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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라는 피해의식의 얼굴

성性(젠더)에 관한 피해의식을 생각해보자. ‘민선’은 차별받았다. 오빠와 남동생은 통금도 없었고 외박도 마음대로였지만 ‘민선’은 그렇지 않았다. ‘민선’은 늘 10시까지 집으로 들어와야 했고, 외박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뿐인가?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오빠와 남동생을 늘 우선했고, ‘민선’은 양보를 강요받았다. “엄마 없으니 오빠 밥 좀 챙겨줘라” 시험 기간에 공부하고 있던 ‘민선’은 아버지의 말에 소리를 지르며 집을 나갔다. ‘민선’은 성性(젠더) 때문에 크고 작은 상처를 받았고 그로 인해 과도한 자기방어의 마음이 생겼다. “이렇게 살지 않으려면 무조건 남자랑 맞서 싸워야 해!”


 ‘민선’은 대학에 입학하며 독립을 했다. 독립하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함께 사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민선’은 이제 더 이상 부당한 억압과 차별을 강요받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자유롭게 살던 ‘민선’은 매혹적인 남자를 만나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행복할 줄 만 알았던 연애는 종종 삐그덕 대었다. “오늘 늦었으니까 조심히 들어가.” “왜? 남자들은 괜찮고, 나는 여자라서 조심히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야?” 민선은 사소한 일로 연인과의 다툼이 잦아져 가면서 슬픔에 휩싸였다. 가부장적인 집안만 벗어나면 행복할 줄 알았던 민선은 점점 더 불행해져 갔다. 왜 ‘민선’은 불행해졌던 걸까?


 바로 분노 때문이었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에 대한 분노. “너무 늦지 않게 들어 가” ‘민선’은 남자친구의 진심이 담긴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 말에 갑자기 터져 나오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이미 독립해서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데 말이다. 다른 사람에겐 이해되지 않을 일이 ‘민선’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남자친구의 걱정과 배려의 말에서 ‘민선’은 부당하게 차별하고 양보를 강요받았던 아버지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피해의식은 분노라는 얼굴로 우리를 찾아온다. (과거 상처 때문에 발생한) 분노에 휩싸일 때 우리는 과도하게 자신을 방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아직 치유되지 않아 생각만 해도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대상(성차별)이 있을 때, 그 대상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기만 해도 과도하게 자신을 방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민선’은 알고 있을까? 남자친구의 진심을 보지 못하고 자신의 분노만 보고 있는 ‘민선’의 얼굴은, ‘민선’의 마음은 보지 못하고 가부장적 질서만 보고 있었던 아버지의 얼굴을 점점 닮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분노로 인해서 민선은 그리도 원했던 자유롭고 행복한 삶으로부터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피해의식이 분노라는 얼굴로 찾아올 때 불행의 전주곡은 이미 시작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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