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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차 Nov 16. 2020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향수 만들기

  나만의 향수로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유혹하자


   사실 향기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향수다. 당신은 어떤 향기를 좋아하는가?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향기가 무엇인지 아는가? 나는 시트러스 계열의 향을 좋아한다. 이 향은 오렌지, 레몬, 라임, 자몽 등의 감귤류의 향이다. 내가 시트러스 향을 좋아한다는 것을 안지는 몇 년 되지 않았다. 마흔에 들어서면서 거의 십 년 동안 육아로 인해 잊고 지냈던 향수를 다시 입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브리엘 샤넬은 “여자는 마흔이 넘으면 그 누구도 젊지 않다. 하지만 나이와 상관없이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일 수 있다.”라고 말했는데, 아마도 그때 내가 더 이상 젊지 않으나 매력은 잃고 싶지 않은 마음에 향수를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없어도 그만인 사치품이라 할 수 있는 향수에 애 엄마가 돈을 쓰자니 왠지 모르는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서 가성비와 가심비를 신중하게 고려하여 선택한 향수가 바로 자몽향의 ‘프레쉬 헤스페리데스 오 드퍼퓸이다. 자몽과 레몬이 뒤섞인 싱그러운 청량감 덕분에 무거운 몸과 마음을 잠시나마 가볍게 만들어 출근길에 나설 수 있었다.         



  최근에 나는 「향기 탐색」을 읽다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향수를 직접 만들고 싶어 졌다. 곧바로 인터넷에서 향수 공방을 검색해보았다. 북촌 한옥 마을에 있는 ‘아로마인드’라는 곳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한옥 내부 인테리어도 취향 저격이었고, 원데이 클래스에 1인 참여가 가능하다는 점도 좋았다. 무엇보다도 50ml 본품 향수를 만드는 체험비가 5만 원인 것도 딱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이었다. 공교롭게도 향수를 만든 날은 내 딸의 생일날이었고 달리 말하자면 내가 아이를 출산한 날이기도 했다. 사실 아이를 낳고 보니 생일이 ‘나의 탄생일’보다 ‘나를 낳기 위해 엄마가 죽을 고비를 넘긴 날’이라는 의미로 더 느껴졌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내 생일에 엄마가 축하 전화를 하면 “오늘 나 낳느라 엄마가 고생 많았지 뭐. 고마워. 나 낳아줘서.”라고 무심한 듯 말하고선 맛난 거 사드시라고 적은 용돈이라도 챙겨 드리게 되었다. 아주 쪼금 철이 들어가고 있다고나 할까. 이런 의미로 그날 향수를 만든 것은 내 딸을 낳기 위해 죽을 고비를 넘긴 내 노고에 내가 주는 선물이었다.      

    

  총 1시간가량의 체험시간 중에 시향 하는 20분이 가장 재미있었다. 다음에 어떤 향을 맡게 될지 설레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조향사님이 시향 지를 건넬 때마다 조심스럽게 잡아서 신중하게 향을 맡았다. 워크시트에 각 향에 대한 느낌과 점수를 적어야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레몬 향에 대해서는 ‘향이 너무 강하고 살짝 레모네이드 발포제 향 같음’ 6점, 코코넛 펀치 향에 대해서는 ‘코코넛은 먹는 거 말고는 별로야’ 5점, 스모키 레더 향에 대해서는 ‘한의원 갔을 때 공기, 섹시한지 모르겠음’ 5점 등. 이렇게 30가지의 향기 베이스를 시향하고 나름의 메모를 하느라 아주 잠깐 피로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나만의 향수를 내가 직접 만든다는 창작의 기쁨이 더 커서 그 순간에 몰입할 수 있었다. 향기를 너무 많이 맡으면 후각도 피로해진다고 한다. 그러면 본래의 향을 제대로 맡을 수 없기에 이때는 자신의 살 냄새를 맡아서 코를 중화시키면 된다고 한다.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꿀 정보다. 그래서 나는 틈틈이 내 팔의 체취를 맡으며 새로운 향기를 시향 했다. 나와 인연이 될 향기를 고대하면서.   


  최종적으로 3가지 향료를 결정했다. 향수의 첫인상이라 할 수 있는 탑 노트는 상큼하면서도 따뜻한 ‘유자 향’으로, 향수를 뿌린 뒤 10분 정도 지나고 나서 올라오는 미들 노트는 산뜻하면서도 달콤한 ‘라일락 향’으로, 피부와 결합해서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는 베이스 노트는 잔잔한 꽃향기가 부드럽게 퍼지는 ‘우드 & 세이지 향’으로 했다. 처음에 나는 어떤 향수를 만들고 싶냐는 질문에 가을, 겨울에도 뿌릴 수 있는 따뜻한 시트러스 계열의 향수를 만들고 싶다고 답했다. 조향사님은 내 시향지의 높이를 조절하며 향의 조화로운 화음을 찾아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원하시는 향들을 아주 잘 선택하셨네요. 향도 좋고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선생님에게 칭찬을 들은 학생처럼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이날 나를 제외하고 20대인 듯 보이는 세 커플이 있었다. 외롭지는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에게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내 감각에 집중할 수 있어서 평온했다. 모두 약속이나 한 것처럼 왼쪽 가슴에 브랜드 마크가 찍힌 셔츠를 커플룩으로 입고 있었다. 풋풋하니 귀여웠다. 내 앞에 앉은 커플은 존댓말을 사용하면서 아직은 서로 알아가는 단계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젊은 여인은 남자 친구에게 계속 이런 식의 질문을 했다.     

