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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차 Nov 07. 2020

게릴라식 향기 세라피 즐기기

  직장에서 게릴라식 향기 세러피 즐기기 

    

  향기는 직장에서도 셀프컨트롤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보이지 않는 무기’다. 이제 더는 열정과 자비는 전염시켜도 못된 감정은 전염시키려 하지 않는다. 직장에서 그날의 저조한 기분이나 갑작스럽게 찾아든 부정적인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여 낭패를 본 적이 있지 않은가? ‘나 지금 기분 완전 별로거든!’이라는 바이러스를 팍팍 퍼뜨리며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서는 돌아서서 ‘아, 그때 조금만 참았더라면’하고 후회한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기분에 대해서도 권리가 있다. 레몬트리의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에 이런 글이 있다. “다른 사람은 당신의 기분을 모르고 지나갈 권리가 있다. 당신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모르고 지나칠 권리가 있다.” 안 그래도 우리는 변수가 많은 직장에서 긴장과 불안을 어느 정도 내재하고 생활한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에게 작은 칭찬이나 유머를 건네기는커녕 알 권리도 없는 내 기분을 투척한다면 그게 바로 민폐이지 않을까. 따라서 관계나 일을 그르치기 전에 의도적으로 내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한 나만의 비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교실 창가 

  나의 기분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찾는 첫 번째 향기는 아침 공기와 나뭇잎의 냄새다. 내가 출근해서 가방을 내려놓고 컴퓨터를 켜자마자 하는 일은 바로 창문 열기다. 나는 교실과 복도의 창문들을 활짝 열며 상쾌하고 담백한 공기를 코로 깊게 들이마신다. 그러면 남아있던 피로감이 쑥 내려가면서 머리까지 맑아진다. 요즘은 창가에 놀러 온 나뭇잎들의 냄새를 맡으며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나뭇잎들아, 우리 교실에 놀러 와 줘서 고마워. 오늘도 우리 평온하게 하루를 살아가자. 아이들과의 수업도 즐겁게 들어줘.” 새벽이슬을 머금은 청초한 향기는 내 안에 잠들어있던 청초한 향기를 끌어낸다. 오늘도 어제보다 조금은 더 맑은 사람이 되고 싶어 진다.     



    

  두 번째 향기 세러피의 주인공은 비누 냄새다. 아이들이 모두 떠난 빈 교실을 청소하고 난 뒤 나는 곧바로 마음의 비움과 채움의 시간을 갖는다. 그때는 아이들에게 온 힘을 쏟아부었던 만큼 에너지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상태다. 나를 돌볼 시간인 것이다. 나는 새끼손가락 길이보다 더 작고 얇은 비누 조각 하나를 들고 화장실로 간다. 그리고는 그 작은 몸에 물을 묻혀 손바닥 위에 놓고 천천히 두 손을 비비며 이렇게 말을 한다. “오늘도 아이들과 별일 없이 잘 지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통제하려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내려놓을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불필요한 지적의 말을 알아차리고 바로 입을 다물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등. 영화 「중경상림」에서 양조위가 실연 후 닳아빠진 비누와 대화를 나누던 장면을 기억하는가? “그녀가 떠났어도 넌 자신을 잃지 마.”라고 중얼거리던 그 장면을. 어쩌면 내가 비누를 녹이며 하는 말들이 이처럼 나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나를 위로하고 칭찬해주는 말. 물론 우주의 신에게 하는 말이 대부분이지만.   

  

  몇 달 전 아가씨가 딸의 여드름에 효과가 있다며 다이얼 골드 비누를 24개나 보내왔었다. 너무나 오랜만에 맡아보는 향인데도 그 익숙한 청량함에 깜짝 놀랐다. 순간 부지런쟁이 우리 엄마가 항상 얼룩 하나 없이 말끔하게 청소해 놓은 욕실에서 나던 깨끗한 비누향이 떠올랐다.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서 이 다이얼 비누를 교실에서 방향제 겸 마음 안정제로 사용하기로 했다. 언젠가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본 기억이 있어서 감자칼로 비누를 쓱쓱 깎아내서 쓰지 않는 라탄 화분 커버에 담았다.   

   

  지금 그 비누 방향제는 교실 속 내 책상 바로 뒤쪽에 있다. 우리 아이들이 수학책이나 받아쓰기 채점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가 냄새를 맡으라는 의도다. 유독 “아 어쩌지? 다 맞아야 할 텐데.”라며 긴장을 보이는 아이들이 있다. 그러면 비누냄새를 맡으라고 한다. 긴장을 늦추고 기분도 좋아지라고. 코를 박고 킁킁대며 냄새에 집중하느라 잠깐 동안은 평온해 보인다. 요즘은 이 비누조각이 다 녹을 때까지 ‘감사합니다’를 말하며 손을 씻으라고 한다. 몇몇의 아이들은 “8번을 말했다”, “15번을 말했다”라며 서로 더 많이 말했다고 자랑을 한다. 그리고는 물 묻은 손을 내 코가 있는 위치의 마스크에 들이대며 “깨끗하죠? 냄새 좋죠?”한다. 아이 손에서 나는 다이얼 비누향은 더 순수하고 향긋한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있다. 덩달아 내 기분까지 좋아진다. 



