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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증'적 피해의식 너머

‘신경증’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우리의 피해의식은 그 발생적 측면과 표현적 측면에서 모두 신경증적이다. 즉, 피해의식은 이미 그 자체로 신경증적이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피해의식을 옅어지게 할 하나의 방법을 알 수 있다. 신경증을 극복하면 된다. 강박증적인 이들은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마음”을 극복해야 하고, 히스테리적인 이들은 “네 마음대로 하고 싶은 마음”을 극복해야 한다. 이런 신경증적인 마음을 극복하는 만큼 피해의식을 옅어지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신경증(강박증‧히스테리)을 극복할 수 있을까?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신경증을 극복한다는 것이 어떠한 신경증적 증상도 없는 순수한 ‘정상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놀랍게도, 라캉에게 ‘정상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캉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정신병’ ‘도착증’ ‘신경증’ 이라는 세 가지 임상 구조 중 반드시 하나에 속한다. 그 중에서 가장 정상에 가까운 임상 구조가 ‘신경증’이다. (‘정신병’과 ‘도착증’ 매우 적은 수로 존재하며, 이들은 정말 비정상적인 정신상태라고 할 수 있다.) 라캉의 정신분석학 이론에서 굳이 ‘정상인’을 정의해야 한다면, 그것은 ‘신경증’자라고 말할 수 있다.  

    


‘신경증’이라는 딜레마


 이제 우리는 하나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신경증’(강박증‧히스테리)은 우리네 삶을 괴롭게 만들지 않던가? 그런데 그 괴로운 상태가 정상이라니. ‘신경증’적인 우리가 이미 정상인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신경증을 극복할 수 있단 말인가. ‘신경증자가 정상인이다’ 이 딜레마는 그 자체로 이미 우리에게 해결책을 알려주고 있다. 먼저 이 딜레마를 해결하려면 우리의 오래된 습관 하나를 버려야 한다. 

    

 우리는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조건 자체를 초월해서 해결하려는 오랜 습관이 있다. 가난(질병)이라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해보자. 그때 세상 사람들은 가난한(아픈) 삶의 조건 속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하기보다 복권‧투기‧도박(죽음)을 통해 그 조건 자체를 초월해버리려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우리는 종종 삶의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일으킨 조건 안에서 실마리를 찾으려 하지 않고 그 조건을 초월해버리려고 한다. 이런 식의 접근으로는 ‘신경증’의 딜레마를 풀 수 없다.      


 신경증의 딜레마는 주어진 조건(신경증) 안에서만 풀 수 있다. 신경증자는 이미 정상인이기에, 신경증의 문제는 신경증이라는 조건 안에서만 극복될 수 있다. 신경증(강박증‧히스테리)은 어떻게 완화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신경증(강박증‧히스테리)이라는 조건을 초월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신경증을 완화할 수 있을까?

      

 강박증과 히스테리의 횡단에 그 해법이 있다. 강박증적인 이들은 히스테리적인 마음을 가지려고 애를 써야 한다. 쉽게 말해, 모든 것을 자신의 마음대로 하려는 이들은, 타인의 눈치를 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반대로 히스테리적인 이들은 강박증적인 마음을 가지려고 애를 써야 한다. 즉, 매 순간 주변 사람들의 눈치만 보는 이들은, 자신의 마음대로 해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의 신경증적 피해의식을 어떻게 극복해나갈 수 있을지도 알 수 있다.


  

‘신경증’적 피해의식 너머

  

 강박증적 피해의식이 무엇인가?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라는 피해의식이다. 이는 히스테리적인 마음이 있다면 옅어질 수 있다. 강박증적인 이가 동료와 친구, 아내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어떨까? 그들 역시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삶을 견디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즉, 내 마음만 보는 게(강박증)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읽어보려고(히스테리) 애를 쓸 수 있다면 다들 자신의 마음대로 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사실을 깨달으면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고 믿는 강박증적 피해의식은 현저히 옅어질 수 있다.      


 그뿐인가? 강박증적인 이가 동료‧친구‧아내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때, 자신의 강박증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고 불편한지도 알 수 있다. 주변 사람들의 그 마음을 읽을 때, 강박적인 이는 이제껏 얼마나 자신의 마음대로 하며 살아왔는지 깨달을 수 있다. 그 사실을 깨달으면 강박증적 피해의식은 현저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히스테리적 피해의식 역시 마찬가지다. “나만 항상 눈치보고 살고 있어!” 이것이 히스테리적 피해의식이다. 이는 강박증적 마음을 가지려고 애를 쓸 수 있다면 옅어질 수 있다. 히스테리적인 이가 동료와 연인에게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때 나만 눈치 보며 살고 있다는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 늘 눈치만 보며 사는 게 아니라 때로는 나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 때, “나만 눈치 보며 살고 있다”는 히스테리적 피해의식은 현저히 옅어질 수 있다.     

  

 신경증(강박증‧히스테리)을 극복한다는 것은, 신경증이라는 조건 자체를 초월하는 것이 아니다. 두 신경증 사이를 횡단하며 그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잡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마음대로 해야 할 때는 내 마음대로 하고, 상대의 마음을 읽어야 할 때는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 이것이 신경증을 극복하는 방법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두 가지 근본적 피해의식, ‘강박증’적 피해의식과 ‘히스테리’적 피해의식을 옅어지게 하는 방법이다.      


 강박증적인 피해의식에 휩싸여 있는가? 가슴 속에 하나의 표어를 담아두라. “네가 원하는 것을 해줄게!” 히스테리적인 피해의식에 휩싸여 있는가? 가슴 속에 하나의 표어를 담아두라.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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