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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차 Nov 02. 2020

향기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았다

 향은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기억을 일깨우며, 행동을 조정한다. 은밀하게 스며들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 로베르트 뮐러-그뮈노브의 「마음을 움직이는 향기의 힘」 中에서 -  


당신은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자신만의 기호품을 가지고 있는가? 다운된 기분을 순간적으로 끌어올리거나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을 일시에 가라앉히는 특별한 물건이 있는가? 일단 술과 담배는 제외시키자. 마음에는 유익할지언정 몸에는 해로우니까. 나에게는 아침에는 상쾌함, 오후에는 차분함, 저녁에는 평온함을 느끼게 해주는 물건들이 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냄새를 잘 맡았다. 제사가 많아 두 달에 한 번꼴로 여섯 분의 고모와 고모부를 만나게 되었는데, 집에 들어서기 전부터 누가 오셨는지 금방 눈치를 챘다. 심지어 학교에서는 눈을 감고도 어떤 친구인지 가려낼 수 있었다. 고유의 체취뿐만 아니라 친구들의 옷에서 나는 섬유 유연제 냄새를 구별했던 것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선천적으로 냄새를 잘 맡는다고는 하지만 그중에서도 내 코는 민감한 편에 들어간다. 때때로 기분이 냄새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냄새를 감정관리에 적극 활용하기에 이르렀다. 가성비와 가심비까지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사실 요즘 우리는 마스크 덕분에 싫든 좋든 다양한 냄새로부터 차단된 상태다. 그 어느 때보다 후각이 존재감을 잃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초기 증상으로 일시적으로 냄새를 맡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후각을 영구적으로 상실하는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다는 기사를 접하고는 코의 가치에 대해 새삼 생각해 보게 되었다. 냄새로 인한 소소한 즐거움을 잃어버린다면 어떨지 상상이 가는가? 알랭 드 보통은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에서 박탈은 재빨리 우리를 음미의 과정으로 몰아간다고 했다. 그래서 후각의 기능에 감사하며 후각을 더 적극적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환경을 내가 좋아하는 향기로 채우고 매 순간 음미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시카고 로욜라 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브라이언트는 음미란 지금까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던, 주변의 사물, 사람 등을 되새기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즐기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음미의 목적은 어떤 순간을 만끽할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을 적극적으로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냄새에서 적극적으로 즐거움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우리가 의식하지 않은 순간에 숨을 쉴 때마다 코로 들어오는 수백만 개의 냄새 입자들 중에서 의도적으로 즐거움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어쨌거나 잠깐이라도 멈추고 온전히 그 냄새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번거롭게 느껴진다고?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어떤 향기 덕분에 좀 전에 누구 때문에 화난 기분을 누그러뜨린다면? 축 쳐진 기분이 순간 좋은 쪽으로 바뀐다면? 불쾌한 감정을 표출하는 것을 미리 막을 수 있다면? 그럼 한 번 노력해볼 만하지 않는가.      


  후각을 통한 음미가 매력적인 이유는 다른 어떤 감각보다 후각이 불러일으키는 기억이 가장 감정적이라는 데 있다. A. L. 케네디는 「살갗 아래」에서 “어떤 특정한 냄새들은 단순히 동물적인 침범이 아니라, 그 냄새들은 시간 여행이며 기쁨이고, 고향이자 비통함이다.”라고 말했다. 당신은 어떤 냄새로 인해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최근에 한 가지 냄새로 다양한 기억들을 떠올리는 경험을 했다. 요즘 우리 일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제품 중에 손 소독제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손 소독을 할 때마다 소주를 손에 들이붓는 느낌이 든다. 에탄올 향이 코를 강하게 자극하는 것이다. 처음에 그 향을 맡고서는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 때 처음으로 소주 냄새를 맡았던 기억이 확 올라왔다. 아마도 그때 내가 “병원 냄새 같아요”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리고는 내 차례가 되어 이호섭의 <세월이 가면>을 목이 터져라 부른 뒤 부끄러운 마음에 원샷을 했던 것 같다. 곧바로 속이 울렁거려서 화장실로 냅다 뛰어갔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아! 소주 그 자체의 향은 왜 그렇게 고약하던지. 지금도 커피를 타든 맥주와 섞든 소주의 본래의 향을 살짝 눌러야 비로소 후각이 그 소주 같지 않은 소주를 마시라고 허락한다.     

