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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곤경에서 벗어나는 법

세상 사람들의 심각한 오해가 있다. 곤경을 변수로 여기는 마음이다. 곤경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것이라는 믿음. 이보다 더 심각한 오해도 없다. 곤경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예외적인 곤경이 자신에게 찾아왔다는 헛된 믿음에서 기인한다.  곤경은 상수다. 이것이 삶의 진실이다. 누구에게나 곤경은 있고 어느 순간에나 곤경은 있다. 곤경 없는 삶은 없다. 누구나 자신만의 고통과 어려움이 있다. 부처의 말처럼 "삶은 고통의 바다"다.    

 

 이 삶의 진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우리네 삶이 필연적으로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모든 이가 이 곤경에서 빠져서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자신의 곤경에 좌절하며 자기연민에 빠져 고통스러워하지만, 어떤 이는 자신이 처한 갖가지 혹은 심각한 곤경에도 불구하고 좌절이나 자기연민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의연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곤경을 해결했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곤경은 해결할 수 없다. 곤경은 상수인 까닭이다. 가난이라는 곤경을 생각해보자. 돈을 벌어 이 가난(곤경)를 해결했다고 해보자. 곤경은 사라질까? 그렇지 않다. 탐욕이라는 곤경이 다시 기다리고 있다. 혹여 운이 좋아 이 탐욕이라는 곤경을 해결 할 만큼 많은 돈을 번다고 해도 곤경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시 불안과 외로움이라는 곤경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수많은 종류의 곤경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어떻게 곤경 앞에서 의연할 수 있을까? 간명하다. 곤경을 곤경이라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곤경은 없는 삶은 없기에,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근본적인 해법은 그것을 곤경이라 여기지 않는 마음뿐이다. 이는 자기기만적인 정신승리이거나 허황된 말장난이 아니다. 오른 전세금을 구하지 못해, 곤경에 처한 가장이 있다고 해보자. 그는 좌절하거나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고 의연했다. 그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곤경이 문제가 되는 것은 온통 ‘나’의 곤경에 대한 생각이 가득차서다. 자신에게 닥친 곤경을 해결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자신의 곤경에 과도하게 몰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곤경에 거리를 둘 수 있을 때, 곤경은 곤경이 아닌 삶의 작은 허들이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의 곤경으로부터 거릴 둘 수 있을까? 전세금을 구하지 못한 가장은 자신의 곤경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너’의 곤경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이다. 

     

 그는 소중한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학교 숙제 이야기, 부모와의 갈등 이야기, 연인과 다툼 이야기, 불륜 이야기, 이혼 이야기. 누군가의 죽음 이야기. 자신의 곤경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이들의 이야기를 아프게 들어주었다. ‘너’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나’의 고통에서 거리를 두게 하는 일이다. 그렇게 자신의 곤경에 거리를 둘 수 있을 때, 과도한 좌절과 자기비하는 옅어진다. 그렇다. ‘나’의 곤경에서 벗어나는 근본적인 방법은 ‘너’의 곤경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너’의 삶에 한 걸음 다가서고 ‘나’의 삶에서는 한 걸음 물러서기. 그럴 수 있을 때 ‘나’의 곤경은 곤경이 아닌 것이 된다. 이는 동시적인 일이다. '너'의 삶에 한 걸음 다가설 때 '나'의 삶에서 한 걸음 물러나게 되고, '나'의 삶에 한 걸음 물러설 때 '너'의 삶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게 되니까 말이다. 그러니 곤경 앞에서 의연해지는 길은 두 갈래인 셈이다. ‘너’의 삶에 한 걸음 다가서거나! ‘나’의 삶에서 한 걸음 물러서거나! 


 둘 모두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전자는 '사랑'이고, 후자는 '죽음'인 까닭이다. 나는 이제 안다. 왜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곤경에 잠식당하며 사는지. 왜 그렇게 좌절하고 자기비하에 빠져 사는지. 사랑과 죽음 사이에서 표류하며 살기 때문이다. 사랑하지도 죽지도 못하는 삶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야박하다 투정해도 어쩌줄 수 없다. 엄존하는 삶의 고통 앞에서 의연해지는 길은 둘 중 하나다. 사랑하거나 죽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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