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통영 다찌에서 한 잔 어때요?

통영의 푸른 밤을 밝히는 다찌 선술집과 시원하게 아침을 깨우는 졸복지리




통영의 해안은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고 동피랑 벽화 마을은 몽마르트르 언덕에 비유된다. 이토록 화려한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도시가 또 있을까. 비행기를 타고 떠나지 않아도 충분히 이국적이고 아름다우며 토속적인 음식을 만나는 곳. 섬과 바다와 도시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지는 곳. 아름다운  통영에서 푸른 밤을 밝히는 다찌 선술집과 상쾌하게 아침을 깨우는 졸복 지리를 만났다.



                                                                


하루쯤 어디로 훌쩍 떠나고 싶은데, 어디가 좋을까?



혼자 훌쩍 다녀올 만한 여행지를 묻는 지인에게 고속버스 시간만 4시간 넘게 걸리는 통영을 권했다. 어차피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면, 통영으로 오가는 8시간도 온전히 너의 여행이 되어줄 테니까.

통영 8경의 백미로 꼽히는 미륵산 한려수도 케이블카와 알록달록 벽화가 그려진 골목길을 걷는 동안 동심으로 돌아가는 동피랑 벽화 마을 두 곳을 권유했다.


미륵산 전망대


한려수도의 환상적인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고 시원한 바닷바람과 격렬하게 만나는 미륵산 전망대는 눈을 두는 곳마다 예술이다. 동쪽 비탈길에 자리한 동피랑 벽화 마을은 미로처럼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을 따라 아기자기한 벽화 구경을 하다 보면 눈보다 마음이 먼저 즐겁다.


동피랑 벽화마을


점심은 통영중앙전통시장 인충무김밥 골목이나 서호시장 근처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충무김밥을 먹을 것을 추천한다. 혼자라는 외로움이 스며들 틈도 없이 매콤하고 짭조름한 오징어와 섞박지가 쫀득한 손가락 김밥과 함께 허전함을 쏙쏙 매워줄 테니까.


서호시장 충무김밥


통영의 빠듯한 반나절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벌써 그녀는 나를 원망할지도 모른다. 그곳은 하루 만에 다녀오기에 턱없이 시간이 부족한 곳이니까. 그녀는 멀지 않아 1박 2일 여행을 떠나고 싶을 테고 그다음엔 통영에서 출발하는 2박 3일의 섬 여행을 준비할 것이다.



나에게도 통영은 그랬다. 통영을 1박 2일 여행한 뒤, 소매물도로 떠났고 그다음엔 비진도와 욕지도로 떠났고 그 후에 통영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되었다.


비진도의 어느 해 여름


통영은 가면 갈수록 매력이 넘치는 도시다. 충무공 이순신의 유적지와 삼도수군 통제영의 문화를 돌아볼 수 있는 통영은 통제영의 약칭으로서 충무공의 흔적이 한산도를 중심으로 산재한 곳이다. 문화예술의 보물창고라고 불리는 통영은 시인 유치환, 음악가 윤이상, 시인 김춘수, 소설가 박경리, 화가 전혁림, 조각가 심문섭 등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가들의 고향이다.


전혁림미술관


공원으로 꾸며놓은 박경리 문학관에 가면 문학소녀 시절 읽은 대하소설 토지를 떠올리게 되고 전혁림 미술관에 가면 화려한 색채로 태어난 통영 바다에 퐁당 빠지게 된다.

통영 중앙우체국 앞의 청마 문화거리에 가면 사랑에 빠진 시인이 편지를 쓰고 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람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 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시인 유치환이 오래도록 찾았다는 우체국 앞 시비에서 행복이라는 시를 읽으면 잊고 있던 첫사랑의 그림자가 떠오르고 애잔한 마음에 마음이 눅눅해진다. 그러나 눈이 시리게 푸른 통영 바다가 눈앞에 있고, 혼자라도 쓸쓸하지 않을 만큼의 바람이 감미로우니 괜찮다.      


서호시장 횟집에서 먹는 싱싱하고 푸짐한 회 한상


통영의 바다를 통째로 맛보는 선술집, 다찌를 만나다



통영을 다섯 번쯤 찾았을 때, 통영의 사내들이 열렬히 사랑해 마지않는 선술집, 다찌에서 통영의 바다가 담긴 술상을 받았다. 전주의 막걸리 골목처럼 막걸리를 추가로 시킬 때마다 푸짐한 안주가 따라 나오는데, 일단 사람 수에 맞춰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 소주와 맥주와 얼음이 가득 담긴 통부터 나오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다. 기본적으로 다찌는 술을 많이 먹을수록 맛있는 안주가 줄지어 나오니 주당들에게 안성맞춤인 곳이다. 청정 바다와 맑은 공기 덕분에 엄청난 주량을 자랑하는 통영 사내들의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는 곳, 다찌의 밤은 그렇게 시작된다.



1인분은커녕 2인분도 예약이 안 된다는 통영의 다찌집 중에서 2인 상을 내어준다는 인심 좋은 식당을 찾았다. 취재차 들렀던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의 소개로 푸짐한 해물 상이 차려졌다.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가 닮은 부부는 보자마자 통영서 잡히는 해산물 자랑에 열을 올렸다.

