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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증'적 피해의식, '히스테리'적 피해의식

‘강박증’적 피해의식  

   

 이제 우리는 ‘강박증적 피해의식’과 ‘히스테리적 피해의식’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무의식이 ‘신경증’(강박증‧히스테리)으로 나타난다면, 피해의식 역시 ‘신경증’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즉, 피해의식은 ‘강박증적 피해의식’과 ‘히스테리적 피해의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피해‘의식’-피해‘전의식’-피해‘무의식’의 구분이 피해의식의 깊이 차에 의한 구분이라면, ‘강박증적 피해의식’-‘히스테리적 피해의식’의 구분은 피해의식의 폭(양상)에 의한 구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강박증’적인 피해의식은 무엇일까? 직장 혹은 일에 대한 피해의식을 생각해보자.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 ‘강모’는 직장에서 항상 화가 나있다. 직장에서 자신이 계획한 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강모’의 피해의식이다. 직장에서 ‘강모’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일도 많았지만 ‘강모’의 계획대로 진행되었던 일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강모’는 직장 혹은 일에 대한 피해의식이 생겼을까? 바로 ‘강모’의 ‘강박증’ 때문이다.   

   

 강모는 ‘강박증’적이다. 직장에서 업무처리도 자신이 계획한 대로 진행되어야 직성 풀리고, 집에서 자신이 정해놓은 규칙에 따라 정리정돈을 해야 불안하지 않다. 그러니 ‘강모’가 직장에서나 집에서나 피해의식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0번 중에 9번이 자신의 마음대로 업무처리‧정리정돈이 되어도, 한 번이 자신의 규칙이나 계획에서 틀어지면 그것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강박증이 심한 이들은 거의 모든 것을 자신의 마음대로 하면서도 항상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걸 참고 있다”고 믿는다. ‘장남(혹은) 피해의식’ 역시 ‘강박증’적인 것도 마찬가지다. 모든 ‘장남’(사장‧가장 등등)이 ‘장남 피해의식’에 휩싸이는 것은 아니다. 어떤 ‘장남’(사장‧가장)은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도 많지만, 자신의 마음대도 할 수 있는 일도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장남’ 중 강박증이 과도한 이들만 ‘장남 피해의식’에 사로잡히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강박증은 ‘강박증적 피해의식’을 야기한다.     



‘히스테리’적 피해의식     


 ‘히스테리’적 피해의식은 무엇일까? “부장님 왜 기분이 안 좋아 보이지?” ‘나연’은 직장에서 늘 눈치를 본다. 자신 때문에 부장님이 기분이 안 좋은 건지 눈치를 보고, 또 기분이 안 좋을 때 조심하지 않아서 미움을 받게 될까봐 눈치를 본다. 이는 ‘나연’의 배려심일까? 아니다. 배려는 기쁜 마음으로 하는 것이지만, ‘나연’은 전혀 기쁘지 않다. 언제까지 이렇게 눈치 보며 살아야 하는 건지 답답하고 짜증스럽다.      


 ‘나연’은 ‘히스테리’적이다. 이런 마음은 어떻게 피해의식이 되는 걸까? ‘나연’은 직장에서만 ‘히스테리’적일까? 아니다. 연애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연인이 뭐라고 하지 않아도 늘 연인의 눈치를 본다. “오늘 피곤해 보이는데 괜히 만나자고 했나?” “뭘 먹으러가 가자고 해야 하지?” “영화 보러 가자고 하고 싶은데 싫어하진 않을까?” 이런 히스테리적인 마음은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욕망과 의지대로 살아가싶은 마음이 있다. 그것이 계속 억압될 때 마음 한 구석이 왜곡되고 뒤틀릴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사는 데, 나만 억울하게 눈치보고 살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나연’은 이런 마음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피해의식이다. ‘나연’에게 눈치를 보며 살라고 강압적으로 요구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타인의 욕망에 자신을 맞추지 않으면 불안하고 불편했기 때문에 그런 것일 뿐이다. 이는 대부분 ‘나연’의 ‘히스테리’적인 마음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나연’은 타인의 욕망에 맞추려 애를 쓰기도 했지만 때로 자신의 하고 싶은 일들을 한 적도 많다. 하지만 나연은 자신의 욕망을 따랐던 일은 작고 적게 기억하고, 타인의 욕망에 맞추었던 일은 크고 많게 기억한다. 왜 그럴까? 바로 그녀의 히스테리 때문이다.  

    

 “나는 항상 타인의 욕망에 맞추기만 하며 살고 있다” 이런 ‘나연’의 마음은 피해의식(과도한 자기방어)이다. ‘막내 피해의식’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막내’(사회적 지위가 낮은 이들)가 ‘막내 피해의식’에 휩싸이는 것은 아니다. 모든 ‘막내’가 주변 사람들의 눈치만 보며 사는 것은 아니다. ‘막내’ 중 히스테리가 심한 이들만 ‘막내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게 되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히스테리가 심한 이들은 종종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면서도 항상 “나만 항상 눈치보고 살고 있다”고 믿는다. 이처럼 히스테리는 ‘히스테리적 피해의식’을 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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