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로맨스보다 계산이 먼저였다

– 사랑했지만, 현실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by 시연

남편과 나는 대학생 때 처음 만났다.
서로 다른 과였지만, 동아리에서 함께 활동하며 금방 가까워졌다.
그 시절 우리의 고민은 단순했다.
내일 뭐 먹을지, 이번 주말에 어디 갈지.
미래 계획 같은 건 달력에 없는 단어였다.


연애는 길었다.
졸업 후에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취업 준비를 하면서 서로의 자취방을 오갔고,
결국 같은 해에 둘 다 취직을 했다.

둘 다 사회 초년생이었지만, 각자 월세를 내고 있었다.
통신비, 관리비, 월세까지 합치면 한 달 고정지출이 너무 컸다.
그래서 가끔 이런 농담을 했다.

“그냥 결혼할까? 집 하나만 있으면 절반은 줄잖아.”
“와, 로맨틱하다. 절약을 위한 결혼이라니.”


우린 웃었지만, 웃음 속엔 계산이 있었다.
사랑과 로맨스 뒤에 숨은, 숫자의 셈법.


문제는, 결혼한다고 형편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는 거다.

30대가 되면 월급이 오르고 생활이 넉넉해질 거라고 믿었지만
막상 사회생활을 해보니, 오르는 건 월급보다 지출이었다.
월세는 매년 인상됐고, 식비와 생활비는 물가를 따라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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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들은 말했다.
“둘이 벌면 괜찮잖아.”
그건 부모님이 집을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우리는 둘 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졌지만,
넉넉한 부모 밑에서 자란 건 아니었다.
결혼을 해서도 학자금을 스스로 갚아야 했다.

그래도 우리는 결혼을 결심했다.


사랑해서이기도 했지만, 더 솔직히 말하면
같이 버티는 게 혼자 버티는 것보다 덜 힘들 것 같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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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준비, 그리고 ‘그 전화’


나는 결혼식 자체를 원하지 않았다.
사람들 앞에 서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간소하고 조용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한복은 맞추지 않고 대여하기로 했다.
어차피 한 번 입고 말 텐데,
그 돈이면 전세 계약금에 보태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시댁에서 전화가 왔다.


“한복은 최고급으로 맞추자. 그래야 체면이 서지.”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시댁은 우리 집보다 형편이 더 어려웠다.

그래서 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청담동 한복집에 앉아 있었다.
비단이 반짝이는 매장 한쪽에서,
내 카드 한도와 통장이 동시에 얇아지고 있었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시댁만 맞출 수 없으니, 우리 집과 우리 부부 것도 모두 맞춰야 했다.
순식간에 ‘합리적인 대여’는 ‘한 번 입고 옷장에 갇힐 최고급 한복’이 됐다.

결혼식이 끝난 뒤, 그 한복은 옷장 안 깊숙이 들어갔다.
비닐에 싸인 채, 한 번도 빛을 보지 못했다. 버리지도 입지도 못하는 그런 애물단지가 되었다.


나는 가끔 그 옷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그때 왜 더 강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우리의 형편을, 그리고 이 돈이 얼마나 아까운지를.


결혼은 사랑이었지만, 동시에 협상과 계산이었다.
우리는 사랑했고,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그 사랑이 현실을 덮어주진 못했다.

다만 확실한 건 하나 있었다.

각자 버티는 것보다, 같이 버티는 게 조금은 낫다는 것. 그게 우리가 결혼한 이유였고,
아직도 함께 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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