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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가서 뭐 먹지?

경주 유수정 쌈밥, 우향다옥, 선주식당



경주는 1년 내내 여행자의 발길을 이끄는 매력적인 여행지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풍광이 그림처럼 이어지는 경주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여행지의 필수 코스, 맛집의 명성을 찾기 힘들다. 무수히 많은 명소와 유적지에 대한 만족감 덕분일까, 경주에서 추억으로 남은 음식은 단조롭고 평범하다. 맛집은 입에 맞는 음식뿐 아니라 식과의 첫인상, 추억의 미각을 건드리는 감성, 적절한 허기의 타이밍과 만나야 제격이다. 입맛처럼 간사하고 주관적인 세상이 또 어디 있을까. 그렇다고 끼니마다 한정식 코스를 먹을 것도 아니고 영혼 없는 인스턴트 식사로 때울 게 아니라면, 경주에서 꽤 오랫동안 음식을 지어 파는 식당을 찾아내는 것이 적절한 타협다.



금강산도 식후경, 볼 게 아무리 많다 해도 맛있는 한 끼를 빼놓을 수 없으니 경주에서 소박하게 먹을 만한 밥집 세 곳을 골랐다. 쌈밥집이 유난히 많은 경주에서 제육볶음과 쌈밥의 조화를 묵직하게 이어가고 있는 유수정 쌈밥과, 낡고 오래된 집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고택에서 투박한 시골 밥상을 맛보는 양동마을의 우향다옥, 경주시청 맛집이며 현지인 맛집인 선주식당의 잔치국수까지 세 곳의 밥상이 다행히도 내게로 왔다.      





경주사람들이 좋아하는 잔치국수와 부추전, 선주식당


경주에는 지인이 없다. 2016년 여름, 경주 도예가 인터뷰가 있었는데,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자 도예가 분이 국수 좋아하냐고 물어 대뜸 잔치국수 좋아한다고 말했다. 잔치국수는 나의 최애 음식이니까. 게다가 경주사람들이 가는 맛집이라고 자랑하시니 고사할 이유가 없었다. 결국 다음날 점심시간에도 잔치국수를 먹었다. 취재로 1박2일 머물면서 같은 음식을 두 번 먹은 건 처음있는 일이었다. 그만큼 입맛을 사로잡은 잔치국수였다.



맑고 깊은 멸치국물에 소면을 말아내고 매콤한 양념장을 얹어내는 취향저격 잔치국수다. 청양고추를 썰어넣은 부추전이 별미라고 했는데, 첫날은 점심시간 전에 품절되어 잔치국수만 먹었다. 다행히 1박2일 취재 일정이라 다음날, 다시 이른 점심시간에 가서 부추전과 잔치국수를 맛볼 수 있었다. 매콤한 양념을 얹어 개운하고 시원한 잔치국수와 먹을수록 고소하고 매콤한 부추전의 조화가 썩 잘 어울렸다. 그 집 국수가 먹고 싶어 경주 갈 기회를 엿보지만, 여의치 않다. 세월이 흘러도 아직 주인장의 손맛이 변한 것 같지 않아서 다행이다.





7080 팝송을 들으며 추억하는 아날로그 쌈밥, 유수정 쌈밥



불국사로 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유수정은 꽤 오래 경주의 대표메뉴인 쌈밥을 이어가는 곳이다. 흙과 나무로 투박하게 지은 실내로 들어서면 오래된 레코드판이 빼곡하게 꽂혀있는 작은 마당이 보인다. 토속적인 소품들을 아무렇게나 놓은 듯 자연스러운 풍경 속에 커피 한 잔을 즐기고 싶은 낭만이 돋는다.



마당의 나무 테이블에서 금방 구운 해물파전을 놓고 막걸리 한잔 해도 제격이다. 테이블 주변으로 7080 분위기로 꾸며놓은 작은 방들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적한 시간에 찾아갔다면, 마음에 드는 방을 골라 자리 잡고 앉아도 좋다.   



마늘과 양념을 듬뿍 넣어 칼칼하게 무친 돼지 불고기는 연탄불에 구워 불향이 제대로다. 소쿠리에 푸짐하게 담긴 상추, 근대, 치커리, 케일, 깻잎, 배추, 적겨자 잎, 양배추, 다시마 등 쌈 채소는 경주 지역에서 키우는 로컬 푸드라 더할 나위 없이 싱싱하다. 초록빛이 신선한 상추쌈에 집 된장으로 무친 고추 한 조각, 매콤한 불고기 한 점을 놓고 야무지게 싸서 한 입 크게 넣으면 아삭아삭, 신선한 밥상 위로 미각의 향연이 펼쳐진다.     


  




아름다운 고택 마루에서 먹는 담담한 밥상, 우향다옥


         

500년의 전통을 잇는 양반 마을인 양동마을 안에서 300년이나 되었다는 우향다옥은 납작한 언덕 위에 기와집과 초가집 두 채가 나란히 들어앉아있다. 양동마을에선 민박을 별방, 식당을 다옥이라 부른다. 고택 뒤편에 작은 방을 들인 초가가 있고 마당 안에도 식당으로 꾸민 실내가 있어 점심시간에는 양동마을 찾은 많은 손님으로 북적거린다. 양동 청주로 불리며 270년을 이어온 여강 이 씨 가양주, 송곡주 기능보유자이며 양동마을 문화해설사 이지휴 씨가 주인장이다.      



7대를 이어가고 있다는 고택의 정취만큼 깊은 맛을 자랑하는 청국장과 시골 정식을 맛볼 수 있다. 잡냄새가 없고 구수한 맛이 손맛 좋은 외할머니의 된장찌개처럼 맑고 깔끔해서 청국장을 처음 먹는 사람에게도 무난하다. 두부와 나물 반찬이 계절마다 살짝 바뀌어도 소박하고 깔끔한 손맛은 변함이 없다. 간소한 시골 밥상에 기품 있는 송곡주 한 잔을 곁들이는 여유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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