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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복싱은 좋지만 감량은 싫다.

감량에 관하여

복싱은 좋지만 감량은 싫다.


나는 복싱이 좋다. 링에서 상대의 움직임에 맞춰 물 흐르듯이 공격하고 방어하는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모든 체력을 소진한 후 운동을 끝내고 땀복을 벗을 때의 상쾌함, 그리고 땀복 아래로 땀이 물 흐르듯이 떨어질 때의 뿌듯함도 좋다. 그뿐인가? 남들은 지겹다던 거울 앞의 자세 연습도 나는 즐겁다. 복싱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즐거움을 준다. 하긴 그런 즐거움이 없었다면 서른일곱의 나이에 프로복서를 준비하는 황당한 짓을 하지도 않았을 게다.     


 그런데 프로 테스트를 준비하고, 프로 데뷔를 준비하면서 복싱이 하기 싫어진 적이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감량 때문이었다. 나는 체중이 많이 나가는 편이다. 평소 체중이 90kg 정도 나간다. 프로 테스트를 위해서 12kg 정도 감량을 해야 했고, 프로 데뷔를 위해서 14kg을 감량해야 했다. 나로서는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인생 즐거움의 반은 먹는 즐거움”이라는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는 내 지론이기도 했으니까.


 좋아하는 이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건 내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다. 그뿐인가? 게다가 나는 애주가다. '사람이 좋아 술을 마신다'는 거짓말을 이제 하지 않는다. 순수하게 술이 좋다. 그래서 혼자서도 마신다. 늦은 밤 혼자 마시는 술만큼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도 없다. 그런데 젠장, 음식과 술을 좋아하는 내게 감량이라니! 맛있는 음식도 먹지 못하고, 그 좋아하는 술도 마시지 못하는 생활을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는 건 괴로운 일이었다. 



감량에 관하여


결과부터 말하자. 90kg에서 75kg까지 감량했다. 프로데뷔전 계체에서 정확히 75.6kg이었다. 결과만 말하면 쉽다. 하지만 과정은 전혀 쉽지 않았다. 감량 기간 동안 술은 언감생심이었다. 먹는 것도 바나나 하나에 닭 가슴살, 달걀 3개(물론 노른자는 뺀다)이 전부였다. 감량을 하는 동안 거의 매일 이 식단을 유지했다. 맛있는 냄새가 나는 음식점은 애써 피해 다녔고, 사람들을 만나는 약속도 되도록 식사시간을 피했다.      


 감량 기간은 거의 수도승 같은 생활의 연속이었다. 먹는 음식은 절제하고 정해진 훈련은 매일 소화해야 하는 삶이었다. 감량 기간 동안 몸에 기력이 없는 건은 물론이고, 정신도 무기력해져갔다. 그걸로 감량이 끝이 아니었다. 감량의 백미는 ‘수분빼기’다. 다른 격투기도 마찬가지겠지만 복싱도 기량만큼 체중이 중요하다. 프로 복서들은 하루 전날 계체(몸무게 측정)를 하기 때문에 다음 시합 날까지 체중을 많이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프로 선수들이 계체를 하고 체중을 다시 올리는 걸 ‘리바운딩’이라고 한다. 이 ‘리바운딩’에서 중요한 게 바로 ‘수분빼기’다. 근육이나 지방을 뺀 건 단시간에 회복이 불가능하지만 수분으로 뺀 체중만큼은 계체 뒤에 바로 수분을 섭취하는 걸로 회복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단 복싱뿐만 아니라 체중을 재는 스포츠를 하는 프로 선수들은 다들 예외 없이 마지막에는 수분빼기를 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수분빼기가 정말 죽을 맛이다.      


 땀복을 입고 땀을 뺀 후 물을 마시지 못할 때 괴로움은 이루 말을 할 수가 없다. 시합 이틀 전부터는 거의 물을 마시지 않는다. 그때는 목이 말라 잠도 오지 않는다. 바짝 말라가는 입 속을 물로 잠시 헹궈내는 걸로 갈증을 참아 낸다. 그러고도 도저히 안 될 때는 입에 얼음을 물고 잠을 청하기도 한다. 어떤 선수가 목이 너무 말라 밤에 잠이 안와서 얼음을 너무 물고 있어서 다음 날 계체에서 고생을 했다는 에피소드에 웃음보다는 공감이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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