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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이라는 피해의식의 얼굴

돈에 관한 피해의식을 생각해보자. ‘재길’은 가난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난한 유년시절을 피할 수 없었다. 아빠는 돈을 벌려 나간 건지 빚쟁이들을 피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늘 곁에 없었다. 남겨진 ‘재길’과 엄마는 모텔을 전전해야 할 만큼 가난했다. 옆 방 연인의 신음소리가 8살 아이의 귀에 들릴까 엄마는 흐느끼며 ‘재길’의 귀를 막아주었다. ‘재길’은 돈 때문에 크고 작은 상처를 받았고 그로 인해 과도한 자기방어의 마음이 생겼다. “비참하게 살지 않으려면 무조건 돈이 많아야 해!”          


 불행인지 다행인지 ‘재길’은 대기업에 취업을 했다. 어느 정도 경제적인 안정을 이루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재길’은 쉴 줄을 몰랐다. 아니 쉴 수 없었다. 직장 일은 물론이고, 주식에 투자에 경매까지 늘 정신없이 바쁘게 지냈다. “재길씨처럼 책임감 있고 성실한 사람도 없어” 세상 사람들의 칭찬이 무색할 정도로, ‘재길’의 몸과 마음은 잿빛이 되어갔다. ‘재길’은 왜 그리 돈을 벌려고 했던 걸까?      


 바로 두려움 때문이었다. 돈 없는 삶에 대한 두려움. ‘재길’은 통장에 크고 작은 돈이 빠져나갈 때마다 두려움에 휩싸였다. 왜 그랬을까? 이미 적지 않은 돈을 모아 어느 정도의 경제적 안정을 이루었는데 말이다. 다른 사람에겐 이해되지 않을 일이 ‘재길’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크고 작은 돈이 빠져 나갈 때마다 ‘재길’은 다시 음습한 모텔에서 엄마와 부둥켜안고 울고 있던 아이로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피해의식은 두려움이라는 얼굴로 우리를 찾아온다. (과거 상처 때문에 발생한) 두려움에 휩싸일 때 우리는 과도하게 자신을 방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생각만으로 온 몸이 저릴 만큼 두려운 대상이 있을 때 어찌 과도하게 자신을 방어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재길’은 알고 있을까? 그 두려움 때문에 ‘재길’ 역시 자신이 그리도 미워했던 아빠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사업 실패로 아이 곁에 있어주지 못했던 아빠와 밤낮 없이 돈을 벌려고 아이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아빠는 정말 다른 아빠일까? 피해의식이 두려움이라는 얼굴로 우리를 찾아올 때 불행의 전주곡은 이미 시작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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