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강차 May 29. 2022

사랑을 구걸하지 말자.
내가 곧 사랑의 주체니까.

# 엄마의 가성비 좋은 셀프 치유 놀이

  떨어져 지내는 두 달 동안 퇴근 후 대부분의 시간을 책을 읽으며 지냈었다. 그때 주로 읽은 책은 결혼을 주제로 한 심리책이었다. 비로소 결혼 생활의 시작과 그 이후의 운영에 대한 나의 미숙함과 남자의 심리에 대한 무지함을 깨우치게 되었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전혀 몰랐던 나 자신과 남편에 대해서도 깊게 침투해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잘못과 그의 장점이 오롯이 보이기 시작했다. 미안했고 고마웠다. 더 이상 이렇게 악화된 상황에 대해 남편 탓도 자기연민도 하지 않았다. 남편이 잘못했다기보다는 그 상황을 바라보는 나의 인식이 부정적이었고 태도가 지혜롭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나 자신을 하녀라고 격하시키며 가사노동을 괴로워만 했는데 이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하게 되었다. 남편은 왕이고 아이는 공주라고. 나는 그들이 세상 속에서 더 위엄을 떨칠 수 있게 건강을 책임지는 왕비라고 나 자신을 격상시켰다. 이는 내 자존감도 올라왔다는 증거였다. 더 이상 남편에게 내 감정을 읽어주고 따뜻한 말들로 위로하며 엄마나 상담사의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헛된 기대를 내려놓기로 했다.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결혼해도 괜찮아》에는 라오스 몽족 여성들의 지혜로운 삶이 언급된다. 그녀들은 남편으로부터 위로와 조언을 얻기 위한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장 친밀한 의논 상대의 역할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녀들 주변에는 자매, 이모나 고모, 엄마, 할머니 등 친족들이 감정적 버팀목으로서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들의 힘든 결혼 생활 속에서도 남편을 영웅으로도 악당으로도 만들지 않는다. 단지 각자의 영역에서 주어진 의무를 충실히 하며 낭만은 없지만 조화로운 결혼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친족 중심 사회가 아닌 요즘 같은 세상에서 우리는 결혼 생활에서의 갈등과 번뇌를 어디에 털어놓고 조언도 구할 수 있을까? 사실 결혼 생활에서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지  않는 친구나 선배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은 불행을 복기하는 것 일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돌아서면 후회가 밀려온다. 혹여 마음이 넓거나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전화로 하소연을 한다면 결국 그들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이용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자칫 좋은 관계마저 잃을 수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혼자만의 시간에 내가 의문을 가지고 있는 주제에 대한 독서를 하거나 유튜브 강의를 듣는 것이다. 옆집 언니 같은 편안한 위로와 조언을 듣고 싶으면 김미경 강사의 강의를 들었고, 위로보다 죽비처럼 시원하게 정신을 차리는 충고를 듣고 싶으면 법륜 스님의 강의를 들었다. 강의는 소나기처럼 그 자리에서 바로 해답을 얻고 툴툴 털고 일어날 수 있게 한다면, 독서는 긴 장마처럼 지루할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성찰하면서 얻는 지혜와 통찰 덕분에 그 여운이 더 오래갔다. 몽족 여성처럼 나도 내 주변 곳곳을 감정적 버팀목으로 에워쌌다. 바로 수많은 작가와 인생의 전문가들로. 그들에게는 멘토가 되어달라고 허락을 구하지 않아도 되고 징징대고 나서 이불 킥을 날릴 일도 없다. 불을 꺼서 소환해내는 도깨비처럼 복잡한 절차도 필요 없다. 그냥 아무 때나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꼭 필요한 말씀을 읽거나 들으면 되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던 시간은 오히려 반성과 회복의 시간으로 전화위복이 되었다. 남편과 나는 결혼 생활 11년 만에 처음으로 다섯 시간 동안 서로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동안 서운했던 점, 서로 잘못했던 점, 앞으로 서로에게서 바라는 점, 앞으로 갈등이 또 일어났을 때 해결 방안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도 나와 떨어져 있던 잠깐의 시간 동안 자기를 많이 돌아본 것 같았다. 우리는 각자의 차이를 이해하고 용서하며 찐한 전우애로 서로를 다시 끌어안았다.      

 

  그렇다고 다시 드라마틱하게 친밀감과 애정이라는 화학반응이 일어나는 완벽한 융합, 그런 마법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장미전쟁으로 입은 서로의 상흔에 대해 동정 어린 시선으로 볼 줄 알게 되었고, 상대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게 되었으며 눈치껏 서로를 배려하며 예의를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일체감이라는 허상에서 벗어나 적당히 거리를 두고 서로를 지켜보며 지원해 주는 삶의 동반자로 한 단계 성장했다. 실패에서 얻은 살아있는 지혜는 처음부터 비교적 잘 맞는 관계로 시작하여 쉽게 얻어낸 결과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값진 선물이다. 이제 나와 그는 로열젤리까지는 아니어도 조금은 숙성된 진한 꿀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남편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나는 그의 또는 타인의 기생충으로 살고 있을 것이다. ‘네가 알아서 해, 네가 선택했으니 네가 책임져’ 그 처절하고도 서운하기 그지없던 말은 결국 내가 홀로 일어서게 하는 가장 중요한 채찍이 되었다. 의존은 그가 힘을 가지고 있고 나보다 더 능력이 있어서 저절로 하는 게 아니다. 나 또한 자유의지와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것을 행사함에 따른 책임을 지고 싶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권력을 포기한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의존하겠다고 그의 밑으로 들어간 것이다. 즉 그의 그늘 아래로 들어가 살겠다고 내가 선택한 것이다. 따라서 “남편 때문에 못 살겠네”, “남편이 하나도 안 도와줘서 나만 뼈 빠지게 집안일하느라 힘드네”, “남편이 좀 따뜻하게 잘해주면 좋겠는데” 등 모든 불평불만은 결국 내가 만든 것이다.      

  

  더 이상 그에게 사랑을 구걸하지 않았다. 내가 자신에게 사랑을 퍼부어주며 내 안을 사랑으로 가득 채우자 비로소 그의 그늘에서 빠져나오게 되었다. 그동안 나무나 꽃인 줄 알고 살아왔는데 오히려 내가 태양임을, 우리 집에 빛을 쬐는 사람,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사랑의 주체임을 깨달았다. 내 빛의 파동이 크게 출렁거리지 않고 진폭이 작아지고 주파수가 더 높아지니 더 이상 그와 크게 부딪히지 않게 되었다. 남편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항상 그대로다. 바뀐 건 네 마음이지” 맞다. 그의 장점을 볼 수 있게 되고 내가 무기력을 떨쳐내고 적극적으로 집안일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나만의 시간을 확보하며 내 마음이 행복하게 바뀐 것이다. 엄마이자 아내인 우리는 한 집안의 태양임을 잊지 말자. 우리가 빛을 잃으면 가족 구성원 모두 힘을 잃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우리가 곧 중심이다. 


작가의 이전글 왜 기생하려 하는가? 독립적인 숙주가 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