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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차 Jun 06. 2022

낭만적인 결혼은 없다. 긍정 현실주의자가 되자!

<#엄마의 가성비 좋은 셀프 치유 놀이>

‖ 가족 간에도 때때로 심리적, 물리적 거리가 필요하다. ‖    

<출처 : 네이버 이미지 영화 '콜레트'의 한 장면>

  남편은 방학 때마다 일주일씩 아이를 데리고 가장 저렴한 항공과 저렴한 숙박비가 드는 그러나 음식은 푸짐하고 여행지는 알차게 돌아다니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표현대로 가성비 갑인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덤으로 나에게도 황금 같은 완벽한 나만의 시간이 주어졌다. 그럼 그 시간에 나는 무엇을 하느냐? 절대 쓸데없이 룰루랄라 돌아다니지 않는다. 돌아다닐 곳도 없고 재미도 없다. 아침에 일어나 108배를 하고 식사를 간단하게 준비하며 명상을 한다. 식사가 끝나면 하루에 한 가지씩 그동안 못 버렸던 이불, 가전제품, 그릇, 옷들을 정리하고 집구석 구석을 청소한다. 이후에 읽고 싶은 책을 몽땅 도서관에서 빌려서 매일 카페에서 7시간 이상 책을 읽고 베껴 쓰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쓰며 나만의 지식 채워 넣기와 사유 뱉어내기 시간을 갖는다. 외로움을 느낄 시간도 없다. 혼자서도 규칙적이고 충만한 시간을 보내며 온전히 독립적인 숙주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비우고 채우는 시간을 가진 뒤 만나면 그와 나는 더욱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기생이 아닌 공생으로서의 연대감. 서로에게 자율과 자유를 허락했기에 주어진 값진 선물인 것이다.     

<출처 : 픽사 베이>

  

  이제 더 이상 부부로서 열정이니 사랑 타령은 하지 않는다. 어쩌면 아이를 함께 만들어 낸 생물학적인 동지로서의 우정 그리고 그 아이가 미운 오리가 아니라 백조임을 일깨워주고 자신만의 서식지를 찾아 훨훨 날아갈 수 있도록 잠시 데리고 있는 보호소의 소장 역할을 하는 책임감이 부부에게 더 중요한 요소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하나의 서식지를 같이 사용하는 다른 종의 두 동물이 생활 동반자로서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그 서식지를 아름답게까지는 아니어도 괜찮게 가꾸어나가고 있다. 필요할 때는 맘에 없는 칭찬도 해주고 궁둥이도 팡팡 두드려주며 남자의 자존심을 추켜 세워주고, 관심 없는 말을 들어주는 척하면서 그렇게 적당히 예의를 갖추고 거리를 유지하며 산다.      

  

  내가 무기력을 떨치고 모든 일에 적극적이자 남편 또한 시키지 않아도 내가 바쁠 때면 식사 준비며 쓰레기 분리배출, 장보기와 아이 교육 등 전방위적으로 집안일을 돕는다. 아주 다른 남자가 되었다. 촛불을 불며 주문을 왼 것도 아니고 손을 빌며 부탁한 것도 아닌데 자발적인 도깨비 또는 슈퍼맨이 되었다. 참 세상 살아볼 만하다. 그러니 낭만주의적 이상주의적 결혼관을 깨고 긍정 현실주의자가 되자. 아내가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하면 남편은 따라오게 되어있다. 왜? 우리는 Alpha Female이니까.          


‖결혼 후에는 ‘예쁜’ 여자가 ‘똑똑한’ 여자를 못 따라가고 똑똑한 여자가 ‘노력하는’ 여자를 못 따라간다고 한다. ‖

    

  그렇다. 이제 우리는 모든 취향이 같고 내 마음을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고 가만히 있어도 사랑을 주는 ‘완벽한’ 파트너를 기대하는 것은 하루빨리 던져 버려야 한다.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고 맞지 않은 부분은 협의를 통해 조율해 나가면 된다. 잘못한 것이 있으면 빠르게 반성하고 사과할 일이 있으면 묵히지 말고 즉시 사과하자. 필요한 것은 말로 요청하면 된다. 단, 그전에 호흡 명상으로 감정조절은 해놓고 부드럽고 합리적인 대화법으로.


  부부끼리는 방금까지도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편하게 대화를 나누다가도 별일 아닌 문제로 아군에서 적군으로 순식간에 변하기도 한다. 남편이 토라져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면 나는 참지 못하고 대든 것에 대해 후회를 하고 바로 손에 걸레를 든다. 그리고는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세 마디만 하면 되는 호오포노포노 명상을 하며 방구석구석을 닦는다. 십 분 정도 지나 내 마음도 안정이 되고 그의 격앙된 마음도 다소 가라앉았다 싶으면 따뜻한 생강차를 예쁜 찻잔에 담아 방문을 조심히 열고 들어간다. 지난번에 아이 이 닦는 문제로 살짝 언쟁이 있었을 때는 이렇게 부드럽게 말했다. “아까는 미안했어. 내가 심리적으로 힘든 시기에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해 항상 미안한데 당신이 그걸 비난하니까 속상했었나 봐. 그래도 그때 당신이 아빠 역할에 최선을 다해준 거 항상 감사하고 있어. 그러니 화 풀어. 내가 앞으로 아이 이 닦는 일에 좀 더 신경 쓸게.” 그러면 천하에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인 그지만 “알았다. 고만 문 닫고 니 볼일 봐라.”라고 한다. 풀렸다는 뜻이다.     

