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플에 대한 기록 1.
누군가 요즘의 나에게 안부를 묻는다면, 나는 무심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지겨워요."
평일에는 시간에 쫓기듯 일어나 출근하고, 일터에서는 만신창이가 되고, 피로한 몸을 누인 밤엔 잠이 오지 않아 헛헛함에 허덕이며 마무리하는 하루. 약속이 없는 주말엔 침대를 벗어나지 않는 삶. 큰 이벤트 없이 반복되는 일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삶을 살고 있고, 그 삶 속에서 각자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버둥대고 있다. 누구나 다 그렇게 살아, 라는 말로 안도하기엔 나는 평균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연애, 결혼, 자가, 안정적인 직장, 주식 수입 등등.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이 많은 결핍의 30대를 보내고 있는 요즘의 나다.
여전히 레이스에서 뒤처지고 있지만, 단지 느리다는 이유만으로 불행한 건 아니다. 다만, 마음 한가운데가 뻥 뚫린 것 같은 허전함이 드는 건 왜일까?
사실 나는 그 답을 알고 있다. 내 시간은 2022년 10월 25일에 멈춰있다.
어릴 때는 막연하게, 언젠가의 나(이를테면 20대에서 30대 정도)라는 사람이 세상의 중심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생각해 보면 정작 겁 없고 꿈 많을 어린 시절의 나 역시 중심에 비껴있을 뿐이었다.
여러모로 꺾이고 실패한 경험이 많은 지금의 나는, 주인공도 뭣도 아닌 일개 엑스트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낄 따름이다.
물론 저렇게 생각해도 내 삶의 주체는 내가 맞다. 주도적 삶을 살지 않는 건 아니지만, 뭔가를 주도하고 있다기엔 그 영향력이 너무 미미하며, 어딘가에 숨고 싶기만 한 작은 사람. 그저 스스로가 우주의 먼지 같은 존재처럼 느껴진다. 그런 존재가 타격을 받았다고 세계가 함께 절망하지는 않는다. 내 시간이 멈췄다고 세상이 멈추진 않는단 말이다.
이 세계의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고, 그 흐름 속에서 난 고여있다.
이 삶이 지루하다고 느끼는 이유가 반복된 일상을 살아서만은 아니다. 이미 관성처럼 그런 삶을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물론, 누적된 피로와 지난한 삶에 의해 번아웃이 올 수도 있겠지만 내가 느끼는 지겨움은 그 때문이 아니다.
가슴 한가운데가 뻥 뚫린 것처럼 허전한 이유는, 부재(不在)에 있다.
존재의 상실.
2022년 10월 25일, 오랜 시간 함께한 반려견이 세상을 떠났다.
물리적이든 심리적이든 거리가 멀어진 관계는 여럿 있지만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경험은 살면서 처음 겪어본 일이었다.
2022년 8월 21일, 내 소중한 반려견은 갑작스러운 발작과 함께 일어서질 못했다. 그렇게 두 달여간을 와병하다가 떠났다. 발작으로 쓰러지기 6개월 전, 이와 비슷한 발작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발작은 그 시간이 짧았고, 며칠의 입원 치료 후 호전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 후엔 평소와 같은 모습이었다.
예고도 없이 다시 찾아온 꽤 긴 시간의 발작. 발작의 순간 당장 심장이 멈춘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던, 그 시간 동안 어쩌면 나는 더 이상 이별을 유예하는 건 힘들 거라는 사실을 직감했는지도 모른다.
투병하며 보내던 두 달의 시간이, 모든 것에 느린 나에게 이제는 받아들일 때라고 말미를 준 것만 같았다. 한편으론 매일 같이 통원 치료를 하면서 정확한 원인을 알지 못한 채 행해지는 치료가 반려견을 더 괴롭게 만들었던 건 아닌가, 그럼에도 나는 미련투성이인 사람이라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기에, 혹여나 그런 나 때문에 더 힘들게 만든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괴롭기도 했다.
내 품에 안겨 무지개다리를 건너던 그 순간, 사실 그때에도 나는 지독한 악몽을 꾸는 것만 같았다. 이별을 직감했다는 것도 겪어보지 않고는 모르는, 그저 말뿐인 실감이었던 걸까.
두 달간 눈물 바람을 하면서도, 나아지진 않을까 하는 기대와 정말 끝인 건 아닌지 하는 절망에 하루에도 수십 번 요동치던 마음이, 헤어지던 날 아침에 무심코 뱉었던 말들이, 날붙이가 되어 나를 아프게 했다.