 

  손 소독제가 가져다준 또 다른 시간 여행은 바로 아빠에 대한 기억이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에서 주인공 폴은 프루스트 부인이 준 홍차와 마들렌을 먹고 아빠에 대한 잘못된 기억을 바로잡는다. 나 또한 손 소독제 속 알코올 냄새로 꽤 괜찮은 기억을 낚아 아빠의 부드러운 면을 떠올렸다. 항상 무섭고 무뚝뚝하던 아빠가 유일하게 자고 있는 내 얼굴에 뽀뽀를 하며 건네던 애정 어린 말들, “우리 이쁜 딸, 잘 자고 있는가?” 그때 나던 냄새가 바로 진한 술 냄새였다. 자다가 기습 뽀뽀를 받으면 짜증이 났었지만 아빠의 웃음 섞인 목소리와 화가 사라진 듯 편안해진 마음이 느껴져서 ‘아빠에게도 이런 따뜻한 면이 있구나!’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가장으로서의 무거운 책임감 때문에 강한 척하셨지만 아빠는 속이 참 여리고 정이 많은 분이었음을 알겠다. 술은 무의식을 보여주고 사람을 솔직하게 해 주지 않은가. 그 깊은 속정을 제대로 표현도 못 하시고 오히려 자꾸 반대로 표현해서 자식들과 멀어지게 되었을 때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남들에게는 별스러울 게 없는 손 소독제 냄새가 눈물까지 쏟게 하며 나를 철들게 한다. 


  이처럼 감정 및 기억과 깊은 관련이 있는 후각은 가장 늦게까지 젊음을 유지한다는 매력도 있다. 시력과 청력 등 다른 감각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그 기능이 약화되어 돋보기나 보청기 등 보조 기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후각 세포는 24일을 주기로 다시 만들어진다고 한다. 24일마다 새로운 후각을 가질 수 있다니 정말 신기하고도 감사할 일이지 않은가. 게다가 인간의 후각은 50만 개의 서로 다른 냄새를 구분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 대단하고 기특하고 젊기까지 한 감각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다면 후각에 대한 모독이 아니겠는가. 이제부터 내가 향기로 어떻게 내 감정과 행동을 조정하는지 그 소소한 지혜들을 말해보고자 한다.      

  



  || 하루의 시작과 끝을 향기와 함께 ||


  알랭 드 보통은 「소소한 즐거움」에서 심리적 또는 영적으로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소유물을 찾는 데 정말로 집중한다면 훌륭한 소비지상주의가 생겨날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옷이나 액세서리 같은 외면을 꾸미는 물건을 구입하는 데서 마음의 위안을 삼지 않는다. 대신 내면을 가꾸는 물건, 즉 심리적 평온함을 가져다주는 향기 제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알랭 드 보통의 말을 빌리자면 훌륭한 소비를 할 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한 동안 나는 집에서 원인 모를 악취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가뜩이나 냄새에 예민하니 가족 중에 유독 나만 참기 힘들어했다.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파는 심정으로 탐색견처럼 코를 킁킁대며 냄새의 발원처를 찾아다녔다. 결국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베란다 화단의 흙을 거둬내고, 보일러와 세탁실이 있는 베란다 외벽의 곰팡이를 제거했다. 음습한 창고와 베란다 수납장에 쌓여있던 물건들도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주방이며 화장실 하수구까지 청소하고 나니 화가 나있던 코에 평화가 찾아왔다. 사실 정리해야지 하면서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새집으로 이사할 때까지만 참자며 애써 외면해왔다. 그때는 무기력증으로 집에만 오면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만 싶었던 시절이기도 했다. 지저분한 곳은 가리면 그만이었다. 못 본 척 눈을 감으면 되었다. 하지만 냄새만은 내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코를 막는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큰 맘을 먹고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그래, 하루를 살다 나가더라도 청정한 공기 속에서 지내자!’    

  

  그렇게 나는 어이없게도 예민한 코 덕분에 무기력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게다가 예전보다는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더 부지런해졌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집에 향기를 입히기 시작했다. 오래되고 낡은 집이지만 집에서 좋은 향이 나니 집안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싶어 졌다. 간혹 위층 베란다에서 키우는 강아지의 오물 냄새로 불쾌했지만 향초를 피워 층간 냄새 문제를 조용히 해결했다. 꽃이 가득한 정원을 거닐며 사는 삶에 대한 로망은 잉글리시 가든 오일 디퓨저로 대신 해소했다.      


