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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증과 히스테리

‘강박증’적 피해의식, ‘히스테리’적 피해의식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
“나만 항상 눈치보고 살고 있어!”     


 피해의식은 다양하다. 그 다양한 피해의식 중 근본적인 두 가지 피해의식이 있다. 하나는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라는 피해의식이고, 나머지는 “나만 항상 눈치 보며 살고 있다!”는 피해의식이다. 전자를 ‘강박증적 피해의식’이라고, 후자를 ‘히스테리적 피해의식’이라고 정의하자.  예를 들어보자. ‘장남(혹은 장녀) 피해의식’과 ‘막내 피해의식’이 있다.      


 ‘장남(혹은 장녀) 피해의식’은 무엇인가? 자신의 사회적 위치(사장‧가장‧장남‧장녀)로 인해서 요구되는 책임감 때문에 자신의 모든 삶이 매여 있다고 여기는 피해의식이다. 이는 대표적인 ‘강박증적 피해의식’(“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이다. ‘막내 피해의식’은 무엇인가? 이 역시 자신의 사회적 위치(직원‧자식‧막내) 때문에 모든 것을 양보하고 손해보고 살았다는 피해의식이다. 이는 대표적인 ‘히스테리적 피해의식’(“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이다.   

  

 다종다양한 피해의식이 있지만 그것은 크게 ‘강박증적 피해의식’과 ‘히스테리적 피해의식’이라는 큰 범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강박증’적 피해의식과 ‘히스테리’적 피해의식은 무엇일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정신분석학의 '신경증'이라는 개념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무의식의 외침, ‘신경증’


우리는 무의식의 과정을 꿈과 신경증이라는 조건에서만 인식할 수 있다무의식에 관하여』 지그문트 프로이트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숨겨진 무의식은 인식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까? 프로이트는 ‘꿈’과 ‘신경증’을 통해서만 인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꾸는 꿈은 우리의 무의식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깨어 있는 시간에는 무의식을 인식할 수 없을까? 깨어 있는 동안에도 무의식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신경증’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말하자면, ‘꿈’은 잠든 시간의 무의식의 외침이고, ‘신경증’은 깨어 있는 시간의 무의식의 외침인 셈이다.   

   

 피해의식이 무의식적이다. 이는 우리의 피해의식 역시 꿈과 신경증이라는 형식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는 신경증의 문제에만 집중하기로 하자. 우리네 피해의식은 잠든 시간보다 깨어 있는 시간에 더 문제가 되니까 말이다. 여기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이어받은 정신분석학자이자 철학자인 ‘자크 라캉’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프로이트를 이어 받은 라캉 역시 무의식은 ‘신경증neurosis’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신경증’은 무엇일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받은 크고 작은 상처들에 의해서 어떤 결핍을 겪게 된다. 이 결핍 때문에 크고 작은 신체적 이상(틱 장애‧거식증‧구토 등등) 혹은 정신적 이상(불안‧공포‧건강염려증‧불면 등등) 증상이 발생하곤 하는데, 이것이 바로 ‘신경증’이다. 무의식의 영향 아래 놓인 인간은 저마다의 신경증을 갖고 있다. 즉, 이 글을 읽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신경증’자일 테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신경증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신이상자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즉, 어떤 이에게 신경증이 있다고 해서 그가 일상적 삶을 유지하기 어려울 만큼 대단히 비정상적인 사람인 것은 아니다. 라캉이 말하는 ‘신경증’은 오히려 정상인의 범주에 가깝다.      




