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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의식은 '의식'하면 옅어진다.

피해의식은 ‘의식’하면 옅어진다.

어떻게 피해의식을 옅어지게 할 수 있을까? 피해의식에는 피해‘의식’(의식으로서의 피해의식), 피해‘무의식’(무의식으로서의 피해의식), 피해‘전의식’(전의식으로서의 피해의식)이 있다. 이 사실로부터 피해의식을 옅어지게 할 하나의 답을 추론해볼 수 있다. 셋 중 가장 밀도가 높은 피해의식은 피해‘무의식’이고, 가장 밀도가 낮은 피해의식은 피해‘의식’이다. 그러니 피해의식을 옅어지게 할 간명한 방법이 있다. 피해‘무의식’을 피해‘의식’으로 전환하면 된다. 쉽게 말해, ‘무의식’ 속에 있는 피해의식을 ‘의식’화하면 된다.       


 ‘명우’는 작은 키 때문에 받았던 상처로 인한 피해의식이 있다. 이것이 ‘무의식’에 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즉, 자신에게 작은 키로 인한 피해의식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친구가 많이 없는 것도, 연애를 하지 못하는 것도, 취업을 하지 못하는 것도 모두 키 때문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는 자신에게 닥친 모든 불행이 자신이 키가 작기 때문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그렇게 그 피해의식은 점점 더 걷잡을 수 없이 짙어지고 커지게 된다.   


   

 하지만 ‘명우’가 자신의 피해의식을 ‘의식’하게 되면 어떨까? 자신은 작은 키 때문에 이런 저런 상처를 받았고 그로인해 과도하게 자신을 방어하려는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고 명료하게 알게 되면 어떨까? 자신에게 친구가 많이 없는 것은 키가 작아서가 아니라 방안에서 게임만 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연애를 하지 못하는 건 키가 작아서 이기도 하지만 수줍음이 많아서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테다. 또 취업을 하지 못하는 건 키 때문이 아니라 취업 지원을 충분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알게 될 테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명우’의 삶은 변화될 수밖에 없다. 게임을 멈추고 방에서 나올 테고, 연애를 할 수 있는 매력을 찾으려고 노력할 테고, 입사지원을 더 많이 하게 될 테다. 그렇게 ‘명우’는 친구를 만나고, 연애를 하게 되고, 취업을 하게 될 테다. 이 과정에서 ‘명우’의 피해의식은 점점 옅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모든 불행이 작은 키 때문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스스로 과도하게 자신을 방어할 필요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신에게 피해의식이 있다는 것을 명료하게 인지하고, 또 그것이 어떤 종류의 피해의식인지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면, 시기의 차이는 있더라도 피해의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무의식’ 속에 있는 피해의식을 ‘의식’화하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게 마련이다. 그러니 피해의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그것을 얼마나 ‘의식’화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는 셈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도사리고 있다.    


  

‘무의식’은 ‘의식’화될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피해의식(상처 받은 기억으로 인한 과도한 자기방어)은 ‘무의식’적이다. 즉, 상처 받은 기억이 일정정도 ‘무의식’ 영역에 있을 때 피해의식이 된다. “취업이 안 되는 건 작은 키 때문이야” 이는 ‘무의식’에 있기 때문에 비합리적‧비논리적(무질서‧혼란)이다. 반면 그 상처 받은 기억이 명료한 ‘의식’ 영역에 있다면 그것은 피해의식(과도한 자기방어)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작은 키 때문에 상처 받은 적은 있지만 취업이 안 되는 건 그 때문은 아니야” 이처럼 ‘의식’의 영역에 있는 상처는 합리적‧논리적이다. 이는 상처받은 기억일 뿐 피해의식(과도한 자기방어)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피해의식이 있다면, 그것은 일정정도 ‘무의식’의 영역 안에 있다. 이는 피해의식을 ‘의식’하려면 먼저 ‘무의식’으로부터 ‘의식’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것이 가능할까? ‘무의식’이 ‘의식’화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무의식’은 무질서하고 혼란한 감정과 욕망의 덩어리다. 이것이 정제되지 않고 ‘의식’으로 흘러 들어가면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무의식’이 있다고 해보자. 이 ‘무의식’이 정제되지 않고 ‘의식’화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최악의 경우 끔찍한 일이 벌어지거나 혹은 그런 마음을 표현하는 이는 비정상적인 사람 취급을 받게 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피해의식 역시 마찬가지다. ‘명우’의 피해의식을 생각해보자. ‘명우’의 ‘무의식’적인 피해의식(“키 크고 잘생긴 인간들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어.”)은 무질서하고 혼란하다. 이 ‘무의식’적인 피해의식이 정제되지 않고 ‘의식’화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최악의 경우 ‘명우’는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도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키 관련 이야기만 나오면 급발진 하는 바람에 주변 이들로부터 비정상적인 사람 취급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무의식’이 직접적으로 ‘의식’화되면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처럼, 피해‘무의식’ 역시 직접적으로 ‘의식’화되면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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