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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일반회원, 국대상비군 두번의 스파링

두 번의 스파링



일반 회원과 스파링 

   

프로 시합 날짜가 잡혔다. 시합을 준비하면서 스파링보다 더 좋은 훈련은 없다. 문제는 나와 비슷한 중량급 선수가 많지 않아 스파링 파트너가 많이 없다는 점이었다. 다행히, 관장이 스파링을 잡은 모양이었다. 


“형님은 내일은 OO체육관으로 스파링으로 하러 가시죠.” 
“거기에는 저랑 체중 맞는 선수가 있나 보네요?”
“아뇨. 프로 선수는 아니고 일반 회원인데, 준 선수 급 정도 되나 봐요. 그쪽 관장이 해볼 만 하다네요” 

    

 속으로 김이 빠졌다. 일반 회원이야 잘해봐야 어느 정도 수준인지 대략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일단 스파링을 통해 실전 경험을 최대한 많이 쌓아야 했으니까. 다음날 장비를 챙겨서 강남으로 갔다. 체급이 비슷한 일반 회원 2명이 몸을 풀고 있었다. 각각 나와 3라운드씩 스파링 하는 걸로 이야기가 됐다. 쉐도우하는 걸 보니 그 두 명은 일반 회원 이상의 기량이 있는 건 분명해 보였다. 조금 안심이 됐다. 마음 놓고 힘껏 때려도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 날 내 스파링 목적은 안면이 되었든 바디가 되었든 그 둘을 주저앉히는 거였다. 일반 회원이 아무리 잘해도 일반 회원 아닌가? 그 정도 상대를 주저앉힐 수 없다면 시합에서도 기량 발휘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결과부터 말하면, 둘 중 한 사람도 주저앉히지 못했다. 시작부터 6라운드까지 쉬지 않고 거칠게 몰아붙였다. 정말 있는 힘껏 때렸지만 상대를 주저앉힐 유효타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6라운드 스파링이 끝나고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든 감정은 후련함이 아니라 짜증스러움이었다.


 ‘아직 내 실력이 겨우 일반 회원도 다운 시키지 못할 정도란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시합에 대한 걱정과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이 동시에 밀려오면서 짜증이 났던 게다. 스파링을 끝내고 돌아가면서 관장은 몇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형님, 오늘 공격적으로 하셨던 건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그게 과했던 거 같아요. 오늘 평소 평소보다 유효타 덜 나왔죠? 제가 보기엔 형님이 너무 공격적으로 하려다 보니까 자꾸 형님 거리를 보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서 그래요. 그러니 제대로 된 펀치가 안 나왔던 거예요.”



국가대표 상비군과의 스파링

시합을 몇 주 남겨놓았을 때 즈음이었다. 관장에게 전화가 왔다. 


“형님, 다음 주에 스파링 잡아 놨어요. 시간되시죠?”
“이번에는 누구랑 해요?”
“최종 점검을 위해 좀 잘하는 사람이랑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한 번 해보죠. 하다 안 되면 맞으면 되죠.”
“좋은 자세예요. 스파링할 사람은 국대(국가대표)상비군 출신이에요. 체중도 비슷하고요.”
“네? 국대상비군요?”     

 

 국가 대표 상비군이라니?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게다가 중량급. ‘조때다’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일 게다. 정말 조때다. 20대에 우연히 아마추어 레슬링 국가대표 상비군과 운동을 한 적이 있다. 함께 훈련 했다기보다 그냥 구경에 가까웠다. 그때 받은 느낌은 ‘애들은 괴물이구나!’ 체력, 근성, 기술 모두 상상초월이었다. 상비군이 이 정돈데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는 선수들은 도대체 어떤 인간들인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그 괴물과 스파링을 해야 한다니.



 야속하게 시간은 흘렀고, 스파링 날이 되었다. 체육관에 도착해서 스파링해줄 상대에게 인사를 한 후 몸을 풀었다. 긴장한 내게 관장은 “너무 긴장하지 말고 메쓰(메써드)한다고 생각하고 하세요.”라고 했다. 덕분에 긴장이 조금 풀렸다. 1라운드가 시작되었다. 관장이 말한 대로 했다. 정말 메써드 스파링하는 것처럼 살살했다. 상대도 굳이 세게 하지 않았다. 그렇게 1라운드가 끝나고 코너로 돌아갔다. 관장은 화를 내며 말했다. “형님, 지금 뭐하는 거예요. 지금 장난치는 거예요. 이럴 거면 스파링하는 의미가 없어요. 다음 라운드부터는 죽기 살기로 하세요!”      


 관장의 말은 ‘실력 차가 나도 할 수 있는 걸 적극적으로 하라’는 말이었다. ‘그래 되던 안 되던 해보자’라고 마음먹고 다음 라운드에 나섰다. 시작부터 힘껏 휘둘렀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강도를 올린만큼 상대 역시 강도를 올렸다. 그 사이에 안면에 카운터가 몇 개 걸렸다. 정확한 타이밍에 묵직하게 걸린 카운터 펀치여서 머리가 딩딩 울렸다. 그때부터 몸이 더 굳어 버렸다.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맞지 않기 위해 펀치를 휘둘렀다.


 그렇게 큰 펀치를 휘두르다 명치에 정확하게 카운터펀치가 걸렸다. 마우스피스가 튀어나왔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 때문에 배를 부여잡고 링 바닥에 굴렀다. 스파링을 끝내고 돌아오는 차안은 어색했다. 먼저 관장이 이야기를 꺼냈다. “형님 시합 때 그렇게 하시면 진짜 큰 일 나요.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라, 크게 다쳐요. 아까 스파링은 형님이 사냥당하는 모습이었어요. 형님, 링에 서려면 야수가 되셔야 해요.” 다 맞는 말이고, 창피해서 뭐라 대꾸할 이야기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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