‘강박증’이라는 신경증


 그렇다면 이 ‘신경증’은 우리네 삶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여기서 ‘강박증’과 ‘히스테리’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라캉은 ‘신경증’을 ‘강박증’과 ‘히스테리’로 구분한다. (실제로 라캉은 신경증을 ‘강박증’, ‘히스테리’, ‘공포증’으로 구분하지만, ‘공포증’은 상대적으로 예외적 경우이기 때문에 여기서 다루지 않기로 하자.) 먼저 ‘강박증’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 난해한 라캉의 이론을 알기 쉽게 설명한 브루스 핑크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강박증자는 대상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간주하며타자의 욕망과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강박증자)에게 상대방은 대체 가능하고 교환 가능한 것일 뿐이다.” 라캉과 정신의학』 브루스 핑크


 강박증은 상대를 자신의 것으로 간주하며, 그 상대의 욕망과 존재를 인정하려하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그래서 강박증자들은 상대를 대체 가능하고 교환 가능한 것으로 여긴다. 쉽게 말해, 강박증자는 구호는 “내 맘대로 할 거야!”다. 강박증자는 자기의 욕망만 중요하게 생각하며 타인의 욕망은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강박증은 구체적으로 어떤 양상으로 드러날까? 청결강박, 계획강박, 정리강박 등으로 나타난다.


 이들은 강박적으로 손을 씻고(혹은 샤워) 특정한 일을 반복적으로 확인해야 마음이 편하다. 또 자신이 계획한 일에 차질이 생기거나 변경되는 것을 참지 못하고, 자신의 공간은 자신만의 규칙으로 정리정돈하지 않으면 견디기 어렵다. 이는 자신의 주위에 있는 대상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간주하려는 마음 때문에 발생한 일이며, 그런 강박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욕망을 인정할 수가 없다. 그래서 강박증자는 상대방을 언제나 대체 가능하고 교환 가능한 것으로 여기게 된다.

      


‘히스테리’라는 신경증     


 그렇다면 히스테리는 무엇일까? 브루스 핑크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보자. 


 히스테리 환자는 강박증자처럼 대상을 자기 자신을 위한 것으로 간주하기보다타자가 무엇을 욕망하는지 알아내려 한다그녀는 스스로 타자의 욕망을 지속시킬 수 있는 특정한 대상이 되려고 한다.” 라캉과 정신의학』 브루스 핑크     


 히스테리는 강박증의 반대구조다. 히스테리 환자는 상대가 무엇을 욕망하는지 알아내려고 하고, 자신이 그 상대가 욕망하는 특정한 대상이 되려고 한다. 쉽게 말해, 히스테리의 구호는 “네 맘대로 해”다. 히스테리는 자신의 욕망보다 언제나 상대의 욕망에 집중하려는 마음이다. 히스테리는 결국 상대의 욕망에 나를 맞추려는 신경증적 증세다. 이런 히스테리는 구체적으로 어떤 양상으로 드러날까? 과도한 눈치 보기, 지나친 관심 요구, 지나친 감정기복 등으로 나타난다.


 이는 당연한 일이다. 히스테리는 타인의 욕망에 나를 맞추려는 신경증이다. 그러니 누구를 만나더라도 과도하게 그 사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또한 자신이 타인의 욕망에 잘 맞추었는지 확인될 때만 불안이 사라지기 때문에 타인의 관심을 지나치게 요구할 수밖에 없다. 지나친 감정 기복 역시 마찬가지다. 만나는 이들마다 상대의 욕망에 자신을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감정기복이 커질 수밖에 없다. 즐거운 이들을 만나면 상대의 즐거움에 나의 감정을 맞춰야 하고, 화가 난 이들을 만나면 상대의 분노에 나의 감정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히스테리”라는 말의 일상적 쓰임(짜증‧신경질)의 이유를 알 수 있다. “히스테리 좀 부리지 마!” 이 말처럼, 우리는 “히스테리”라는 말을 신경질‧짜증 등의 의미로 사용한다. 이는 정신분석학적으로 적확한 쓰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혀 틀린 쓰임이라고 볼 수도 없다. 신경질‧짜증을 의미하는 “히스테리”는 신경증의 한 양상인 ‘히스테리’의 결과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히스테리’라는 신경증을 긴 시간 겪으면 나의 욕망은 없고 타인의 욕망만 맞추느라 신경질이나 짜증이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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