  

  세 번째로 찾는 향기는 커피향이다. 우리의 예민한 후각은 특정한 화학물질을 감지할 수 있어서 수백 가지 물질이 섞여 있는 커피 향기 속에서도 로즈옥사이드 이성질체를 감지하고 우리 뇌를 행복하게 해준다고 한다. 이 어려운 이름의 물질이 뭔지는 모르지만 분명 기분을 좋게 해주는 것은 확실하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내게는 커피를 내려 마시는 일이 10분 이내의 짧은 명상과도 같다. 먼저 다소 느린 걸음으로 유리로 된 커피포트에 정수기물을 받아와서 물을 끓인다. 이어서 향이 좋은 예가체프나 과테말라 안티구아, 코케허니와 같은 원두를 그날 기분에 따라 고르고, 수동 커피 그라인더에 한 컵 반을 담아 천천히 간다. 물 끓는 소리와 원두가 갈리는 소리가 동시에 조용한 공간을 가득 채운다. 그 순간 나는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자신의 몸이 뜨겁게 데워지는 고통과 몸이 잘게 부서지는 고통을 참는 것을 고스란히 느낀다. 그다음에 드리퍼에 적당히 갈린 원두를 담고 핸드드립 주전자에 끓는 물을 담아 천천히 달팽이집을 그리면서 숫자 열까지 세 번을 세어 커피를 내린다. 마지막으로 물과 커피 원두의 고통과 기쁨의 결합체를 마시면서 자기희생의 의미를 다시 되새긴다. 「나를 바꾸면 모든 것이 변한다」에서 제임스 알렌은 다음과 같이 자기희생을 정의했다.   

     

  “만약 성공하기를 바란다면 자신의 욕망, 이기적인 생각, 변덕스러운 감정을 버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이 작업을 ‘자기희생’이라고도 부르는데 이것을 ‘자신을 없애 버리는 행위’라고 해석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자기희생이란 원래 마음속에 있는 나쁜 것을 없애고 좋은 것을 채우는 등 자신의 모든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작업이다. 그것은 기쁨에 가득 찬, 매우 건설적인 행위다.”

     

  그렇다면 내가 오후에 검은 눈물을 내리고 마시는 행위는 내 안에 부정적인 기운을 씻어내고 밝고 활기찬 에너지를 채우는 자기희생의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오후에는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행정업무를 주로 하게 되는데 이때 마시는 커피는 원기회복제이자 집중력 향상제이다. 카페인의 효능은 익히 알고 있지만 최낙헌의 「과학으로 풀어본 커피향의 비밀」에서 언급한 카페인의 효능에는 귀가 솔깃해진다. 실험 심리학 저널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카페인 성분이 실제로 문장의 문법 실수를 잡아내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주어-동사 일치, 동사 시제 등의 실수를 잡아내는 능력을 향상시켜 문장 교열능력이 좋아진다고 한다. 분명 커피 한 잔을 내려 마신 뒤 행복한 마음으로 문서 작업을 하면 문장을 실수 없이 쉽게 만들어내는 것 같다. 그게 기분 탓인지 카페인 탓인지는 알 수 없지만.   

   

  커피향은 나눌수록 즐거움이 배가 된다. 정성스레 커피를 내려 첫 잔을 동료에게 주는 마음은 그 자체로 기쁨이다.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 여주인공이 커피를 맛있게 내리기 위해 ‘코피 루왁’이라고 마법의 주문을 걸며 커피를 내리지 않는가. 나는 대신 ‘운이 술술 풀린다’라고 마음속으로 주문을 건다. 맛이나 향에 있어서 더 욕심을 내지는 않는다. 다만 그 사람을 위해 약간의 운을 시나몬 파우더처럼 뿌려주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나 자신을 위해 혹은 고마운 사람들을 위해 커피 그라인더를 돌린다. 

     

  로버트 존슨의 「내 그림자에게 말걸기」에는 이런 우화가 나온다. 중세시대에 한 사람이 외바퀴 손수레를 밀며 가고 있는 노동자 2명을 보고 뭘 하느냐고 물었다. 첫 번째 노동자는 “보면 몰라요? 손수레를 밀고 있잖아요.” 또 다른 노동자는 “보면 몰라요? 하느님의 일을 수행하는 중이잖아요. 샤르트르 성당을 짓고 있다고요.”라고 대답했다. 두 번째 노동자는 분명 이 일을 음미하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건설적인 행위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커피를 가는 행위를 매 순간 음미하려고 한다. 누군가 전동 커피 그라인더를 쓰지 왜 힘들게 그걸 돌리고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보면 몰라요? 내 안에 부정적인 감정들을 곱게 갈아 깨끗한 마음의 집을 짓고 있잖아요.”   

