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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좋아하는 일이 싫어하는 일이 될 때

복싱 그리고 감량이 알게 해준, 두 가지

좋아하는 일이 싫어하는 일이 될 때

 

감량의 고통이 절정을 달해 갈 때였다. 급기야 ‘내가 지금 왜 이 짓을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었다. 심지어 나중에는 그 좋아하던 복싱도 하기가 싫어졌다. “먹고 훈련할래? 안 먹고 그냥 누워 잘래?”라고 물으면 “안 먹고 그냥 누워있고 싶어요.”라고 답할 지경이었다. 감량 때문에 복싱이 싫어진 셈이었다.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감량만 없어도 복싱이 정말 재미있을 텐데” 


 프로 시합을 준비하면서 “복싱은 좋지만 감량은 싫다”고 혼자 중얼거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생각은 참 웃긴 생각이다. 복싱이라는 스포츠 안에 감량의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그건 프로든 생활체육이든 다 마찬가지다. 생활체육 시합을 나가더라도 결국 체중을 맞춰야 한다. 물론 그 감량 폭이 프로 선수들보다 덜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생활체육을 나가는 선수도 전날 저녁 한 끼는 굶기도 하고, 최소한 계체 당일 물 한잔 정도는 포기해야 한다. 그게 복싱이다.




 돌아보면 나는 좋아하는 일을 너무 쉽게 포기해버렸다. 정확히는 좋아하는 일이 싫어졌다. 어린 시절 격투기가 좋았지만, 맞는 건 싫었다. 그래서 동네 형과 스파링을 하느라 몇 대 맞고 온 날 격투기가 싫어졌다. 그렇게 나는 격투기가 싫어졌고 그래서 포기해버렸다. 나이가 들어 연애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좋아했던 여자 친구가 있었다. 그녀가 좋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된 그녀의 마뜩찮은 몇 가지 행동이 때문에 그녀가 싫어졌고 이별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가끔 좋아하는 일이 싫어하는 일이 된다. 그건 좋아하는 일은 마냥 좋아야만 한다는 유아적인 바람 때문에 일어나는 일일 게다. 세상에 그런 일은 없다.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싫어하는 일 중에도 좋아하는 일이 있다. 직장은 싫지만 그곳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돈이 좋기 때문 아닌가. 마찬가지다. 좋아하는 일에도 싫은 일이 있을 수 있다. 복싱은 좋지만 감량은 싫을 수 있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여자 친구는 좋지만 그녀의 낭비벽은 싫을 수 있다. 그걸 부정하자는 건 아니다. 



복싱 그리고 감량이 알게 해준, 두 가지


복싱 그리고 감량을 하면서 알게 된 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싫은 일의 좋은 점을 찾는 것보다 좋아하는 일의 싫은 점을 감당하는 삶이 더 행복하다는 것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나는 직장인이었다. 싫었다. 아니 지긋지긋했다. 직장인의 삶이. 하지만 직장인이라는 삶을 벗어던질 수가 없었다. 꼬박꼬박 나오는 안정적인 월급과 빈약한 존재의식을 메어주는 대기업 사원증까지, 그 좋은 점들을 포기할 수 없어서였다. ‘세상에 좋은 일만 하는 사람은 없다’고 합리화를 하며 싫은 일의 좋은 점을 애써 크게 보려 했다.


 지금 나는 글쟁이다. 글을 쓰는 일이 무엇보다 즐겁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산다. 하지만 그 좋은 일을 하지만 그 사이에 괴롭고 싫은 일투성이다. 우선 돈이 없다. 전업 작가로 산다는 건, 가난을 끼고 산다는 말과 동의어다. 그뿐인가? 누가 무슨 일을 하냐는 질문에 ‘글쓴다’라고 답했을 때 순간 싹 해지는 분위기도 싫다. ‘이대로 살아서 애 둘을 잘 키울 수 있을까?’라는 수시로 드는 의문은 이 삶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알 수 없을 괴로움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고되게 괴롭고 싫은 일들 역시 도처에 널린 삶을 살고 있다.


 싫은 일을 하며 좋은 점을 느꼈던 직장인의 삶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싫은 일을 감당하며 사는 글쟁이의 삶이 더 행복하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그냥 두 가지 삶을 가로지르며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적어도 직장인 시절 나를 옥죄고 있던 우울증은 글쟁이로 살고 있는 지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글쟁이로서의 삶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싫은 점을 감당하는 삶이 더 행복하다고 확신할 수 있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일과 사람을 찾는 데 모든 걸 걸어야 한다.

두 번째는 어떤 일을 좋아한다는 건, 싫어하는 일을 얼마나 버텨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복싱을 정말 좋아한다고 말했던 던 사람 중에 감량이 싫어서 도망친 이가 한 둘이 아니었다. 그들은 정말 복싱을 좋아했던 걸까? 글쎄 잘 모르겠다. 좋을 때는 다 좋다. 어떤 것을 정말 좋아한다는 건 싫은 일을 감당하고 있는가를 보면 된다.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고 해보자. 좋을 때는 다 좋다. 하지만 그/그녀가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계속 했을 때도 좋아해줄 수 있을까?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테다.


 일이든 사람이든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면 그 일 혹은 그 사람의 싫은 점을 감당하게 된다. ‘나는 영화 보는 걸 좋아해!’ ‘나는 엄마를 좋아해!’라는 말은 할 필요가 없다. 영화를 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싫은 일들을 감당하고 있느냐, 엄마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고된 일을 감당하고 있느냐만 점검하면 된다. 더도 덜도 말고 딱 그만큼, 괴롭고 힘든 그래서 싫은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영화와 엄마를 좋아하는 하는 것이다.



 가끔 체육관 회원들이 내게 ‘대단하다’는 말을 하곤 한다. 적지 않은 나이에 먹을 것도 못 먹고 감량하고 훈련하는 게 희한해 보여서 한 말로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그건 대단한 것도 희한한 것도 아니다. 나는 정말 복싱이 좋다. 그래서 그 좋아하는 만큼 고되고 괴로운 일들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일 뿐이다. 복싱이 아니라 농구나 축구였다면, 당장 때려 치고 고기에 낮술을 마시러 달려갔을 게다. 


 나는 글쟁이로 살면서 복서를 준비하면서 분명히 알게 되었다. 싫은 일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할 수 있는 길이라는 걸. 또 누구든 진심으로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과 사람을 찾는 데 사활을 걸어야 한다는 걸. 왜냐고? 너무나 좋아하고 사랑하는 그 일과 그 사람만이 세상살이에서 결코 피할 수 없는 고되고 힘든 싫은 일들을 견뎌내게 해줄 테니까. 고되게 괴로운 많은 일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행복하다. 매일 글을 쓸 수 있고, 매일 글러브를 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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