   “저에게는 어떤 향이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어때요 이 향? 저에게 어울리는 것 같아요?”

   “향이 좀 이상하지 않아요? 맡아봐요. 괜찮아요?”     

 그녀는 왜 조향의 주도권을 그의 손에 맡긴 듯한 질문을 했을까? 자신이 정확히 어떤 향을 좋아하는지 몰라서였을까? 아니면 ‘당신이 좋으면 저도 다 좋아요’라는 마음이었을까? 어쨌든 돌아오는 그의 대답은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였다. 결국 조향사님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그녀는 영 자신의 향수에 확신이 없어 보였다.     


  나도 그랬다. 나에게 무슨 향이 잘 어울리는지 몰랐었다. 이십 대 중반, 화장품 가게에 진열된 아기자기한 향수병 모양에 이끌려 향에 상관없이 이 향수 저 향수를 뿌렸었다. 그런 와중에 나에게 맞지 않는 너무 강한 향기로 상대에게 불쾌감을 준 적이 있다. 한 번은 소개팅을 한 남자와 두 번째 데이트를 하던 날이었다. 예쁘게 보이고 싶은 나머지 그를 만나기 바로 직전에 향수를 생각 없이 여기저기 뿌린 것이다. 내가 그의 차에 타자마자 그가 창문을 내리며 이렇게 말했다. “향수가 너무 과하다. 살짝만 뿌리지.” 그때 그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들켜서 얼마나 창피하던지. 게다가 내가 얼마나 촌스러워 보이던지. 지금도 그 향수는 잊지 못한다. 빨간색의 ‘베르사체 레드 진 오 드 뚜왈렛’. 강한 플로럴 향이 나와는 잘 어울리지 않았던 향수였다.  


  여자에게 향수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바로 ‘샤넬 향수’와의 추억일 것이다. 틸라 마쎄오는 「샤넬 넘버 5」에서 여성이 샤넬 향수를 뿌리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젊은 여성들은 자신이 부유하고 세련되었다고 느끼기 위해 이 향수를 뿌린다. 부유하고 세련된 여성들은 섹시해지기 위해 뿌린다.” 일부 동의한다. 스물다섯 살 되던 해, 취업을 해서 돈을 1년 이상 벌고 있고 뭔가 이뤄낸 것 같은 자기도취에 빠져있을 때, 나는 처음으로 백화점 샤넬 매장에서 거금을 주고 ‘샤넬 코코 오 드퍼퓸’을 구입했다. 그 향수를 뿌리면 왠지 당당하고 더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성이 된 기분이 들었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서도 유독 칭찬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향수 하나 바꿨을 뿐인데 왜 그랬을까? 시쳇말로 단순히 ‘부내 뿜 뿜’이었던 건 아니었을까? 하지만 분명한 건 내면의 만족감을 위해 뿌린 건 아니었다는 거다. 그저 비싸고 고급스러워 보이니까, 샤넬이니까, 그리고 불안하고 가난한 영혼을 화려한 향기로 감춰주니까 뿌렸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직접 만든 나만의 향수는 달랐다. 내 향수에 대한 확신이 들었고 만족감이 컸다. 나에게 어울리는 향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문득 향수를 만들면서 알게 되었다. 후각 못지않게 필요한 감각은 ‘자기감’, 즉 자신을 이해하는 감각이라는 것을.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에서 정정엽은 ‘자기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자신에 대한 감각과 감정, 생각과 느낌을 뜻하는 용어는 자기감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며,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을 것인지 등 자신에 대한 전반적인 자각과 느낌이 포함된 개념이다.”        

