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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의 소울 푸드, 한우 연탄 구이와 된장 소면

하얀 눈꽃으로 여행자를 유혹하는 도시, 태백의 백미는 벽화 마을이다. 폐광촌의 흔적을 따라 걷는 ‘상장동 벽화 마을’은 태백의 과거와 현재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샘터 전설 마을’까지 돌아보기에 하루해가 짧을 정도로 볼거리가 많다. 벽화 마을에서 하루를 보내고 연탄불에 구워 먹는 한우 구이와 된장 소면은 겨울 혹한도 녹일만큼 뜨겁고 매력적이다.  

 

                                                              


폐광의 잿빛 그림자를 희망의 노란 빛으로 채우다

태백선의 시작이자 마지막 역이라는 문곡역에서 걸어 10분 거리에 상장동 남부마을이 있다. 주민 대부분이 광부 출신이었던 그 옛날, 주민들이 빼곡하게 모여 살았던 함태광업소 사택 촌이다. 1970년대 호황기에는 광부만 4천여 명이 거주했던 국내의 대표적인 광산 사택 촌이었던 곳이다. 샛노란 원색 페인트가 칠해진 상장동 ‘탄광이야기마을’은 잿빛 하늘의 겨울을 배경으로 화사하고 따뜻하게 이어진다. 목숨을 담보로 지하 막장에서 치열하게 사투를 벌였을 광부들의 전쟁같은 일상이 봄날의 목련처럼 꽃을 피웠다.    



  


상장동 마을은 1990년대부터 본격화된 폐광의 여파로 젊은 광부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난 뒤, 석탄산업 10여 년 만에 근대화를 이끈 산업일꾼의 지역이라는 기억조차 사라졌다. 2011년, 대부분 전직 광부 출신인 마을주민은 호황기가 사라져버린 우울한 마을 분위기를 개선하기 위해 모였다.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마을의 담벼락을 탄광촌의 추억으로 가득 채우기 위해 주민들이 힘을 합친 것이다. 상장동 이야기 마을은 뉴 빌리지 태백운동으로 시작되어 자원 봉사자들의 재능기부와 상장동 마을 주민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진행되었다. 그래서일까, 벽화 마을을 오가며 만나는 주민들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가득하다. 전형적인 열린 공간박물관(open air museum)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상장마을의 벽화 이야기는 태백시의 스토리텔링이다.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는 탄광촌의 전설을 상징하는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있는 만복이와 막장에서의 도시락 식사풍경, 광차를 타고 출근하는 광부들의 모습과 온종일 고생한 아버지를 기다리는 아이들까지 생생한 당시 모습을 그려냈다. 단순히 마을을 아름답게 미화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탄광촌 어두컴컴한 지하 막장에서 일하는 광부의 애환을 소박하게 그려냈다.

전문작가와 힘을 합쳐 마을주민들이 그려낸 벽화 마을 이야기는 마을 분위기만 바꾼 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도 움직였다. 주민들은 벽화를 통해 마을의 역사인 탄광촌의 역사를 보여주고 그들의 삶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살아가는 힘을 얻었다.      





꼬불꼬불 노란 빛깔의 마을 골목길을 따라 걸으며 옛 추억의 벽화를 즐기다 보면 2시간여의 타임머신 여행이 훌쩍 지난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사택 촌 전경은 석탄산업 호황기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1970년대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마을의 구석구석에는 아직도 까만 석탄가루가 지나온 세월의 더께만큼 앉아있어 태백의 옛 시절을 추억하기에 어렵지 않다.  추억의 골목길을 걷다 보면 남루한 일상도, 애잔한 마음도 눈 녹듯 사라진다     

잘 나가던 탄광촌이 이제 쇠락한 폐광촌으로 변하고 말았지만, 한때 호황기에 몰려든 사람들이 3만 명에 달했다.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이다 보니 그만큼 보수가 높았고, 또 그만큼 스트레스가 많다 보니 씀씀이가 컸다고 한다. 고된 일을 마친 광부들의 일상에는 맛있고 푸짐한 맛집이 따라다녔고 그에 따라 태백시의 입맛도 다양하게 개발되었다.     





태백에는 지금도 인기 있는 태백 한우구이와 얼큰한 물닭갈비 외에도 다양하고 맛깔스러운 메뉴들이 여행자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매콤하게 양념한 닭갈비에 향긋한 냉이를 듬뿍 얹어 전골처럼 끓여먹는 물닭갈비는 광부들의 식사나 안주로 사랑받던 탄광촌의 서민음식으로 남아있다. 태백으로의 여행은 일상에 지친 나를 돌아보게 하는 추억의 시간과 치열한 삶 속에 녹아있는 소울 푸드를 만나게 해준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이제는 아무 데서나 볼 수 없는 연탄을 발견하면, 무턱대고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가 떠오른다. 7080 세대들에게는 연탄에 얽힌 삶 속의 에피소드가 많아 연탄을 보는 감회가 남다를 것이다. 활활 타오르는 연탄만 보아도 방의 아랫목이 절절 끓는 것이 상상이 될 만큼, 협소했던 옛날 주택에 연탄만 한 난방재가 또 있을까. 태백에는 연탄에 대한 따뜻한 추억이 있는 부모님과 온 가족이 함께 둘러보기 좋은 동양 최대의 ‘태백 석탄박물관’이 있다. 박물관 주변으로 고생대의 화석과 퇴적층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살아있는 박물관이라 불리는 ‘태백 고생대 자연사 박물관’도 있다.    





1970년대, 탄광 도시로 호황을 누리던 태백에는 연탄불에 구워 먹는 한우가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당시 광부들은 목에 낀 탄가루를 씻어 낸다고 해서 돼지 두루치기나 소고기를 연탄불에 구워 먹곤 했는데 지금도 태백의 많은 식당이 연탄 구이로 태백의 전통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태백의 명물이기도 한 연탄 한우구이는 연소한 연탄을 이용해 고기를 굽기 때문에 연탄가스 걱정은 없다. 해발 650m 이상 고지대의 청정지역에서 성장하고 재래식 도축으로 신선한 육질을 자랑하는 한우 갈빗살이 가장 인기 있다.      





쫄깃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인 갈빗살을 연탄불에 잘 달궈진 불판에서 마늘과 함께 노릇노릇 구워 먹다 보면, 얼었던 몸도 연탄불 앞에서 말랑하게 녹는다. 금방 무쳐 나온 겉절이에 싸서  한 입, 싱싱한 푸성귀에 한 입, 새콤한 양파 피클에 얹어서 한 입, 갈빗살이 익기가 바쁘게 입에서 녹는다.     





태백의 광부들은 섬세한 입맛을 가진 미식가였거나 호기심이 많았거나 수더분한 성격을 가졌을 것이다. 연탄불에 고기를 구워 먹고 시원한 냉면보다, 구수한 된장찌개에 소면이나 밥을 말아 끓여 먹었다니 말이다. 된장찌개와 소면의 콜라보에 대한 첫인상은 낯설었지만, 반전의 묘미가 있었다.     



 


심심하게 끓인 된장찌개의 구수한 국물에 통통 불은 소면을 먹다보면 갈빗살의 느끼함은 깜쪽같이 사라지고 속이 편안해진다. 그 맛이 어찌나 매력적인지 남은 된장국물에 마침내  밥까지 넣어 바특하게 끓여 먹다 보면 그리운 봄날이 금세 다가올 것처럼 몸과 마음이 훈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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