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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공동체의 원인, 피해의식 II

자본주의라는 피해의식

자본이 유발하는 피해의식



 권력은 피해의식을 조장함으로써 체제를 유지한다. 이는 자본이라는 권력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나난다. 자본가는 기묘한 방식으로 의도적 상처를 준다. 넘쳐나는 광고들을 보라. 비싸고 새로운 상품(집‧자동차‧옷‧스마트폰…)을 소비하는 이들은 얼마나 행복해 보이는가? 이는 분명한 의도적 상처다. 자본이 주는 행복의 이면에는 가난이 주는 불행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가는 우리의 뼛속 깊이 하나의 목소리를 각인시켜 놓는다. “돈이 많은 행복할 것이고, 돈이 없으면 불행할 것이다.” 이 의도적 상처는 필연적으로 가난에 대한 피해의식이 된다. “돈 많은 이들은 모두 행복한데, 가난한 나만 불행하다.” 


 거대 자본이 투입된 영화, 드라마, CF 속에서 살아가면 가난에 대한 피해의식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이 피해의식은 가난한 이든, 부유한 이든 누구든 피해갈 수 없다. 가난과 부유함은 결국 모두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자본가라는 권력자가 자본주의라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피해의식을 조장하는 방식이다. 가난 때문에 상처 받았던 기억을 갖고 있는 이가 돈이 없으면 불행할 것이라는 상처 속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때 어찌 돈벌레가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돈이 없으면 불행해질 것이란 공포 앞에서 돈벌레가 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권력자(선생‧정부‧자본가…)들은 우리의 피해의식을 방치하거나 조장, 강화하며 기존의 체제를 공고히 하고 유지한다. 요즘 젊은이들 중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깊은 반감을 갖고 있는 이들이 있다. 이주 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모종의 불쾌함과 불만을 토로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이주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뺏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 반감은 어디서 온 것일까? 취업(고용)에 대한 피해의식 때문이다.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반감은, 취업이 잘되지 않아 받았던 상처로 인한 과도한 자기방어의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그렇다면 젊은이들의 취업에 대한 피해의식은 어디서 온 것일까? 자신의 능력 부족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취업이 안 되는 나’와 ‘이주노동자들을 미워하는 마음’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취업이 안 된다고 근거 없이 이주노동자를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취업이 앞으로도 계속 안 될 것 같다는 절망감이 이주노동자에 대한 근거 없는 반감이 불러일으킨다. 그 절망감은 어디서 왔는가? 바로 권력자(정부‧자본가)의 의도적 상처에서 왔다. 

     

 ‘취업이 안 되는 나’와 ‘이주노동자들을 미워하는 마음’은, 그 둘 사이에 권력자의 의도적 상처라는 매개체가 있을 때, 인과관계가 성립된다. 그 매개체는 무엇일까? 저임금 노동자를 찾아 더 큰 이윤을 남기려는 자본가의 탐욕과 그것을 은근히 방치하거나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정부 당국의 정책이다. 자본가와 정부는 기존주의 자본주의 제체를 공고히 하고 유지하고자, 취업에 대한 피해의식을 방치하고 조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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