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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性’라는 피해의식

무의식의 중핵, 성性


무의식은 무질서하고 혼란스럽고 충동적인 마음이다. 이런 무의식을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성’에 관한 담론이다. 무의식이 ‘억압’으로 인해 형성된다면, 성에 관련된 문제는 그 무의식의 중추를 이룬다. 우리네 일상에서 성에 관련된 문제보다 더 ‘억압’된 주제도 없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아들(딸)의 엄마(아빠)를 향한 성적 욕망이 ‘억압’되었기 때문에 무의식이 형성된다고 본다. 즉, 피해의식이 무의식적이라면, 이는 한 사람의 성적 욕망이 억압되면 피해의식이 발생한다고 말할 수 있다.


 노골적으로 말해, 섹스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데 섹스를 하지 못할 때 피해의식이 발생하게 된다는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마음껏 섹스를 하는데 나만 섹스를 충분히 하지 못하고 있어” 즉각적인 거부감(불쾌감‧불편함)이 들지도 모르겠다. 이는 무의식이 드러나려 할 때 발생하는 보편적 마음 상태(‘저항’)다. 성이라는 주제는 과도하게 금기시 되어 있기 때문에 무의식 아래 잠겨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것이 수면 위로 드러날 때는 거부감(불쾌함‧불편함)이 촉발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즉각적인 거부감이 우리에게 성에 관한 피해의식이 있다는 것을 선뜩 납득하게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이다.     



성욕과 식욕


 성에 관한 문제는 원활히 다루기 어렵다. 이때 유용한 방법이 있다. 성욕을 식욕과 비교해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인간은 음식을 욕망하는 것만큼 섹스를 욕망한다. 즉, 한 인간의 욕구의 차원에서 성욕과 식욕은 거의 동등하다. 다이어트를 한다고 해보자. 우리는 먹고 싶은 음식을 참을 수밖에 없다. 그때 우리의 마음은 어떻게 될까? 하루 종일 음식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고, 이런 마음이 지속될 때 피해의식의 양상(두려움‧분노‧열등감‧무기력‧억울함‧우울함)으로 흘러가게 된다. 식욕을 통제하지 못할 자신이 두렵고, 먹고 싶은 것을 참아야 하는 상황에 화가 나고, 멋진 몸매를 가진 이들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되고, 많이 먹어도 날씬한 이들을 보며 억울하고, 그 모든 감정들이 뒤엉킬 때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  


 성욕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이유에서이든지 성욕을 참아야만 하는 상황에 있다고 해보자. 그때 우리의 마음은 어떻게 될까? 성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게 된다. 이런 마음이 지속될 때 피해의식의 양상(두려움‧분노‧열등감‧무기력‧억울함‧우울함)으로 흘러가게 된다. 억눌렀던 성욕이 터져나올까봐 두렵고, 성욕을 참아야만 하는 상황에 분노심이 생기고, 성적 매력이 있는 이들 앞에서 열등감을 느끼게 되고, 마음껏 섹스를 즐기는 이들을 보며 억울하고, 그 모든 감정들이 뒤엉킬 때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

     

 식욕과 성욕은 (생물학적) ‘욕구demand’ 수준에서는 동등하지만, (정신분석학적) ‘욕망desire’의 차원에서는 심대한 차이가 있다. 식욕으로 인한 피해의식의 양상은 ‘의식’할 수 있지만, 성욕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의식의 양상은 ‘무의식’적이기에 ‘의식’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 쉽게 말해, 성에 관한 피해의식 속에 있으면서도 스스로 그것을 인지할 수 없다는 말이다. (“나는 섹스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 “내 피해의식은 섹스랑 상관없어!”) 이는 당연하다. 식욕은 사회적으로 금기시(무의식화) 되지는 않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의식’할 수 있지만 성욕은 강력한 사회적 금기 때문에 ‘무의식’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피해의식의 중핵, 성性


 우리가 거부감을 느끼든 그렇지 않든 혹은 의식할 수 있든 그렇지 않든, 성은 우리네 피해의식에서 근본적인 역할을 한다. 외모에 대한 피해의식, 돈에 관한 피해의식, 사랑에 대한 피해의식 등등 다종다양한 우리네 피해의식을 돌아보라. 왜 외모에 피해의식이 생겼을까? 단순히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서일까? 이는 피상적 답일 뿐이다. 그것을 묻고 또 물어 들어 가다보면 그 끝에는 성에 관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아름다운 외모란 무엇인가? 이는 근본적으로 ‘섹시’한 외모다. 자신이 원하는 누군가와 섹스할 수 있는 외모. 아름다운 외모를 갖지 못해서 생긴 피해의식은, 무의식 깊숙한 곳에 있는 섹스하고 싶은 욕망이 좌절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피해의식이다.      


 돈에 관한 피해의식 역시 마찬가지다. 왜 돈에 관한 피해의식이 생겼을까? 어린 시절 가난해서?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싶어서? 이는 피상적인 답일 뿐이다. 그 피해의식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 끝에는 성에 관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부유함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섹시’함이다. 비싼 외제차와 명품 가방‧옷은 그 자체로 얼마나 섹시한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유함은 자신이 원하는 누군가와 섹스할 수 있는 힘이자 가능성이다. 돈이 없어서 생긴 피해의식은, 무의식 깊은 곳에 있는 섹스하고 싶은 욕망이 좌절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피해의식이다.     

 

 사랑에 관한 피해의식은 어떤가? 왜 이 피해의식이 발생했을까? 누군가에 인정과 관심을 받지 못해서? 이 역시 피상적 답이다. 그 피해의식 역시 깊이 들여다보면 그 끝에는 성에 관한 문제를 만나게 된다. 사랑은 무엇인가? 그것은 근본적으로 만지고 싶다는 욕망이다. 이는 모든 사랑에 부합된다. 부모는 사랑하는 아이를 안아주고 싶고, 주인은 사랑하는 반려견을 쓰다듬어 주고 싶은 것처럼 말이다.     


 섹스는 단지 성기와 성기와 결합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을 만지고 냄새 맡고 싶다는 욕망의 총체이다. 서로를 어루만지고 애무하며 서로의 냄새를 느끼는 좋은 섹스를 하고 나서 사랑받았다고 느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섹스 그 자체가 이미 사랑의 가능성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 받지 못해서 생긴 피해의식은, 무의식 깊은 곳에 있는 섹스하고 싶은 욕망이 좌절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피해의식이다.      


 피해의식에서 ‘성’의 역할은 중대하다. 피해의식은 무의식적이고, 한 인간의 무의식에서 ‘성’라는 항은 절대적이라 할 만큼 크기 때문이다. 모든 피해의식이 성적인 문제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성적인 문제는 여러 가지 피해의식의 근본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는 없다. 강렬한 거부감‧혐오감 혹은 기묘한 불쾌함‧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성에 관한 문제(성적 취향, 성적 욕망, 성적 콤플렉스 등등)를 깊이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 한 사람의 피해의식을 고찰하는 데 자신의 무의식 속 깊은 곳에 억압해둔 성적 욕망을 살펴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피해의식은 무의식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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