  이처럼 처음에는 향을 단순하게 악취를 제거하고 향기 인테리어 정도로 사용했다. 하지만 향이 주는 행복을 소소하게 누리다 보니 다른 방법으로도 향기를 즐기고 싶어 졌다. 향은 공간에 성격을 부여한다고 하는데 나는 집에서 갖는 나만의 시간에 그에 어울리는 향을 더하고 싶었다. 어쩌면 나에게 향은 온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알리는 시작종과도 같다. 당신은 하루에 몇 번이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온전히 머무르는가? 나는 잠깐이라도 복잡한 생각들을 멈추고 지금 이 순간에 머물러 있는 기회를 다양하게 갖는다. 그 이후의 시간에 활기차게 살아갈 에너지를 저장해 두려는 것이다. 집안일이나 육아 이외에 오직 나만을 위한 시간은 아무리 짧아도 거기에서 얻은 즐거움은 오래간다. 영혼 깊숙이 스며들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미국의 메리 올리버 시인은 「완벽한 날들」에서 세상은 아침마다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고 말했다. “너는 여기 이렇게 살아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감사합니다’와 ‘오늘도 정말 좋은 날입니다’이다. 도무지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던 날들이 있었다. 내 가족, 일, 집, 나라는 존재 자체, 모든 것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남을 부러워하는 감정이 마음속에 가득하니 사람을 만나는 일도 피곤했다. 그런 와중에 내게 주어진 모든 것들이 당연하다는 오만한 생각에서 벗어나게 한 아이템이 있으니 이거다. ‘인센스 스틱’   

  

  향선이라고도 하는데 숯 또는 목재 분말을 막대기 형태로 만들어 향을 발생시키는 제품이다. 아침 명상에 조금 시들해질 때쯤, 처음에 명상을 하며 느낀 설렘과 초심을 되찾기 위해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발견한 물건이다. 10센티미터 안팎의 가녀린 몸이 거의 30분 동안 제 몸을 태워 공간에 좋은 향을 입혀주고 내 영혼에 평화와 맑은 기운을 전해준다. 재로 변한 모습은 고요하다. 하지만 무언으로 내게 이렇게 말을 건넨다. “물성이 바뀌었다고 내가 아닌 게 아니야. 난 여전히 인센스 스틱, 향선이지.” “뜨거운 고통을 참고 견디면 이렇게 가벼워져. 오늘도 잘 참아 봐.” “널 다 내어줘도 돼. 주고 나면 이렇게 고요한 행복을 맛볼 수 있지.” 명상을 하고 아침부터 좋은 말을 들으니 매일 내 입에서 저절로 이 말이 나오는 것이다. ‘오늘도 정말 좋은 날이야. 힘내자!’     

<나의 절방석, 향꽂이와 향들>

  그런데 인센스 스틱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려고 하니 다양한 제품의 비교와 분석이라는 골치 아픈 일을 거쳐야 했다. 크게 인도, 일본, 우리나라 이렇게 세 나라의 제품이 눈에 들어왔다. HEM인센스는 30년 전통의 인도 인센스 최고의 브랜드로 70개국으로 수출된다는 화려한 이력을 자랑했다, 나그참파는 창업자가 인도 벵갈루루 지방에서 여행하는 도중, 인도의 유명한 구루 SATYA SAI BABA에게 영감을 받아 나그참파 향을 개발했다는 낭만적인 탄생 비화와 함께 세계 100개국으로 수출되고 있어 인센스 스틱 계에서 왕좌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효리네 민박>에까지 출연하여 더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것 같았다. 일본의 니폰코도는 세계 3대 명향으로 일본에서 가장 우수한 향 제조업체에서 만들어졌으며, 무려 430년 전통을 가지고 있어서 가장 장인 정신이 느껴지는 제품이었다.     


  나는 대단한 애국주의자도 아니면서 이상하게 국내 제품에 더 끌렸다. 오이뮤 에어 인센스 스틱은 오이뮤라는 디자인 스튜디오가 오랜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청솔향방과 콜라보로 만든 제품인데 젊고 세련된 감각이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오이뮤라는 회사 대표의 마인드가 좋았다. 디자인 활동을 통해 사라져 가는 사물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과거와 현재의 가치를 잇는 역할을 하고자 한단다. 이렇게 마음이 예쁘고 창의적이기까지 한 사람들이 만든 물건을 어찌 쓰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성분과 제조법도 믿음직하다. 느릅나무 껍질, 옥수수 전분, 녹나무 가루 및 송진이 주재료다. 장인이 직접 뽑아낸 반죽을 자연풍에 건조한 후 수개월의 숙성기간을 거치면 고운 향선이 탄생한다. 예술품과도 같은 이 제품들 중에서 나는 시트러스 향 마니아답게 첫 선택은 ‘귤피향’으로 했다. 말린 귤껍질 냄새와 같은 잔향이 청량하다.     


