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평 원룸에서 시작한 결혼

– 연봉은 높았지만, 시작은 가장 작았다.

by 시연

결혼식이 끝나고,
우리의 신혼집은 내가 살던 9평 원룸이었다.

둘이 살기에 좁았지만, 그땐 괜찮았다.
무엇보다 서울에서 시작하고 싶었으니까.

남편은 그 전까지 지방에서 월세로 살았다.
내 원룸보다도 작은 방.
싱크대 앞에 서면 냄비 하나 올리기도 벅찬 주방,
벽 한쪽에 걸린 얇은 커튼이 유일한 ‘인테리어’였다.

차도 내가 타던 중고차 한 대만 남겼다.
100만 원 주고 샀던 남편의 낡은 소나타는 폐차장으로 갔다.
폐차소 직원이 “이건 진짜 오래 버텼네”라고 한마디 했다.
남편은 웃었지만, 나는 괜히 마음이 쓰렸다.

사실 신혼부부가 받을 수 있는 보조금이나 혜택을 받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늘 같았다.


“연봉이 높으셔서 지원 대상이 아니십니다.”


그 ‘높다’는 연봉이 우리 수중에 있는 현금보다 많았다는 건
아무도 묻지 않았다.

결혼 직후, 우리가 가진 건 3천만 원뿐.


그리고 그마저도 집 보증금을 빼면 빚뿐이었다.

더 속상한 건, 나보다 연봉이 훨씬 작던 친구들이
다들 아파트에서 신혼을 시작한다는 거였다.
부모님의 지원 덕이었다. 그리고 그 친구들은 우리보다 연봉이 낮아 많은 혜택을 받았다.

9평 원룸에서 시작한 부부는 내 주변에서 우리뿐이었다.

그래도 그땐 낙관적이었다.
아이가 없었고, 젊었고, 열심히 벌면
분명 몇 년 안에 서울에 아파트 하나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우리 조금만 고생하면 금방 옮기겠지?”
“당연하지. 둘이 벌잖아.”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다.
9평 원룸의 작은 부엌에 둘이 나란히 서면
한 사람이 움직일 때 다른 사람은 숨을 죽여야 했다.
겨울에는 빨래 건조대에서 나온 습기가 벽에 맺혔다.

가끔은 벽지 속 곰팡이를 스펀지로 닦아내며
“이게 우리 신혼의 향기인가” 하는 자조 섞인 농담을 했다.

학자금 대출을 갚고, 주택 대출을 갚고, 생활비를 쓰고 나면
통장에는 바닥만 보였다.
연봉은 우리 부부가 주변에서 제일 높았지만,
생활 수준은 제일 낮았다.


그 9평 원룸은,
우리가 ‘젊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했던 가난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가난은, 생각보다 오래 우리 곁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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