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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삶 자체가 거리싸움이다.

모든 관계는 거리싸움이다.

“미친놈아! 스토커냐?”

위치싸움을 잘하기 위해서 풋워크 연습을 한참을 하던 중이었다. 대학 동창과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자리가 있었다. 술 한 잔이 들어가자 본론을 털어놨다.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있는데, 연락을 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연락을 했는지 물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전화하고, 틈 날 때 마다 문자를 보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다 듣고, 나는 조용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친구에게 말했다. “미친놈아! 스토커냐?”


 그 친구는 대학시절부터 연애 경험이 없다. 수업 듣고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집에 가는 생활을 반복했다. 그러니 좋아하는 여자에게 어떻게 다가서야 하는지 몰랐던 게다. 그는 어디서 ‘여자는 자주 연락하는 다정한 남자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랬단다. 갑자기 예전에 했던 스파링이 생각났다. 들어가할 타이밍에 빠져 나오다 얻어터지고, 나와야 할 타이밍에 들어가다 또 얻어터졌던 스파링이 기억났다. 거리조절을 못해서 실컷 얻어터진 스파링이었다.


 친구가 좋아했던 그녀는 분명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같은 직장을 다니지만 팀도 다르고 제대로 된 인사도 몇 번 나누지 못한 상황에서 사내 인트라넷으로 연락처를 알아내고 밤낮으로 연락하고 수시로 문자를 보내는 남자를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여자는 없다. 장동건이나 정우성처럼 매력적인 외모가 아니라면 말이다. (참고로 그 친구는 외모적으로 ‘안 매력적인’ 편에 가깝다) 그는 연애를 하며 거리조절에 실패한 것이다.



“난 도저히 너를 이해할 수가 없다!”


가끔 직장인 고민상담을 할 때가 있다. 내가 쓴 책이 ‘저 오늘 회사 그만둡니다!’ ‘사표사용설명서’같은 책이라, 가끔 직장에서 고민이 많은 이가 나를 찾아오곤 한다. 보통은 사원, 대리급이 찾아오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조직에 대한 불만, 상사에 대한 스트레스 같은 고민이 그 시절에 가장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나를 찾아온 사람은 사십대 중반은 되어 보이는 부장이었다.


 그의 고민은 부하직원에 대한 것이었다. 이제 중간관리자가 되어 부하직원들에게 업무를 맡기고 그들을 관리해야하는 위치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고민의 내용인즉슨 한 부하직원이 업무지시를 해도 잘 알아듣지 못하고, 보고서 마감기한을 넘기는 것은 예사고, 지각에 무단결근까지 한다는 것이다. 알아듣게 몇 번을 이야기했지만, 결국 변하는 것은 없었단다. 급기야 어제는 타이르려고 그 부하직원을 불렀지만 이야기하다 울분이 터져 화를 내며 “난 도저히 너를 이해할 수가 없다!”라고 소리를 질렀단다.


 그 부하직원은 왜 그랬던 것일까? 알 수가 없다. 그를 직접 만나본 적도,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적도 없으니까. 하지만 부장의 그 많은 타이름과 다그침에도 그가 변하지 않았던 이유는 알고 있다. 부장이 부하직원이 많은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상황과 처지를 정확히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일 게다. 그 부하직원은 여자 친구와 심각한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가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부장은 자신이 원하는 부하직원이 되기를 원했을 뿐, 그 부하직원이 어떤 곤경과 상황에 처해있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기에 그 부하직원은 변하지 않았던 것일 게다.



모든 관계는 거리싸움이다.

친구가 좋아하는 여자와 연애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거리조절’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거리를 좁혀야 할 때와 벌려야 할 때는 판단하지 못하고 ‘닥공’(닥치고 공격)을 한 셈이다. ‘닥공’의 결과는 뻔하다. 얻어터진다. 친구는 좋아하는 상대의 상황과 처지 그리고 자신과의 관계 같은 섬세하고 조심해야 할 관계에서 무턱대고 들이댄 것이다. 언제 다가서고 언제 물러나야 상대가 불편해하거나 오해하지 않을지 판단하지 못한 것이다. 그 친구는 앞으로 몇 번의 실전 스파링(연애)을 더 해야 그 거리감각을 익힐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찾아온 부장의 고민은 ‘사각점유’에 실패했기 발생한 문제다. 부장은 부하직원의 정면에 서서 그를 평가하고 예단하려고 했다. 상대의 한 면만 보면 그의 문제가 보일 리가 없다. 그러니 당연히 그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부하직원의 측면으로 옮겨가 ‘사각점유’를 하면 그를 다른 각도로 볼 수 있다. 그때 비로소 부하직원이 왜 그리 허점이 많았는지, 왜 그리 이해 못할 행동을 한 것인지 좀 더 정확하게 보일 게다. 늘 상대의 정면에만 서 있으면 언제나 상대와 치고받는 것밖에 할 게 없다. 



 상대의 측면에 서서 다른 각도로 볼 수 있을 때, 상대가 허점을 보이는 이유에 대해 명쾌하게 알 수 있다. 그것이 복싱에서 사각점유가 중요한 이유다. 마찬가지로 부장도 부하직원을 정면에서만 바라보지 말고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상대의 이제껏 서보지 못했던 사각에 서서 상대를 바라보면 그를 더 깊게 이해하게 될 것이고 공감하게 될 것이다. 그때 부하직원은 좋은 부장을 만난 것에 감사하며 조금씩 변해갈 것이다.


 복싱을 잘하기 위해서 위치싸움을 잘해야 하듯이 자신을 둘러싼 인간관계를 잘 헤쳐 나가기 위해서도 위치싸움은 중요하다. 상대의 감정과 처치를 고려하여 섬세하게 다가서고 물러서는 ‘거리조절’ 능력. 늘 상대의 정면에서서 한 면만 보는 대신 언제든 상대의 측면으로 옮겨가 상대가 처한 곤경과 상황을 파악하려는 ‘사각점유’ 능력. 이 두 가지의 위치 선정 능력을 삶에서 잘 익힐 수 있다면, 언제나 부딪히며 살 수밖에 없는 모든 관계의 문제에서 조금 더 능숙하고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23.복싱은 결국 위치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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