  카라영 인센스에서 만든 부용향에 담긴 이야기도 매력적이다. 조선시대 왕실의 대표적 선향이었던 부용향이 스틱형 제품으로 부활한 것이다. 왠지 왕실에서 사용하던 귀한 제품을 손쉽게 저렴한 금액으로 득템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퇴계 이황은 그의 제자에게 편지글과 함께 책과 부용향 한 봉지를 선물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조만간 나도 지인에게 부용향을 책과 함께 선물해주고 싶다. 이 제품의 가장 큰 장점이자 매력은 화학염료나 인공향료, 방부제가 일절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안전 확인대상 화학제품 검사에서도 유해물질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하니 믿고 태울 수 있는 확실한 향이다. 나는 정신을 맑게 해준다는 ‘황후의 나라’를 선택했다. 백단의 은은한 잔향이 참 고급스럽다.     


  취운향당의 향선은 거의 보약 수준이다. 능혜스님이 27년간 한의약 책을 탐독해가며 자신의 몸으로 임상 시험하여 만든 고행의 결정체다. 몸에 좋고 품질이 확실한 20여 가지의 한약 재료가 들어가 있어서  반죽을 삼켜도 된다고 한다. 접착제도 화학제품이 아닌 유근피 가루를 쓴다. 스님이 만든 향에는 단지 정신만 맑게 하는 게 아니라 오장육부의 기능을 좋게 하는 오향이 들어간다. 바로 폐 기능을 돕는 백단, 심장 기능을 돕는 정향, 신장 기능을 돕는 침향, 위장 기능을 돕는 유향, 간 기능을 돕는 목향이다. 나는 몸을 따뜻하게 해준다는 ‘취운’을 선택했다. 은은한 한약재 향이 나서 건강해지는 기분이 든다.       

  

  집안일을 마친 뒤 나만의 독서 시간에는 창문을 활짝 열고 ‘The Scent of PAGE’라는 교보문고 시그니처 향 향초를 켠다. 이제부터 내 공간이 곧 교보문고다. 이 향초에는 시트러스, 피톤치드, 허브, 천연 소나무 오일 등의 재료가 들어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허브농원에 와 있는 느낌이 든다. 아무튼 이 특별한 향만으로 나는 두세 시간 가량 나만의 교보문고에서 편안하게 책을 읽는다. 향초는 일주일에 한두 번만 켠다. 아끼는 것도 있지만 곁에 두는 것만으로도 은은하게 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나의 행복지수를 더 높여주는 음미의 물건이 있으니 바로 초콜릿이다. 이 향초의 케이스는 짙은 갈색의 네모 상자라서 초콜릿을 담아주기 딱 좋다. 초콜릿은 세로토닌을 증가시킨다고 하고, 세로토닌은 불안이나 화, 우울 등의 기분을 조절한다고 하지 않던가. 초콜릿을 천천히 녹여먹으며 느리게 책을 읽노라면 부정적인 기운은 모두 사라지고 마음속에 행복과 평온만 가득하다. 


  이제 마지막으로 잠들기 직전 침대 위에서 갖는 나만의 시간이 남았다. 남편은 이미 녹초가 되어 코를 드르렁거리며 자고 있다. 예전에는 나 홀로 깨어있는 그 시간을 즐기느라 환한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책도 읽고 휴대폰으로 이런저런 기사를 검색하며 새벽녘까지 깨어있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제는 올빼미족이라는 미명 아래 늦게 자는 못된 습관과 이별을 고했다. 나이 들어서도 젊고 재미있게 살려면 지금 나를 다 써버리면 안 되니까. 그래서 딴짓을 하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고 최대한 12시 전에 눕는다. 그런데 습관은 참 무섭다. 피곤한데도 도통 잠이 오지 않는다. 이번에도 향기에서 답을 찾았다. 작은 라탄 바구니에 편백나무 볼들을 담고 편백나무 오일을 두세 방울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그 향을 음미하며 10분 이내의 베드타임 요가를 한다. 귀에는 무선 이어폰을 꽂고 유튜브를 들으면서. 그러면 요가를 따라 하다가 도중에 잠이 온다. 편백향은 내 숙면까지 책임지는 고마운 향기다. 환 공포증이 없다면 이 앙증맞고 사랑스럽기까지 한 편백나무 볼을 들여놓기를 권한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집안에서 향기로 힐링을 하려면 부지런해져야 한다. 아무리 고가의 명품 향초며 룸스프레이를 사용한다고 한들, 집이 더러우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나는 집안에서 향기를 사용하면서 다음의 습관은 지키려고 한다. 자주 환기시키기, 힘들어도 꼭 설거지하고 자기, 음식물 쓰레기는 저녁에 내다 버리기, 매주 주말에 화장실 청소와 침구 빨래 및 교체하기. “붕붕붕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솟는 꼬마자동차”라는 추억의 만화영화 노래 가사를 기억하는가? 향기와 친해보라. 꼬마자동차처럼 힘이 솟아나 집안일을 하고도 나만의 휴식 시간을 더 많이 만끽할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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