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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의식은 '신경증'적이다.

신경증은 결핍이 만들어낸 욕망의 무의식적 증상이다. 


신경증은 어떤 결핍에 의해서 발생하는 신체‧정신적 이상 증상이다. 신경증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을 돌아보자. 사탕을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고 해보자. 아이의 엄마는 아이에게 늘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사탕을 사주곤 했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 아이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 엄마는 아이가 뚱뚱한 것이 창피했는지, 아이가 뚱뚱한 걸로 놀림 받을 것이 걱정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아이가 입에 물고 있던 사탕을 빼서 땅에 던지며 말했다. “이제 사탕 좀 그만 먹어!”     


 그날 이후 그 아이는 사탕에 집착하게 되고 나이가 들어 그것은 신경증이 된다. 이런 상처가  있는 아이는 자신의 방을 정리정돈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게 되거나(강박증), 누구와 같이 있더라도 그 사람의 과도하게 보게 된다.(히스테리). 왜 이런 신경증은 왜 생겼을까? ‘사탕’(정확히는 엄마의 사랑)의 결핍 때문이다. ‘결핍’은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사탕’(엄마의 사랑)의 결핍은 사탕을 ‘욕망’하게 만든다. 그 결핍(사탕)이 의식에 있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탕을 사먹으면 되니까. 즉, 의식적으로 결핍을 채우면 되니까 말이다.      


 문제는 결핍으로 인한 상처, 그로인한 욕망은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으로 가라앉는다는데 있다. 무의식화된 결핍으로 인한 욕망. 이것이 신경증의 원인이다. 아이는 ‘사탕’(엄마의 사랑)을 빼앗겨서 ‘사탕’을 욕망하게 되었지만 그 사실을 모른다. 그것은 무의식 아래로 잠겨버렸으니까. 하지만 프로이트의 말처럼, “억압된 것은 반드시 돌아온다.” 자신은 결코 의식할 수 없는 ‘결핍으로 인한 욕망’이 바로 신경증(강박증‧히스테리)의 형태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결핍→욕망→신경증)     


 신경증 이렇게 정의할 수도 있다. 결핍이 만들어낸 욕망의 무의식적 증상. 사탕의 결핍(욕망)과 강박증(과도한 정리정돈) 혹은 히스테리(과도한 눈치 보기) 사이, 즉 달리 말해 한 사람의 결핍과 그로 인한 발생하게 된 신경증 사이에 합리적 논리나 분명한 인과관계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도 그래서다. 신경증이 발생하는 모든 과정은 다른 이들은 결코 알 수 없는 한 사람의 내밀한 무의식의 과정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피해의식은 욕망으로부터 온다. 

   

 피해의식은 신경증적이다. 피해의식과 신경증의 발생 메커니즘은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아 있다. 돈에 관한 피해의식을 생각해보자. 이런 피해의식은 왜 생기는 걸까? 돈이 결핍되었기(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결핍되지 않았다면 피해의식은 없다. 또 결핍된 만큼 피해의식은 짙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결핍이 직접적으로 피해의식을 촉발하지는 않는다. 피해의식을 직접적으로 촉발하는 것은 욕망이다. 결핍(상처)이 만들어낸 과도한 욕망. 바로 이것이 우리의 피해의식을 발생시킨다. 실제적이든 상상적이든, 무엇인가 자신에게 결핍되었다고 여기는 이들은 그 결핍된 것(돈‧명예‧외모)을 과도하게 욕망하게 되고, 바로 이 욕망이 피해의식을 발생시킨다. (결핍→욕망→피해의식)     


 어떤 종류의 피해의식이든, 그 피해의식은 욕망으로부터 온다. 결핍된 것(돈‧명예‧외모…)을 채우고 싶은 욕망. 우리의 피해의식을 돌아보라. 돈‧명예‧외모에 대한 피해의식은 돈‧명예‧외모에 대한 욕망으로부터 온다. 그 욕망이 비대하면 비대할수록 피해의식 역시 그 강도가 커지지 않던가. 이제 우리는 피해의식이 근본적으로 어디서부터 오는지 알 수 있다. 신경증과 마찬가지로, 피해의식 역시 (결핍이 만들어낸) 과도한 욕망이 드러나는 무의식적 증상이다.



피해의식의 두 가지 방향성

   

 피해의식과 신경증의 관계성은 발생 메커니즘에서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 우리의 다종다양한 피해의식은 신경증(강박증‧히스테리)이라는 근본적 토대 위에서 작동하고 있다. 피해의식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서 살펴보자. 피해의식은 상처받은 기억으로 인한 과도한 자기방어다. 이 과도한 자기 방어는 두 가지 방향으로 나타난다. ‘직접적인 욕망 추구’ 방향과 ‘간접적인 욕망 추구’의 방향이다.

 

 외모에 대한 피해의식을 생각해보자. 외모에 관한 문제들로부터 자신을 과도하게 방어하려는 이들이 있다. 이때 ‘직접적인 욕망 추구’는 무엇일까? 이는 자신을 통한 방어이다. 지나친 성형수술‧다이어트 등을 통해 과도하게 아름다운 외모를 추구하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반면 외모에 대한 피해의식이 ‘간접적인 욕망 추구’의 방향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이는 타인을 향한 방어이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이를 시기‧질투하거나 혹은 누군가 외모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과도하게 반응하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피해의식이 표현되는 이 두 방향성은 모두 신경증과 관련이 있다. ‘직접적인 욕망 추구’를 생각해보자. 외모에 대한 피해의식이 가진 이가 아름다운 외모에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더 예뻐져서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망’(강박증)을 충족하고 싶어서다. 아니면 더 예뻐져서 ‘누군가의 욕망의 대상이 되고 싶은 욕망’(히스테리)을 충족하고 싶어서이다. 


 이는 돈‧명예에 대한 피해의식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피해의식을 가진 이가 돈‧명예에 대해 과도하게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결핍된 것(돈‧명예)을 채워서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망’(강박증)을 충족하고 싶어서이거나 ‘누군가의 욕망의 대상이 되고 싶은 욕망’(히스테리)을 충족하고 싶어서이다.


 ‘간접적인 욕망 추구’를 생각해보자. 즉, 외모에 대한 피해의식을 가진 이가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이를 시기‧질투하거나, 외모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이들에게 과민하게 반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망’(강박증)이 충족되지 않아서 혹은 ‘누군가의 욕망의 대상이 되고 싶은 욕망’(히스테리)이 충족되지 않아서 감정적 동요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돈‧명예에 관한 피해의식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돈‧명예에 대한 피해의식을 가진 이가 그것을 가진 이들에 대한 근거 없는 반감을 가지거나 관련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과민하게 반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망’(강박증) 혹은 ‘누군가의 욕망의 대상이 되고 싶은 욕망’(히스테리)이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종다양한 피해의식은 각가지 방식으로 드러나지만, 그것은 신경증적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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