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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함과 섬세함

예민함과 섬세함. 이 두 가지 마음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는 흔하다. 예민함과 섬세함은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예민함과 섬세함 모두 민감한 마음이다. 하지만 그 민감함이 향하는 대상이 다르다. 예민함은 자기-민감성이고, 섬세함은 타자-민감성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예민한 이들은 자기의 상태에 대해 민감하다. 자신의 신체(건강) 상태에 대해 민감하거나 감정 상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들은 ‘예민’하다. 반면 섬세한 이들은 타자의 상태에 민감하다. 타자의 신체(건강) 상태나 감정 상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들은 ‘섬세’하다.     


 예민함과 섬세함에 관한 오해가 하나 더 있다. 이 둘이 비례 관계에 있다는 믿음이다. 즉, 예민할수록 섬세할 개연성이 크고, 예민하지 않을수록 섬세할 개연성 역시 작다는 믿음이다. 삶의 진실은 정반대다. 예민함과 섬세함은 반비례에 관계에 있다. 예민할수록 섬세하지 못할 개연성이 크고, 예민하지 않을수록 섬세할 개연성이 크다. 또한 섬세할수록 덜 예민할 수밖 없고, 섬세하지 않을수록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예민한 이들이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섬세한 이들이 한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예민함은 슬픔의 조건이 되고, 섬세함은 기쁨의 조건이 된다. 왜 그런가? 예민함은 자기-사랑의 토대이고, 섬세함은 타자-사랑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자신만을 사랑하려는 이들은 필연적으로 공허와 허무의 세계에 가닿을 수밖에 없고, 타자를 사랑하려는 이들은 따뜻하고 가득 찬 세계에 가닿게 된다.    

  

 예민함은 한 사람의 특성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가치중립적인 특성이 아니다. 가급적 지양해서 넘어서야 할 특성이다. 적어도 조금 더 작은 슬픔이 있는 삶으로 나아가려는 이들에게는 분명 그렇다. 섬세함 역시 한 사람의 특성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 역시 가치중립적인 특성이 아니다. 가급적 지향해야 할 특성이다. 적어도 조금 더 큰 기쁨이 있는 삶으로 나아가려는 이들에게는 분명 그렇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예민함을 지양하며, 섬세함을 지향할 것인가?    

  

 질문을 바꿔보자. 예민한 이들은 왜 예민한가? 이유는 간명하다. 타자에게 민감하지 않기 때문이다. 섬세한 이들은 왜 섬세한가? 이 역시 간명하다. 자신에게 민감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민한 이들이 예민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의미 없다. 예민한 이들은 자신에게 민감하기에 그런 노력 역시 큰 고통 느껴질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예민한 이들이 덜 예민해지는 방법은 섬세해지는 길 밖에 없다. 민감함이라는 센서를 자신이 아닌 타자를 향해 비춰야 한다. 자신이 아닌 타자를 느끼고 공감하고 공명하려할 때 예민함은 조금씩 줄어들 수밖에 없다. 


 예민함을 정당화하지 말라. 그것은 자신의 불행을 정당화하는 일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섬세함을 거부하지 말라. 그것은 자신의 행복을 거부하는 일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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