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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차 Dec 15. 2020

향기의 으뜸, 언향을 리뉴얼해보자

 향기의 으뜸, 언향을 리뉴얼해보기로 했다     


  “지하실 냄새”, “행주 삶는 냄새”, “선을 넘는 냄새”

영화 「기생충」에서 박사장이 기택에게서 나는 불쾌한 냄새를 표현한 대사들이다. 이 말은 결국 기택의 열등감을 건드리고 피비린내 나는 파국으로 치닫게 한다. 그런데 만약 말에 냄새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몸에 아무리 럭셔리한 나치 향을 뿌린 들 말에서 악취가 풍긴다면 향수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상대를 무시하는 말투에서 나는 냄새가 역겨운 냄새였다면 이를 바로 알아차리고 입을 다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랬더라면 박사장은 최소한 자신의 목숨은 건질 수 있지 않았을까. 기택의 경우에는, 이런 기분 나쁜 말을 들었을 때, 자신의 기분은 남들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책임지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더라면. “당신의 동의 없이는 아무도 당신을 열등감에 빠지도록 할 수 없다.”라는 엘레나 루즈벨트의 명언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었다면. 그래서 분노가 아닌 배려를 선택해서 차라리 냄새를 없애는 방법을 연구했더라면. 묵묵히 기사 일을 성실하게 해서 볕이 잘 드는 집으로 이사하겠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품었다면. 그랬더라면 최소한 끔찍한 실수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사실 향기의 으뜸은 말의 향기다. 고운 말의 향기를 지닌 사람 곁에 가면 항상 밝은 에너지가 새어 나온다. 향기와 함께 행복 바이러스도 퍼져나가 주변 사람들도 덩달아 행복해진다. 그들은 달변가라기보다는 달청가에 가깝다. 그냥 잘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왜곡해서 듣지 않는다.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적당한 듣기,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기에 말하는 이가 스스로 평정심을 찾고 해답을 찾아가도록 해준다. 대학시절, 반 지하에서 자취하던 내 친구에게서도 항상 특유의 습한 지하실 냄새가 났었다. 내가 과제를 하느라 그 친구 집에 들렀다가 도서관에 가면 다른 친구들이 모두 그 친구 집에 있다가 왔는지를 알아차릴 정도였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그 친구를 따르고 좋아했다. 느리면서도 편안한 말투, 다 들어주고 나서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힘내.”라는 단 몇 마디로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주던 따뜻한 말씨. 그 친구 말에서 나는 향기가 너무 좋아서 몸이나 옷에서 나는 지하실 냄새 따위는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그렇다. 그 사람 알아버리면 그 사람 말의 향기를 알아버리면 그 사람이 무슨 냄새를 풍기느냐는 상관없는 것이다.   

  



  당신은 살면서 한 번이라도 자신의 말에서 어떤 향기가 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자신의 언어 특히, 모국어 능력에 이상이 없는지 의심해본 적은 없는가? 나는 향기 세러피로 내 마음을 셀프컨트롤하는 연습을 하면서 말하기 능력과 듣기 능력이 포함된 내 언향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의 향기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향을 내 몸과 주변에 입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서 만들어진 자연스러운 냄새를 내가 직접 주위에 분사하는 것이다. 즉 나 자체가 향의 발원체로서 인센스 스틱이고, 방향제이고, 비누고, 향수가 되는 것이다. 언향은 어떤 향기보다 강력하고 오래 지속되며 숙성될수록 더 좋은 향을 갖게 되는 가성비 갑의 향기다. 물론 잘못 관리하면 주변 사람들을 모두 도망가게 할 만큼 악취를 풍길 수도 있지만.

 

  나는 중년이 된 이 시점에서 내 말하기 및 듣기 능력을 점검하고 리뉴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살아가야 하기에 그에 걸맞은 성숙한 대화 기술을 갖추고 싶기 때문이다. 우선 「말센스」의 저자가 자신의 대화 진행 방법에 문제점이 있는지 친한 친구에게 피드백을 요청했듯이, 나도 용기를 냈다. 직언을 잘하는 나의 친한 친구에게 내 말하기 및 듣기 능력에 대해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어떠한 비판도 수용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으니 객관적으로 피드백해달라는 말을 덧붙여서.   