품에 안긴 채 이별을 고하던 순간, 호흡이 멎고 뻣뻣하게 굳어가던 몸의 감각이 여전히 선명하다. 그 순간은 마치 빛을 잃어가며 깜빡이던 전구가 종내에 탁 꺼지고 일시에 모든 것이 암전 된 것처럼, 색이 있던 내 세상이 빛을 잃었다. 빛을 잃은 세상은 어둡기만 했다. 그리고 나는 모든 감정적 자극에 둔해졌다.
슬펐지만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었다. 여느 때와 같이 출근하고, 미뤄둔 약속에 나가고. 운동을 하고, 노래를 듣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점점 내가 닳고, 마모되어 끝내는 모든 것이 바스러지고 마는 형국에 이르러서도 나는 들여다보길 거부하고 외면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더 이상 내게 반려견의 안부를 묻지 않는다. 한때 짓궂던 친구들은 반려견의 안부를 들을 때면, 장수하네? 하면서 놀리듯 말하곤 했는데 이젠 누구도 그런 말을 농담이랍시고 던지지 않는다.
이미 친한 친구들은 반려견이 떠난 사실을 알고 있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어쩌면 안부를 붇는 게 실례라고 생각해서인지도 모른다.
보내고 얼마 안 되어서는 말을 꺼냄과 동시에 막을 새도 없이 눈물이 삐져나오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냥 묵묵하게 말을 꺼내기도 한다. 그렇다고 정말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지만.
가끔 반려견 꿈을 꾼다. 꿈에서 만나면 반갑다가도 마음이 슬프다. 건강하고 활기찬 모습이 아니라, 늘 떠나기 전 한쪽으로만 누워 지내던 그 시간에 고여있는 모습이라서. 꿈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건 꿈을 꾸는 주체인 내 무의식과 기억의 영향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면, 그건 또 그 나름으로 슬프다.
좋았던 순간을 떠올려봐!
스스로에게 외치면, 그 외침은 메아리가 되어 공명할 뿐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동안은 회피해 왔다. 사진첩을 넘기다가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게 마음이 너무 무겁고 괴로워서 휘리릭 넘기곤 했던 순간들. 불편한 사람들에게는 반려견이 떠난 사실을 알리지 않기도 했다. 그저 잘 지내고 있다고만 했다. 이제는 아프지 않고 정말 잘 지내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만은 진심이었으니까.
내가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내 소중한 반려견은 꼭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이한 확신이 든다. 우리는 계속 이어져있는 것이다.
내가 연재를 결심한 계기는 아래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1. 기록하기
- 이미 오래전 기억은 희미해져서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걸 안다. 희미한 기억마저도 그 잔상에 기대어 각색된 내용일 수도 있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라도 기록해야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2. 기억하기
- 반추하고 싶다. 아프고 힘들었던 순간이 아니라, 행복했고 충만했던 순간들이 분명히 있다는 걸 아니까 그 순간들을 다시금 새겨보고 싶다. 이제 더 이상 꿈에서라도 아픈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사실은 꿈에 나와주는 것만도 너무 고맙다. 그래도 아프지 않고 밝게 뛰어노는 모습으로 날 만나러 와줬으면 하고 간절히 바랄 따름이다).
사실 재작년 언젠가, 나를 위해서 기록해 보자! 하는 마음으로 연재를 시작하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근데 당장 열어보기가 너무 겁이 나서 이내 포기하고 만 계획이었다.
깊게 팬 상처를 들여다볼 용기가 나지 않아 두꺼운 거즈로 틀어막고 있었던 것을, 이제는 들여다보려고 한다. 그 상처는 곪지도, 낫지도 않은, 처음 그대로의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을 걸 안다. 통풍을 시키고, 연고를 바르면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새살이 차오르지 않을까?
앞으로 브런치에 2주에 1편씩 업로드할 예정이다. 대략 20화 정도를 계획하고 있는데, 과연 계획대로 이행될지는 미지수다. 계획이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지만(게으른 나...), 머뭇대긴 해도 이번엔 멈추지 않을 작정이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위로를 받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지만, 이번 연재의 목표는 타인을 위한 위로가 아닌 나를 위로하기 위함에 방점이 찍혀있다. 보여주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닌, 나를 위해 쓴 글(일기를 제외하고)이 있었던가.
오늘도 지난하게 이어지는 하루 속에서 나는,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되뇌며, 두꺼운 거즈를 걷고 깊게 팬 상처를 들여달 볼 결심을 굳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