿐이다. 다시 철장 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이제 나는 절망할 필요는 없다, 어깨를 빼는 고통만 감당할 수 있다면, 언제든 철장 밖으로 나갈 수 있으니까. 주인이 잠든 밤, 나는 다시 땅을 파고 어깨를 뺐다. 그리고 친구에게 다시 말했다. “같이 가자!” 큰 눈망울만큼 겁이 많은 친구는 계속 주저하고 있었다. 나는 정말 친구를 뒤로 하고 떠나고 싶었다. 드넓은 초원과 시냇물 그리고 그 곳을 누비는 들개 친구들. 나는 친구를 외면하고 그곳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 친구를 두고는 초원을 달리는 삶이 그다지 유쾌할 것 같지 않아서.


 철창에 갇힌 친구를 철장 밖에서 물끄러미 쳐다본다. 더 이상 채근하지 않는다. 채근할수록 그 친구는 더 무기력해지고 있음을 느껴서다. 그저 몸은 철장 밖에 두고, 꼬리만 그 친구의 철장 안에 남겨둔다. 꼬리는 철장안과 밖 그 사이에 있다. 그렇게 날이 밝았다. 잠에서 깬 주인은 그 황당한 모습을 보며 비웃으며 말한다. “멍청한 개새끼. 철장 밖으로 나왔으면 빨리 도망갔어야지” 내 목에는 다시 올가미가 죄여졌고, 다시 철장 안에 갇혔다. 다시 갇힌 나는, 슬픔도 기쁨도 아닌 잔잔한 마음으로 혼자 읊조린다. “나는 개로소이다.”                 




작가의 이전글 '철학'이라는 수행을 견디고 있는 이들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