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가까운 태안에서 오늘의 메뉴를 아귀찜으로 정했다면 탁월한 선택이다. 원봉식당은 신선하고 통통한 생물 아귀로 바닷가 식당의 미덕을 갖춘 집이다. 선도가 떨어지면 엄두도 못 낼 아귀의 간과 내장을 넣어 고소한 맛과 감칠맛을 낸다. 게다가 태안의 단단한 육쪽마늘과 태양초 고춧가루를 써서 칼칼하고 시원한 아귀찜을 맛볼 수 있다. 알싸한 아귀찜에 채소육수로 맛을 낸 시원한 물냉면으로 입가심하면 마무리까지 깔끔하다.
원봉식당으로 가는 길에 태안서부시장이 있다. 지역에서 나는 싱싱한 채소를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시장 앞을 지나자마자 오른쪽에 원봉식당 간판이 보인다. 시장이 가까우니 식재료가 신선할 거라는 예감이 든다. 식당에 들어서니 고소한 향이 식욕을 자극한다. 주문과 함께 볶아낸 아귀찜에 마무리로 한 바퀴 휙 돌려주는 참기름 냄새다. 예상한 대로 매일 쓸 만큼 시장에서 짜 온다니 참기름의 고소한 향부터 믿음이 간다.
아귀찜은 주문하고 10여 분 만에 하얀 김을 폴폴 날리며 먹음직스럽게 등장한다. 아귀찜은 첫눈에 반할 수밖에 없다. 아삭한 콩나물 사이로 뽀얀 아귀 살이 보이면서 고춧가루 양념장이 적당히 버무려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먹어온 콩나물찜이 아니라 제대로 된 아귀찜이다. 부드러운 아귀 살과 쫀득한 껍질까지 부지런히 먹다 보면 이따금 나오는 오만둥이와 내장이 쫄깃하게 씹힌다. 외국산 아귀나 오래 저장된 아귀라면 넣을 수 없는 간과 내장, 등을 찾아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작은 아귀는 양념장에 볶다 보면 살이 다 녹아서 4~5kg짜리 아귀로 요리하기 때문에 살이 많고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아귀는 못생겼다고 놀림받는 물고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쫀득한 젤라틴 성분이 많아 피부 미용에 최고다. 모양이 볼품없어도 별미인 아귀찜은 가을에 생물로 나올 때가 제일 맛있다. 가을에 잡은 태안산 아귀를 냉동실에 가득 채워놓고 1년 내내 쓰는데, 9월 전에 냉동 아귀가 떨어지면 군산에서 공수해다 쓴다. 외국산이 값싸고 구하기도 쉽지만, 아귀는 물론 고춧가루와 마늘도 국산만 쓰는 게 원칙이다. 좋은 재료가 좋은 맛을 내기 때문이다.
육쪽마늘과 태양초 고춧가루의 매콤한 만남
22년을 한결같이 아귀찜 맛을 지켜온 원봉식당은 온 가족이 함께한다. 아버지가 주방장을, 외동딸이 홀을 관리하고, 무게가 만만치 않은 아귀 손질은 사위가 맡는다. 안주인은 아귀찜의 기본적인 맛을 내는 재료를 직접 마련한다. 매일 짜는 참기름부터 아귀찜을 만드는 재료 준비에 하루해가 짧다. 마른 고추를 일일이 닦아서 빻은 고춧가루, 곱게 다져서 냉동고에 저장하는 마늘 등 아귀찜 맛의 기본을 챙기는 데 가을이 가장 바쁘다. 맛있게 매운맛을 내기 위해 외국산 고추나 캡사이신 소스 대신 태안산 태양초 고춧가루를 쓴다. 1년에 1200kg(2000근)는 사놔야 마음이 놓인다는 안주인의 손맛은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옛말 그대로다. 냉동실에 육쪽마늘과 생강을 여유 있게 준비해놔야 아귀찜에도 넉넉하게 넣을 수 있으니 22년을 이어온 맛이 변치 않는다는 이야기다.
맛있는 아귀찜을 내는 비결은 태안산 육쪽마늘과 태양초 고춧가루를 넣은 양념장이다. 마늘의 알싸한 맛이 아귀의 비린 맛을 없애고, 매콤한 고춧가루가 콩나물과 어우러져 풍미 가득한 아귀찜을 완성한다. 아귀찜은 바특하게 볶는데, 짧은 시간에 콩나물은 아삭하게 익히고 아귀는 촉촉하고 부드러운 맛을 내는 게 관건이다. 남은 양념에 볶은 밥도 맛있다. 서부시장 가게에서 구입하는 김 가루는 태안에서 나는 구이 김이라 짜지 않고 신선하다. 고소한 참기름과 향긋한 김 가루로 근사한 볶음밥을 맛볼 수 있다.
아귀찜과 냉면의 깔끔하고 시원한 궁합
아귀찜과 함께 사랑받는 메뉴가 하나더 있다. 아귀찜을 먹으면 대개 남은 양념에 볶은 밥이나 누룽지를 먹는데, 이곳에서는 냉면으로 마무리를 한다. 아귀찜과 냉면의 조화에 의아하던 사람도 그 맛을 보면 반한다. 매콤한 아귀찜에 얼얼해진 입안을 시원한 물냉면과 달콤한 비빔냉면이 깔끔하게 정리해주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냉면 대신 달큼하고 시원한 동치미가 등장한다. 10월에서 이듬해 6월까지 무가 맛있는 계절에는 개운한 동치미로 아귀찜의 매운맛을 달래준다.
아귀찜이 저녁 식사나 술안주로 사랑받다 보니 점심 메뉴로 개발한 것이 냉면이다. 충청도 사람들 입맛에 맞춰 채소 국물로 만든 맑고 시원한 냉면이다. 표고버섯, 양파, 말린 파 뿌리, 대파 등을 넣고 6시간 이상 푹 고는데, 과일즙으로 단맛을 낸다. 냉면에는 아삭하고 색이 변치 않는 서산 배를 올린다. 여름에는 아귀찜보다 냉면을 먹으러 오는 손님이 많을 정도로 인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