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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경 May 29. 2019

[수요_킨포크] 미국 와서 갑.분.에(코라이프)

각성은 그렇게 소리 소문 없이 찾아왔다...

쓰레기 배출량 세계 1위는 두둥~ 미국이다. (중국일거라 생각했는데..)

미국이 버리는 것처럼 다른 나라들도 쓰레기를 버려댄다면 지구 4개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 팩트는 며칠 전에 처음 안 사실이지만, 미국 오자 마자 본 바가 있어 '내 그럴 줄 알았다...'라고 생각했다.


올 겨울부터 미국에서 한 몇 년 살게 될 입장이었다.

그래서 미국 오기 전, 짐들을 미국으로 보냈어야 했는데.

그 참에 숙원 하던 미니멀 라이프인이 되어보자~하여 물건들을 많이 버렸다. 

하지만 어쩐지 미련이 남는 것들은 요래~요래~ 보다가 결국 또 버리지 못했고 

일단 미국으로 가져간 다음에 거기서도 필요 없으면 그때!! 버리자 위안하며 가져온 것들이 많았다.


그리고 12월. 미국에 도착하고 짐을 정리하고 보니 역시...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나 사는 건 똑같은데 거기서 필요 없는 건 여기서도 필요 없는 거였다.

그리하여 나는 쓰레기를 태평양 건너까지 실어온 미니멀 라이프인이 되었다.


이걸 이제 다처리해야 하는데...

미국은 법이 엄격해서 아무렇게나 버리면 안될 것 같고 슬슬 쓰레기 버리는 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런 거 다 스티커 붙이고 버리려면 돈이 얼마...

플라스틱도 아닌 비닐도 아닌 유리도 아닌 애매한 이런 것들은 어떻게 버리지?

종이 쪼가리들은 재활용 안 되겠지? 등등 


한국에서 다 처리하지 못하고 가져온 것에 가슴을 치며

몇 날 며칠을 쓰레기만 쌓아 놓은 채,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고...

재활용을 쌓아 놓은 채, 재활용을 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며칠간 굉장히 엄격하게 재활용 쓰레기들을 선별했고,

됐어! 이제 버리자! 하며 쓰레기장에 갔는데

응??? 엥???

아니 뭐... 컨테이너에 paper, plastic, bottle... 다 퉁쳐서 적혀 있는 것이었다.

분류를 안 한다.

컨테이너 뚜껑을 열어보니 쓰레기통이랑 진배없다.

다양한 것들이 마구 뒤섞여 있고 더럽다.


이건 배신이었다.  

"아니 미국이 뭔 재활용을 이따구로 ..?"

(천박한 사대주의 현타의 순간)


미국의 구린 재활용 시스템을 확인하며 나의 완벽 분류된 재활용품들이 한 통에 뒤섞고 돌아오는데

그때 든 느낌 허탈함? 어이없음? 보다는 사실은 약간 무서움이었다.

 

미국 스케일답게 쓰레기 크기부터 어마어마하며, 양도 대단했다.

집집마다 물을 사 먹으니 물 페트병이 크기별로 가득 차 있었고,

아마존에서 뭘 그렇게들 사셨는지 큰 대형 박스들이 넘쳐나 있었다.  


이렇게 많은 쓰레기들을 그냥 버린단 말이야..? 

한국에서는 20리터 한 봉지 버리면서도 죄책감이 들었는데..

재활용하면서 플라스틱에 붙은 스티커 안 떼고 버리면서 헤헷;; 양심에 찔렸는데...


여하튼 한 두 달 지나다 보니 나 역시 재활용 개념도 없어지고,

일반 쓰레기도 복도 끝 엘베 옆으로 가서 벽을 열고 던지면 걔가 1층까지 쪼르륵 미끄러져 지하 컨텐이너로 직행하므로 넘들이 쓰레기를 얼마나 버리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그렇게 대충 살아왔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찜찜....


과한 비유이지만 성인들이 깨달음을 얻기 전 악마들이 뭐라 뭐라 꼬드기고 괴롭히는 것 마냥

나도 막 딸의 거북이 장난감을 보자니 플라스틱이 입에 껴서 아사한 바다 거북이가 생각나고 ㅜㅜ

배에서 쓰레기만 가득 나온 배탈 나 죽은 고래도 생각나고 ㅜㅜ

한국 미세먼지 기사 볼 때마다 멀리서나마 일조하는 것 같고 ㅜㅜ

내 딸을 보고 있자니 얘가 살 지구가 쓰레기 밭이 될 것 같고 ㅠㅠ (눈물 양 추가)


결국 의식의 흐름, 마음이 가는 곳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덧 zero waste life에 눈을 뜨게 되었다.

유튜브를 찾아보고, 카페에 가입하고, 블로그 글 읽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대단하지 않지만 하나씩 실천하고 싶다.

정말 정말 쓰레기를 줄이고 싶다는 지금의 내가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강조)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어릴 때부터 환경에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기억의 오류인가;;

여하튼 막연히 원하고 지향하고 싶었던 삶의 이미지를 여기 와서 확실히 그리게 되었다.


처음에도 말했지만 심플 라이프,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게 꿈이다.

물건을 줄이고, 그에 따른 자연적인 별책부록으로 쓰레기도 많이 내지 않는 단아한~ 삶.

아직 서랍에는 지퍼락, 랩, 비닐봉지가 쌓여 있지만 천천히 바꿀 것이고

그렇게 나는 에코라이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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