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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차 May 29. 2022

수족관

<#일상생활에서 건져 올린 시처럼 생긴 것들>

당신의 회귀본능을 믿으며 저 자작나무 숲 가장 높은 구름 위에 우리만의 수족관을 지었어요.

이제 우리 그곳으로 갈래요? 수족관 밖은 너무 위험하고 나쁜 전염병에 걸리기 쉽거든요.

조명은 은은한 코발트블루색 LED로 했어요. 열이 좀 발생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분위기는 최고예요. 그런데 그의 표정이 전등보다 더 짙은 블루네요. 분명히 처음에는 노랗게 웃었는데 말이죠.     


그는 그린색 보잉 선글라스를 쓰고 잠수를 했고 나는 평범한 물안경을 쓰고 수영을 했어요. 내 시선은 검푸른 하늘을 한 마리 고독한 상어처럼 유영하는 그에게서 뗄 수 없었고요. 부탁할게요. 사랑을 나눌 때만은 안경을 벗어주면 좋겠어요. 대신 암막 커튼을 쳐두는 것으로 하죠. 눈이 부셔서 당신을 제대로 볼 수 없으면 어떡해요. 실명할 수도 있고요.   

  

열 개의 조명을 환하게 켜 두고 파티를 준비하던 날, 수족관 물에서 피비린내가 났어요. 굉음과 함께 우리만의 공간에 상당한 규모의 지진이 일어난 것 같았지요. 순간 창백하리 만치 하얀 그가 쓰러져 있는 걸 보았어요. 이마에서는 붉은 피가 흐르고 온몸은 멍투성이었죠. 선글라스는 그만 벗으라고 했잖아요.    

 

그의 정체성은 알비노. 서서히 홍채의 색소마저 소실되어 몸 감각에 의존해 수족관 내부를 익히며 연기를 하고 있었던 거예요. 나는 얼굴을 덮을듯한 커다란 물안경을 벗어던졌어요. 3살 때 입은 화상으로 왼쪽 눈은 짜부라지고 오른쪽 눈은 실명한 지 오래되었죠. 빼 버리자. 우리는 서로의 텅 빈 눈을 쓰다듬으며 웃었어요.   

  

 네 개의 하얀 눈알을 천장에 매달아 두었지요. 더 이상 태양도 전등도 필요 없어요. 우리는 눈을 뜨자마자부터 잠들 때까지 끝도 없이 대화를 나누었어요. 어쩌면 곧 목소리도 잃을지 모르겠네요. 그럼 어때요? 우리는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기생충인걸요. 그의 목소리가 음악 소리에 묻혀 점점 희미해졌어요. 괜찮아요. 그의 입술에 손을 가져다 대고 천천히 움직임을 느끼면 되니까요. 오늘은 무슨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출까? 음... 쇼스타코비치 왈츠 2번이요. 그래, 자 이제 내 목에 매달려. 모험 속으로 나아가자. 둘이서 같이.

까미유 끌로델 - The waltz

* 영화 The shape of water와 중경상림을 본 뒤 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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