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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함'이라는 피해의식의 얼굴

피해의식의 가장 모호한 얼굴, 우울함


우울함은 피해의식의 대표적 얼굴 중 하나다. 우울한 이들이 모두 피해의식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피해의식에 휩싸인 이들은 반드시 우울하다. 흔히 우울함과 무기력을 유사한 상태로 여기지만 둘은 다르다. 우울함이 지속되어 만성 우울증이 될 때 전혀 무기력하지 않은 상태(예컨대 조증躁症)가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피해의식의 가장 선명한 얼굴이 억울함이라면, 가장 모호한 얼굴이 바로 우울함이다. 왜 그런가? 피해의식의 강도에 따라, 우울함이라는 얼굴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피해의식이 약한 이들의 우울함은 가벼운 ‘우울감’으로 나타나고, 피해의식이 강한 이들의 우울함은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로 나타날 수도 있다. 피해의식의 강도는 사람마다 다르기도 하지만, 한 사람의 피해의식 역시 상황과 조건에 따라 그 강도가 수시로 변한다. 이것이 우울함이라는 피해의식의 얼굴이 가장 모호한 얼굴인 이유다.


 그렇다면 ‘우울함’이라는 피해의식의 얼굴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앞서 피해의식의 6가지 얼굴을 도구적 얼굴(두려움‧분노‧열등감‧무기력)과 결과적 얼굴(억울함‧우울함)로 구분했다. 그리고 ‘억울함’은 ‘두려움‧분노‧열등감‧무기력’이라는 도구적 얼굴이 만들어낸 결과적 얼굴이라고 말한 바 있다. 쉽게 말해, ‘두려움-분노-열등감-무기력’의 배치가 ‘억울함’이라는 얼굴을 만든다. 우울함은 이 도식을 확장함으로 설명할 수 있다. 즉 ‘두려움-분노-열등감-무기력-억울함’의 배치가 ‘우울함’을 만든다.



영혼을 좀 먹는 '우울함'


 돈에 관한 피해의식이 있는 이를 생각해보자. 그는 돈이 없는 상황이 두렵고 돈이 많은 이들을 보면 분노한다. 또 돈이 없다는 사실에 열등감에 휩싸이고 그 과정에서 점점 무기력해진다. 그렇게 결국은 모든 것이 억울해지게 된다. 이것으로 끝날까? 전혀 그렇지 않다. 그 모든 부정적 감정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알 수 없는 우울함이 찾아온다. 이 우울함은 명료한 논리로 설명할 수 없다. 이는 피해의식의 다섯 가지 얼굴들(두려움‧분노‧열등감‧무기력‧억울함)이 뒤엉켜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쑥 찾아오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우울함을 명료한 논리로 규명할 수 없다하더라도 그것의 정체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울함은 근본적으로 슬픔이라는 감정에서 온다. 기쁨이라는 감정으로 삶을 살아내는 이들이 우울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니 피해의식으로 인한 두려움, 분노, 열등감, 무기력, 억울함에 휩싸인 이의 삶이 어찌 우울하지 않을 수 있을까. 두려움, 분노, 열등감, 무기력, 억울함보다 우리를 더 슬픔의 나락으로 내모는 감정도 없으니까 말이다.      


 이처럼 피해의식은 우울함이라는 얼굴로 우리를 찾아온다. 이는 심각한 불행을 초래한다. 우울함만큼 우리네 영혼을 파괴하는 감정도 없다. 가벼운 우울감부터 심각한 우울증까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든 우울함은 우리의 영혼을 좀먹는다. 피해의식에 휩싸인 이들의 표정이 웃음과 미소를 잃은 잿빛은 표정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울함에 잠식당한 삶이 어떻게 유쾌한 웃음과 기쁜 미소를 담을 수 있겠는가. 피해의식이 우울함이라는 얼굴로 찾아올 때 불행의 전주곡이 아니라 불행 그 자체가 이미 시작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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