   

  결과는 처참했다. “자기중심적으로 말하고 듣고 해석하는 편이 강하지. 자신의 말에 공감해달라는 의존성도 강한 편이고, 반대되는 의견이나 비판하는 말을 힘들어하고. 말하기 능력도 듣기 능력도 점수로 치자면 별로 좋지 않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마음이 아팠다. 나쁜 말 습관을 오랜 시간 동안 달고 살아온 나 자신이 한심해서. 그런 말 습관을 지니고 누군가를 가르치는 자리에 있다는 게 부끄러워서. 친구는 나를 위로하려는 듯 이렇게 마무리를 지었다. “그래도 너는 유연하고 열전도율이 높아서 금세 상대방에게 공감해주고 네 잘못도 고치려고 노력하잖아. 그거 아주 큰 장점이다. 나 봐라. 나는 진심을 배제하고 공감하는 척만 하잖아. 나는 고칠게 더 많다.”     


  그렇다. 우리는 고칠 게 참 많은 말 습관을 지니고 있다. 갑자기 최근에 내가 말실수를 한 상황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가족 중에 안 좋은 일이 있는 친구의 근심을 들어주다가 위로한답시고 했던 말.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뿐이야. 네 책임이 아니야.” 친한 선생님이 동료와의 갈등으로 인한 괴로움을 토로하는데 조언한답시고 했던 말. “10명 중에 7명은 나에게 무관심하고 2명은 나를 싫어하고 1명만 나를 좋아한대요. 그러니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겠거니 하고 신경 쓰지 마세요.” 하지 말았어야 했다. 해답은 이미 그들 마음속에 있었을 것이다. 그 순간 그들이 바란 건 따뜻한 눈빛과 들어주는 넉넉한 마음 그리고 침묵이었을 것이다. 「침묵이라는 무기」를 쓴 코르넬리아 토프는 말이 많은 것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 쉴 새 없이 떠드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 말을 전달하고 싶은 욕망, 인정 욕구가 너무도 강해 상대가 자기 말을    듣고 있는지는 관심조차 없다."

 지금까지 나의 인정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TMI와 불필요한 말들로 지인들에게 말 못 할 피로감을  안겨주었을까. 생각하면 부끄럽고 미안하다.      


  그래서 도서관과 서점으로 향했다. 말하기와 관련된 책을 10권 정도 읽다 보니 어렴풋이 보였다. 잘못된 말버릇을 고치기 위해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은 말하고 싶은 욕구를 참는 것! 여전히 쉽지 않다. 입을 닫는 것보다 여는 것에 익숙한 것이다. 하지만 매번 내가 쌓아놓은 말 쓰레기 더미를 보며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시도해 보고 있는 것이 바로 ‘질문’이다. 세 명 이상이 모였으면 마음속으로 ‘이 토크쇼의  MC는 나’라고 되뇐다. 그리고 단 둘이 대화를 나눌 때는 ‘나는 이 사람의 인터뷰어다’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면 열 마디 할 거가 다섯 마디로 준다. 달리 말하면 내가 말실수를 할 확률도 낮아지는 것이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한 기법이 ‘칭찬’이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잘 되지 않는 게 타인의 장점을 그때그때 찾아내는 것이다. 칭찬이 쉬운 듯 하지만 어려운 이유는 선행 조건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내 안이 평온하고 행복한 에너지로 채워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내가 나를 시시때때로 칭찬해야 한다. 내 안에 있는 것만이 타인에게 줄 수 있다고 하지 않은가. 내가 나에게 했던 칭찬 중에서 상대방에게 어울리는 칭찬을 꺼내어 주는 것이다. 아무리 줘도 줄지 않는 게 마음속 칭찬 곳간이다. 이때 한 가지 주의할 점은 형식적인 칭찬이나 너무 과한 칭찬이다. 오스카 와일드는 “칭찬은 향수와 같다. 향을 내되 코를 찔러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마음에서 우러난 자연스러운 칭찬이 은은하게 오래 기억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런데 듣기 능력에 따라, 언향의 깊이는 달라진다. 나는 듣기에 더 취약했다. 있는 그대로 듣지 못하고 자꾸 낡고 고장 난 번역기를 돌려 내 멋대로 해석했다. 얼마 전 어떤 부장님이 우리 학년에서 제출한 결과물에 그려진 달팽이를 교장 선생님이 마음에 들어하신다며 “누가 그린 거예요?”라고 물으셨다. 나는 잠깐 멈칫하다가 “우리 4반 샘이 그린 거예요. 제가 그려달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문구는 제가 만들었어요.”라고 말해버렸다. 사실 말이 목울대를 치고 올라올 때 느꼈다. 인정 욕구가 발동한다는 것을. 그 부장님이 말을 꺼낼 때 나는 ‘문구가 참신하다’는 칭찬을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내 예상과는 다른 질문을 받자 순간 ‘달팽이만 괜찮고 제목은 별로였다는 건가?’라는 비교와 판단을 한 것이다. 그래서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될 나의 소임을 밝히고 만 것이다. 