손맛 좋은 여주인이 뚝딱뚝딱 차려내는 해산물은 차림새도 예쁘지만, 맛도 좋았다. 그날그날 들어오는 해물에 따라 메뉴가 바뀐다는데, 복불복이라 하더라도 기본 상만큼은 믿을 만하다.



기본 상차림이 나오고 비워지는 접시 따라 새로운 안주들이 테이블을 채워가고 술이 추가될수록 맛있는 안주가 나와서 또 술을 부른다. 가격에 맞추어 상차림이 차려진다고 해도, 술잔이 오가며 거나하게 취해가는 이들에게 정성껏 챙겨서 나오는 서비스 안주는 정겹고 맛깔스럽다. 안주 접시를 들고 온 주인장에게 세상 사는 이야기를 건네기도 하고 맛있는 안주에 달콤한 예찬을 날리고 싶어 진다. 중앙시장이나 서호시장에서 새벽 장을 보며 값싸고 싱싱한 해산물을 사다가 손님에게 제공하는 즐거움과 보람이 주인장의 얼굴에도 가득하다.



도시 사람 눈엔 난생처음 맛보는 해산물도 수두룩하다. 호루래기라고 불리는 꼴뚜기 회부터 광어, 학꽁치, 가오리가 소담스럽게 나온다. 해삼과 미더덕회에다 털고동까지 귀한 해물이 줄줄이 나오고 산 낙지에 가리비, 새우, 주꾸미, 문어숙회에 딱새우까지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복어껍질무침은 눈에 익은데, 장어내장 수육의 비주얼은 입이 딱 벌어질 만큼 생소하다. 통영사람들만 먹는 음식이라는데, 처음 맛보는 식감에도 반할 만큼 쫀득하고 내장 특유의 구수한 뒷맛이 환상이다.



바다에서 건져 올린 것 중 맛있는 것만 올린다는 주인장은 바다의 향기를 그대로 식탁에 올리는 게 맛의 비결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신선하게 씻는 것과 싱싱하게 익히는 것이 팁이라는데, 왠지 그들만의 요리의 내공이 느껴진다.

적절한 포만감에 젓가락을 놓으려는 순간, 주인장이 개발한 메뉴인 게회를 맛보라고 내준다. 급랭해서 얼린 게에 과일 간장소스를 얼려 슬러시로 올렸는데, 통영사람들의 소울푸드를 맛보는 귀한 기회다. 비주얼은 간장게장인데, 짜지 않고 시원하고 향긋한 맛이 일품이다.



꾸덕꾸덕하게 말려 쪄낸 생선찜, 달곰하게 삶아낸 소라, 향긋한 꽃게찜, 쫄깃한 가리비찜이 첫 상에 나오고 쫀득하게 삶아낸 문어는 즉석에서 큼직하게 잘라준다. 매콤하고 짭조름하게 조려낸 생선조림에는 밥 한 공기가 따라 나온다. 싱싱해서 젓가락을 대기만 해도 툭툭 떨어지는 살이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칼칼한 조개탕도 시원하다. 적당하게 마신 술과 든든하게 채운 밥으로 기분 좋은 마무리가 되는 순간이다.     

무엇보다 술안주로 최고의 밥상이지만 다찌의 코스를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기본으로 나온 술을 다 마시고 술을 추가할 때마다 안주가 추가되는 술상에 맞춰 소문난 주당들과 술자리를 갖는 게 현명하다.



주당들의 천국, 통영에는 다찌만큼 시원한 해장국도 다양하다. 봄날의 도다리쑥국부터 장어뼈를 고아 시래기와 함께 끓여낸 시국과 자연산 졸복으로 끓이는 복지리가 있다. 서호시장 통에서 만나는 원조시락국의 시락국 냄새는 전날 과음으로 속 쓰린 주당이 아니어도 구수한 된장국 냄새를 맡으면 허기가 밀려온다. 뷔페로 덜어먹는 반찬도 골고루 맛있어 시락국에 취향저격이다.



여객선 터미널 건너편 서호시장의 식당 골목에 졸복국으로 유명한 형제복국 식당이 있다. 작은 크기의 졸복에 콩나물과 미나리를 듬뿍 넣어 끓여내는 졸복국은 시원하고 담백하다.



형제복국은 현지인들이 추천하는 맛집인데, 아침부터 해장국을 찾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행여 남아있을 비린내를 잡으려면 식초를 두어 방울 뿌려도 좋다. 시큼한 첫맛이 입안에 풍미를 돋워주고 노르스름한 졸복을 건져 미나리와 함께 씹는 맛은 쫄깃하고 향긋하다.



졸복국을 주문하면 뼈째 썰어낸 회가 나오거나 매콤하게 무친 회무침이 따라 나오는데, 통영에서나 맛볼 수 있는 넉넉한 인심이다. 졸복과 미나리와 콩나물을 건져 초장에 찍어 먹고 맑은 국물에 밥을 훌훌 말아먹다 보면 이마에 송알송알 땀이 맺히면서 얼큰하게 남아있던 술기운도 시원하게 날아간다.     

 



*상기 정보는 2019년 7월 작성되었으며 이후 세부 사항은 변경될 수 있으므로 여행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작가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쏨땀과 팟타이가 만났을 때, 이태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