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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복싱은 결국 위치 싸움이다.

‘파퀴아오’와 ‘로만첸코’, 복싱을 잘하는 두 가지 방법

‘파퀴아오’와 ‘로만첸코’, 복싱을 잘하는 두 가지 방법

복싱을 잘한다는 건 뭘까? 연타가 좋은 것 일수도 있고, 펀치가 강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복싱을 잘한다는 건 안 맞고 때릴 수 있는 능력의 문제다. 연타 좋다는 것은 상대에게 때릴 타이밍을 주지 않고 연속해서 공격한다는 것이다. 결국 상대에게 맞지 않고 상대를 때린다는 의미다. 펀치가 강하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 방으로 상대를 KO시킨다는 것도 결국 맞지 않고 상대를 때린다는 의미다.


 결국 복싱을 잘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안 맞고 때리면 된다. 이 사실에 집중하면 복싱을 잘할 수 있는 구체적인 두 가지 방법을 알게 된다. 첫 번째는 ‘거리 조절’이다. 복싱에서는 순간적으로 거리를 좁히고 벌릴 수 있는 이 거리조절만큼 중요한 능력도 없다. 아무리 연타가 좋고, 펀치가 강한 복서라 하더라도 결국 때릴 수 있는 거리로 들어가야 한다. 때릴 때는 거리를 좁혀서 때리고 상대가 공격을 하려고 하면 거리를 벌려 방어해야 한다.



 모든 훌륭한 복서가 탁월한 거리 조절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거리조절을 가장 잘한다고 생각하는 복서가 ‘파퀴아오’다. 그가 무려 8체급을 석권하며 왕좌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던 이유가 탁월한 거리 조절 능력에 있다고 본다. 자신이 공격할 때는 순간적으로 거리를 좁혀 때리고, 상대가 공격을 할 때는 순간적으로 거리를 벌려 방어했다. 이 탁월한 거리 조절 능력을 앞세워 자신보다 강한 펀치를 가진 무거운 체급 선수들을 차례로 제압했던 것이다.


 안 맞고 때릴 수 있는 방법이 하나 더 있다. 그건 ‘사각 점유’다. 복싱은 일반적으로 상대와 마주서서 치고받는다. 신체적 조건이 비슷하다는 가정 하에, 서로 치고 받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면 내가 때릴 수 있으면 상대도 나를 때릴 수 있다. 하지만 거리가 좁혀져도 나는 상대를 때릴 수 있지만, 상대는 나를 때릴 수 없을 때도 있다. 사각을 점유하면 된다. 복싱에서 사각이란 상대는 정면을 보고 있는 나는 상대의 측면으로 위치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거리가 좁아도 상대는 나를 때릴 수 없고, 오직 나만 상대를 때릴 수 있다.


 쉽게 이해가 안 된다면, ‘바실 로만첸코’라는 선수를 검색해보자. ‘사각점유’를 가장 잘 활용하는 복서 중에 한 명이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기도 한 로만첸코의 시합을 보고 있노라면 경이롭기 까지 하다. 순간적으로 사각을 점유해서 상대의 측면에서 공격하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상대가 주먹을 내려고 하면 로만첸코는 이미 상대의 측면에 서 있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로만첸코처럼 ‘사각 점유’을 할 수 있다면 안 맞고 때리는 복싱을 할 수 있다.



복싱은 결국 위치 싸움이다.


복싱을 잘하는 건 전혀 아니지만, 나름 진지하게 복싱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복싱은 결국 위치싸움이란 사실이다. 상대는 공격하지 못하고 나는 상대를 공격할 수 있는 위치를 얼마나 선점할 수 있는가가 복싱의 핵심이다. 유능한 복서들은 가끔 ‘복싱은 다리로 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그건 복싱에서 위치 싸움이 가장 중요하며, 그 위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결국 탁월한 풋워크가 필수적이라는 깨달음 때문에 한 이야기로 이해하고 있다.


 실제로 스파링을 해도 그렇다. 연타가 좋고, 펀치력이 좋은 사람들보다 위치 선점이 좋은 선수들이 더 까다롭다. 연타가 좋은 선수나 펀치력이 좋은 선수와 스파링 할 때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라고 마음먹으면 맞고 때리고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앞뒤로 치고 빠지는 ‘거리조절’이 좋은 선수나 어느 순간에 내 측면에 서 있는 ‘사각점유’가 좋은 선수와 스파링 할 때는 실컷 얻어터지면서도 한 대 맞추기도 힘들다. 그런 복서는 다 없어졌으면 좋겠다. 이제 그만 좀 얻어터지게. 아니 나도 한 대라도 좀 때릴 수 있게.


 유능한 복서가 되기 위해서는 거리조절이나 사각점유 같은 위치 싸움을 잘해야 한다. 복싱을 하면서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운동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운동은 몸으로 하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거리조절도, 사각점유도 잘하지 못했다. 거리조절을 하기에는 순발력이 부족했고, 사각점유를 하기에는 풋워크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익히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라는 씁쓸한 삶의 진실 하나를 더 깨달은 채 기본기인 풋워크만 한 동안 계속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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