         

  친구에게 이 부끄러운 상황을 얘기했다.

  “나 유치했지?” 

  “어, 솔직히 말해서 좀 유치했다. 딱 첫 문장만 말하고 끝냈으면 멋졌을 텐데.”

  인정한다. 변명하자면 그날 나는 조금은 지쳐있었다. 그럼에도 긍정의 말들로 내 칭찬 곳간을 가득 채워 넣었어야 하는데 셀프 칭찬 주입을 깜빡한 것이다. 그런 날 유독 듣기 평가의 오류를 범한다. 듣기 전에 잘못된 예상을 하고, 들은 후에 섣부른 판단을 한다. 이때 말실수를 하지 않는 방법은 침묵과 칭찬이다. 타인과의 말은 줄이고 나와의 대화는 늘리는 것이다. 내가 했던 사소한 일들을 찾아내서 계속 칭찬하기. ‘내가 제일 예뻐’라는 창작 동요를 어깨를 흔들면서 부르기. 이 두 가지만으로도 어느새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난다.     


  새삼 진주에게서 듣기의 기술을 배운다. 건강한 조개는 자신의 부드러운 살에 거친 모래가 박히면 이를 무시하거나 억지로 빼지 않는다. 제 몸 안에서 nacre(진주층)라는 생명의 즙을 짜내어 모래를 감싸고 감싼다. 이렇게 반복해서 덮다보면 상처는 아물고, 괴로움의 실체였던 모래는 품위 있는 진주로 변모한다. 우리의 마음에도 매일 거친 말이 박힌다. 그런데 말은 상대방이 했지만 이미 들은 그 말을 어떻게 쓸지는 내 손에 달려있다. 예상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있는 사실 그대로 듣는 노력이 첫째 중요하다. 그다음으로 ‘괜찮아’, ‘별 일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 ‘다음부터 조심하자’,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은 아니잖아.’, ‘그 사람에게 고마운 점도 참 많지’, ‘그래도 힘내자, 힘!’, ‘그래도 나는 나는 예뻐’ 등 계속 회복의 말들로 그 거친 말을 감싸는 것이다. 이처럼 ‘받아들임’과 ‘자기치유’라는 듣기의 기술을 갈고닦다 보면 우리의 마음에 박힌 아픈 말들은 빛과 향기를 지닌 말로 서서히 변화될 것이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요즘 나는 모국어를 다시 배우고 있다. 내가 들어보지 못해서 아이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하지 못한 말들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국민 육아멘토’인 오은영 박사의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를 교본처럼 보고 있다. 이 책에는 이 말이 첫 번째 육아 회화로 등장한다. 

  "네가 내 아이라서 진짜 행복해"

  사실 읽자마자 궁상맞게 눈물이 났다. 나도 너무 듣고 싶었던 말인데 듣지 못한 원망스러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내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 말해주지 못한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어찌 됐건 이제 나는 이 말을 달고 산다. 그리고 응용하기까지 한다. 나에게는 “네가 나라서 진짜 행복해”, 딸아이에게는 “네가 내 딸이라서 우주만큼 행복해”, 우리 반 말썽쟁이 아이에게는 “너 덕분에 선생님은 매일 행복해. 고마워”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모두 행복해지는 마법 같은 문장이다. 

        

  말의 향기를 리뉴얼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훈습이 아닌가 한다. 훈습이란 향내음이 나면 저절로 향냄새가 몸에 배는 것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나도 모르게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스승이라 부를 수 있는 분들의 깨달음을 매일 읽고 듣고, 고운 말을 쓰는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어느덧 우리 안에 아름다운 말이 차곡차곡 쌓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최종적으로 마음도 긍정적이고 평온한 상태에 이르게 되지 않을까. 그런데 우리는 지금 예측 불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언제든 우리의 몸과 마음의 평화가 깨져서 외국어보다 못한 듣기와 말하기 수준으로 떨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우리가 훈습을 통한 말공부를 멈추지 않는다면 어제보다 오늘 더 나은 말투를 갖게 될 거라는 것. 나도 나의 스승들처럼 마음공부 못지않게 말공부에도 정진하며 살련다. 그래서 어떤 자리에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안에서부터 우러나는 말의 향기를 풍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그 향기로 타인의 오점에서 나는 냄새마저 보듬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기품 있고 넉넉한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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