  

<출처 : 네이버 이미지, 영화 '경주'의 한 장면>

  우리가 부부라는 이름으로 함께 하지 않았다면 간혹 직장에서 잠깐씩 만났거나 오다가다 만나는 동네 주민이었다면 그처럼 대화의 온도가 갑자기 확 바뀌는 상황은 연출되지 않았을 것이다. 서로의 민낯과 흐트러진 모습, 헐크로 변하는 비이성적인 모습까지 가장 적나라한 서로의 밑바닥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 편안함과 익숙함으로 존중과 예의의 경계를 허물고 마는 것이다. 나의 민낯을 알지 못하는 직장 동료나 사회 구성원에게는 내가 한 여성으로서 매력적으로 비칠 수 있다. 그렇듯이 내 남편도 직장 동료 중에 그가 지닌 장점만 부각해서 보며 그녀의 남편에게는 없는, 그러나 꼭 있었으면 했던 어떤 점을 발견하고 남자로서 호감을 느낄 수도 있다.      

  

  1년에 두세 번 모이는 남편 쪽 부부동반 모임에서 남편 친구들의 아내 중 한 명은 남편이 계획하는 해외여행이나 자녀교육 이야기를 하면 눈을 반짝반짝하게 뜨고 경청한다. 그러고는 부러움 가득한 목소리로 “언니, 오빠가 내 남편이면 내가 업고 살았을 거야.”라고 농담 반 진담 반 남편 편을 들며 말을 하곤 했다. 그때 나는 “아이고, 한 번 같이 살아보셔.”라고 짧게 코멘트를 날렸지만 ‘속으로는 우리가 헛되게 보낸 오늘이 어제 죽은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바라던 내일이었던 것처럼, 내가 한때는 미워했었고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아 보인 남편이 내 앞에 있는 누군가에게는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남자로 보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간혹 나는 그를 내 남편이 아니라 어떤 여성이 매력을 느끼고 있는 ‘한 남자’라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하기도 한다. 다 알지 못하는 미지의 어떤 것에는 항상 호기심이 생기는 법이니까. 그러면 누군가 한 트럭으로 실어준다고 해도 거절할 이 애물단지 남편이 누군가에는 그림의 떡이라는 생각에 잠시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 ‘나랑 사느라 힘들었겠다’하는 측은지심도 느껴진다.      

  

  남편도 아내인 우리도 한때 누군가가 그토록 사귀어보고 싶어 했던 젊은 청춘이었지 않나? 남편을 귀하게 여기자. 내 아이의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빠로서 가족부양을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는 그 자체만으로 그는 대단한 가치가 있다. 남편은 항상 내게 "네 주제에 무슨 책을 쓰냐? 설거지나 해."라며 틈만 나면 나의 앞길을 방해하는 ‘남의 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읽고자 하고 필요로 하는 책을 말하면 어디에서 잘도 택배로 주문해준다. 로버트 존슨은 『내 그림자에게 말 걸기』에서 “사랑받고 보호받고 싶어 하는 욕망은 이해할 수 있지만 굴욕적인 의존성은 성장을 거부하는 것이며 충만한 잠재력을 폐기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내가 의존성을 버리고 나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이니 그도 아주 조금 나의 길을 지지해 주는 ‘내편’으로 변모한 것이다. ‘남의 편’을 ‘내편’으로 만드는 데 14년이 걸렸다. 기생충이 아니라 독립적인 숙주가 되겠다고 결심했기에 가능한 일이지 않았겠는가.     

<출처 : 네이버 이미지, 드라마 '봄밤' 한 장면>

    마지막으로 알랭 드 보통의《낭만적인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읽고 난 소감을 짧은 랩으로 써 본 글로 이 장을 마무리한다.      

♪ 낭만은 스스로 외로움을 자초하는 낭떠러지

    너에게 꼭 맞는 파트너는 어디에도 없지

    완벽함을 포기해 완전함을 포기해

    차라리 네가 미쳤음을 자각해     


♬ 낭만이 사랑을 지속시킬 수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낭설

    영구적인 조화는 어디에도 없지

    불안에 굴복하지 마 상처에 분노하지 마

    차라리 작게나마 용기를 내     


♩ 평범함이 답이지

    만족함이 답이지

    그게 인생이지

    그게 진짜 사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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