  

  누구든 완벽한 자기감을 갖고 있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평생을 두고 가꾸어 나가야 할 ‘나’라는 감각일 테니까. 하지만 최소한 어느 정도의 건강한 자기감을 가지고 있다면 타인의 기호나 생각이 아닌 나만의 취향에 따른 물건의 제작 및 소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건강한 자기감을 갖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단 세 가지의 구성요소로 건강한 자기감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돈이 아니라 ‘만족감’, 인맥이 아니라 ‘나와 연대하는 관계’, 번듯한 학력이 아니라 ‘끊임없이 배우려는 자세’ 그러고 보니 모두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 내적인 태도와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매일 운동으로 건강한 몸을 만들 듯, 자신의 진실을 지속적으로 탐구해나가고 일상에서 끊임없이 음미할 거리를 찾는다면 건강한 자기감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자기감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성격이다. 성격에 따라 좋아하는 향기도 다르다는 것을 아는가? 오하니 조향사는 유튜브 채널 <향수 읽어주는 여자 하니 날다>에서 미국에 있는 후각·미각 치료 및 연구협회에서 한 「향기 선호도에 따른 성격유형 실험」 결과를 이야기해준다. 시트러스 향을 좋아하는 사람은 타고난 리더나 야심가 타입이란다. 일을 할 때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나는 타고난 리더는 아니지만 열정적이고 진취적인 성향인 것은 맞다. 반면에 장미향을 좋아하는 사람은 행동하기 전에 신중하고, 섬세하고 예민한 성향이라고 한다. 요즘에는 장미향도 괜찮게 느껴지고 있었는데 아마도 나이가 들면서 성격도 변하기 때문인 것 같다.  

출처 - 네이버 이미지

        

  아무튼 그날 나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 성격에도 어울리는 나만의 향기를 만든 기쁨에 향수를 손목, 팔, 목, 머리카락 등 여기저기에 뿌리고 향에 취해서 콧노래를 목청껏 부르며 운전을 했다. 그 순간만은 마리 앙투아네트도 부럽지 않았다. 예상했던 대로 나중에는 머리가 지끈거려서 창문을 열고 운전을 해야 했지만. 내 맞춤 향수는 「향기탐색」의 저자 셀리아 리틀턴의 향수처럼 하나의 노트에 서너 가지의 향이 들어가는 화려한 향수는 아니다. 하지만 내가 처음에 상상했던 대로 상큼하면서도 따뜻하고 은은하다. 첫 조향 치고는 나쁘지 않다.           

출처 - 네이버 이미지

  내 향수의 향을 음악에 비유하여 표현하자면 이렇다. 탑 노트는 <그대 내 품에>를 원곡자인 유재하가 부르는 버전처럼 맑고 순수하고 상쾌한 느낌이다. 미들 노트는 가수 김연우가 부르는 버전처럼 산뜻하고 따뜻하며 달달한 느낌이다. 마지막 베이스 노트는 이 노래를 하동균이 부르는 버전처럼 묵직하고 그윽하면서도 청량함을 잃지 않은 느낌이다. 이상하게도 내 향수를 몸에 뿌리자마자 유재하가 ‘별 헤~는 밤~이면’하고 부르는 <그대 내 품에>의 첫 소절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별 고민 없이 내가 만든 첫 향수에 ‘그대 내 품에’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향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감정에도 탑 노트, 미들 노트, 베이스 노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탑노트는 현재 스쳐 지나간 생각이고, 미들 노트는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베이스 노트는 그 감정의 진짜 원인, 즉 뿌리 깊은 고정관념이나 상처라고 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회의 중에 자신이 괜찮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고 하자. 그런데 동료들이 별다른 반응이 없으면 ‘뭐지? 이 사람들이 날 무시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순식간에 떠올라 곧 휘발될 것이다. 그다음으로 ‘서운함’ 또는 ‘원망스러움’ 더 나아가 ‘버림받은 느낌’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올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베이스 노트인 그 감정의 뿌리를 알아채려는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베이스 노트가 향기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것처럼 감정의 뿌리를 찾아내야 내 마음 밭을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부족한 사람이지’라는 잘못된 신념이나 부모로부터 충족되지 못한 ‘인정 욕구’ 일 수 있다. 썩은 것은 뽑아내 마주하고 과거의 상처 받은 나를 내가 안아주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나의 향기를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주디스 올로프는 「감정의 자유」에서 우리에게 이런 조언을 한다. “감정이 생기면 특히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면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누가 반응하고 있지? 나인가, 부모님인가?” 나는 감정의 베이스 노트를 음미하려고 노력하면서 ‘내가 잘못되었다’ 또는 ’ 내가 부족하다 ‘는 자기혐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여전히 타인의 비난을 받을까 두려울 때도 있고, 너무 뒤처질까 걱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금세 그 감정은 내가 아님을 알아차리고 나에게 기분을 전환시킬 거리를 제공한다. 이때 등장하는 무기가 바로 내 향수와 섞은 핸드크림이다. 상큼하고 은은한 유자향을 천천히 손에 입히며 나는 이렇게 말한다. “넌 정말 대단해. 그러니 아무 문제없을 거야.” 더 이상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쓰지 말자. 그 대신 나 자신에게 진실되고 친절하며 매력적인 사람이 되자. 나만의 향수로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유혹하자. 그러면 향기는 나를 포근히 안아주면서 내면 깊숙이 파고 들어와 당당한 나, 밝고 긍정적인 나를 끌어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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