   

  커피 방향제를 직접 만들어 향기를 선물하는 소소한 즐거움도 누려보길 추천한다. 커피 여과지에 곱게 간 원두를 넣어 귀퉁이를 접고 윗부분 중앙에 펀치로 구멍을 뚫어 마끈을 길게 해서 매듭을 지으면 된다. 이때 크라프트 견출지에 책에서 찾은 좋은 문장을 적어 붙이고 예쁜 스티커까지 더하면 완성! 처음에는 커피향에 행복하고 그다음에는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문장을 고르며 평온해지고, 그 소소한 선물을 받은 사람이 “아, 커피향 좋다”라며 미소를 지을 때 또 행복해진다. 적은 노력과 금액으로 커다란 기쁨과 평온함까지 얻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가성비 좋은 향기 세러피가 있을까.  

       


  

  마지막으로 셀프컨트롤을 위한 향기는 말씀 향기이다. 어느 날 나는 동료들과의 회의를 소집해 놓고선 회의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든 적이 있다. 구차한 변명 같지만 이유는 이렇다. 회의 시작 40분 전에 회의 자료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예기치 않은 전화를 두 통화나 받게 되었다. 아이 담임선생님과의 상담 전화는 깜빡하고 있었다. 통화는 거의 회의 시작 10분 전에 끝났다. 조급한 마음 상태와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았다는 불안감이 감도는 상황에서 회의는 시작되었다. 나는 다소 예민해있었는지 동료의 의견 제안에 “나를 그렇게 공격적으로 몰지 말고......”라고 말을 해버렸다. 평상시 같으면 아무렇지 않게 수용했을 의견에 과민반응을 한 것이다. 회의를 계속 진행했다가는 다른 사람들 기분마저도 망치게 할까 봐 조금 피곤하니 쉬었다가 다시 했으면 좋겠다고 대충 핑계를 대고 회의를 1시간 뒤로 연기했다. 똥개 훈련을 시키는 것도 아니고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었지만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     

 

  혼자 남은 교실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 미숙함, 도중에 전화를 끊지 못한 우유부단함, 회의 시간을 연기하지 않고 10분 안에 자료를 다 완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 오만함을 자책했다. 그리고 말실수로 인한 후회가 밀려왔다. 위로를 받고자 다른 동료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그녀는 오히려 현재 자신의 힘든 점을 털어놓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고민에 몰입하여 듣다 보니 내 슬픔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전화를 끊으며 그녀가 내게 “고마워. 자기도 힘들 텐데 내 고민 들어줘서.”라고 말했다. 내가 그녀를 위해 좋은 일을 한 것 같아 마음이 뿌듯했다.     

 

  이렇게 내 마음이 안정된 이유는 켈리 맥고니걸의 「스트레스의 힘」에서 언급된 펜실베이니아대학교 경영대학원의 와튼 스쿨의 연구원들이 한 실험에서 찾을 수 있었다. 직장에서 시간이 충분치 않다는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으로 자유 시간을 얻는 것보다 다른 사람을 도울 때 시간이 부족하다는 기분이 줄어들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다른 사람을 도와줌으로써 자신감이 생겨 자신이 능력 있고 유용하다는 느낌을 받아 힘든 일에 대해 이전과는 다르게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 전화 한 통화로 나의 효용 가치를 느끼고 나서 그다음으로 책꽂이에 꽂힌 법정 스님의 「좋은 말씀」을 꺼내 읽었다. 눈으로 읽고 입으로 소리 내어 읽고 멈추어서 마음으로 한 번 더 읽었다. 후다닥 읽어낼 책이 아니기에 좋은 향기를 깊게 들이마시듯 명언을 마음에 새기듯 그렇게 천천히 읽었다. 특히 이 문장은 읽고 또 읽고 내 책상 옆 미니 달력에 적어두기까지 했다. 매일 말조심을 하겠다는 의지를 담아서.     


“진짜 우리가 해야 할 말은 어떤 말인가? 해야 할 말은 나 자신에게 덕이 되고, 또 듣는 상대방에게도 덕이 되며, 그 말을 전해 들은 제삼자에게도 덕이 되는 말입니다.”      

  

  말씀 향기 덕분에 마음이 서서히 차분해졌다. 마음이 평온해지면 두뇌에서는 일종의 아편이라고 할 수 있는 진통제 엔도르핀이 분비된다고 한다. 세로토닌의 양도 늘어나서 우울함을 없애주며 일상의 자극들을 견딜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다시 시작된 회의에서 1시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아주 유쾌하게 서로의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 그 이후 중요한 회의 전에는 무조건 법정 스님의 「좋은 말씀」을 펴서 음미한다. 내 감정을 돌보기 위해. 다른 사람은 내 기분을 모르고 지나갈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해. 진정으로 평온한 마음속에는 이기적인 생각은커녕 후회와 자책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이제 불안을 잠재우고 삶 속으로 자신감 있게 뛰어들어보자. 어떻게? 나만의 셀프컨트롤 전용 향기를 게릴라식으로 음미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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